[강천석 칼럼] '황교안黨'은 必敗, '反문재인黨'으로 거듭나야
총선 패배하면 좌절한 국민들 야당 먼저 응징할 것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민’이란 단어를 동원(動員)할 땐 반드시 ‘그 국민이 어떤 국민이냐’고 되물어야 한다. ‘국민’을 끌어다 ‘개혁’을 들먹일 때는 더 바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를 위한, 또는 무엇을 위한 개혁이냐’를 묻지 않고 그냥 꿀꺽 삼켰다간 불행한 시대의 문턱을 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유신(維新) 시대에 갇혔고 그렇게 전두환 시대와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첫머리 등장 모습은 흘러간 두 시대 개막 장면의 복사품(複寫品)이었다. 국민의 상당수는 그 모습을 보고 두 시대가 어떻게 처참하게 퇴장했는가를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권력기관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까지 법적·제도적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면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신임 법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다시 검찰을 불러냈다. "지금 국민 열망(熱望)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작업을 잘 이끌어 달라. 다시 맞이하기 어려운 역사적 기회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먼저 '검찰 개혁을 열망한다'는 국민은 과연 어떤 국민인가. 지난해 10월 3일 시청 앞 광장에는 '조국 수사'를 외치는 사람들이, 검찰·법원 청사가 있는 서초동 네거리에는 '조국 사수(死守)'를 외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통령의 국민'은 '시청 앞 광장 국민'인가, 아니면 '서초동 네거리 국민'인가. 대통령이 '서초동 국민'만 국민으로 여긴다면 '광화문 국민'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겠는가. 2년 반 전 대통령 취임 선서와 취임 연설 속 '국민'이란 단어가 그런 뜻이었는가. 대답 내용에 따라 국민의 절반은 지금 세상이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세상인지, 아니면 법의 족쇄를 깨뜨리고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정할 것이다.
다음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찰 개혁이라는 논리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검찰총장도 공수처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두 자리 모두 '제1의 자격 요건'은 '대통령의 마음에 든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동일 조건에서 한쪽은 '개혁 대상'이 되고 다른 한쪽은 '개혁 주체'가 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가.
공수처의 최대 문제는 공직자 아무나를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공수처 마음대로 어떤 공직자의 비리(非理)도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도 검찰 조직 전체를 내 편만으로 채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규모가 100명도 안 되는 공수처는 대통령 마음먹기에 따라 내 편 일색(一色)으로 도배가 가능하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그렇게 도배했다. 그런 공수처가 자신을 그 자리에 심어준 대통령과 대통령 편을 수사하겠는가. 공수처는 대통령과 대통령 편을 위한 '비리 은폐처(隱蔽處)'가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당(黨)은 지난 연말 공수처 법안을 성립시키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미끼로 던지며 원내교섭단체도 못 되는 부스러기를 모아 거래(去來)했다. '대통령 안보' '정권 안보'를 위해 청와대 안까지 칼을 들이대는 검찰 무력화(無力化)가 절실해진 것이다. 공수처법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했다. 개악(改惡) 선거법은 어떤 상태에서 선거를 치러도 현재 권력과 그 연합 세력이 유리하도록 선거의 본질을 파괴했다.
여권의 이런 폭주(暴走)를 가능하게 한 것은 강력한 야당의 부재(不在)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 또는 절반 넘게 소득 주도 성장, 일자리 정책, 부동산 대책, 원전(原電) 폐쇄, 교육 정책, 적폐 청산을 비판하고 있다. 그나마 긍정 여론이 많았던 복지 정책과 남북 관계 및 외교 정책도 파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황교안 야당'은 '문재인 여당'보다 지지도가 15~20%포인트 낮다. '미운 정당'이 '잊힌 정당'을 이기는 것이다. 국민의 50%는 현직 국회의원이 아닌 새 얼굴을 기다리고 있다. 황교안 야당은 이런 국민의 변화와 희망을 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면 ‘황교안당(黨)’은 ‘문재인당(黨)’에 필패(必敗)한다. 총선에 실패하면 황교안 대표의 정치생명은 그걸로 끝난다. 황 대표는 공천권에 대한 미련을 던지고 ‘황교안당’이 ‘반(反)문재인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봐도 황 대표의 영향권 밖에 있는 줏대 센 인물을 세워 공천권과 당의 비상(非常)관리를 맡겨야 한다. 그래야 사는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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