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의회장 신년 간담회 "일본과의 역사는 거래로 지워지지 않는다. 경제입법 가로막는 동물국회, 식물국회 반복되지 않기를"

정유미 기자 입력 2019. 12. 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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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9일 “역사는 거래로 지워지지 않는 만큼 정치 이슈를 한일 경제회의에 끌고 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내년 한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 “구조적 장벽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있을 지 상당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면서 “동물국회, 식물국회로 불리는 20대 국회 같은 국회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 경제 입법을 가로막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용만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신년 인터뷰에서 2년 연속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가 열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일본이 한 일은 역사이고, 징용이나 위안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인데 역사가 거래로 지워지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미무라 아키오 일본 상의회장(신일철주금 명예회장)이 한일 상의회장단 회의에서 1965년 한일협정과 징용 관련 주제를 꺼내고 싶어하는데 박 회장이 ‘경제는 경제고 정치는 정치다. 정치를 회의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거부해 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일본의 반도체 주요 품목 수출규제 등 한일 외교 갈등에 대한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일본 회장은 ‘경제가 정치의 영향을 받으니 정치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만 이야기 하면 무책임하다’고 하지만 궤변”이라면서 “경제인들이 왜 정치 이슈를 다루는 지, 일본이 이같은 입장을 견지하면 회의할 생각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보상을 했으니 징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건 ‘거래’입니다. 역사가 거래로 지워집니까. 징용도 위안부도 일본이 한 것은 역사이고, 우리에게는 거래가 아니라 역사이자 살아있는 고통이기 때문에 안 지워집니다. 일본 기업인이 1965년 한일협정을 들고 정치적 발언을 하면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경제인들이 정치 싸움을 하는 것이 되니 만나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박회장은 내년도 경제 전망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올해는 정부가 정책 수단을 동원해 거시경제 숫자를 관리했기 때문에 수치상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면서 “상대적으로 민간의 성장 기여율은 25%(한국은행 전망치 기준)로 적어졌는데 민간 체감 경기가 그만큼 나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개혁 전체로 보면 변화가 크지 않다”면서 ‘국회의 입법 미비’ ‘공무원들의 소극적 행정과 민간 규제’ ‘신 산업과 기존 기득권 집단 간 갈등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기득권에 대한 장벽이 그대로 존재해 새로운 산업 변화를 일으키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화되고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라며 “진입 장벽을 갖춘 기업과 한계 기업 두 집단이 변하지 않아 기업 입출(入出)이 현저히 저하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의에 따르면 미국 경제지 포천의 ‘글로벌 기업’ 순위에서 미국은 10대 기업이 지난 10년 간 7개가 바뀐 반면 한국은 2개만 변했다. 박 회장은 이와 관련 “새로운 사업 기회가 눈에 띄지 않아 투자가 점점 적어지고 결국 시대에 뒤떨어져 짜여진 대로만 가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굉장히 더뎌 미래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할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개혁은 정치권, 정부, 사회 각계각층이 다 같이 나서서 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고 국내외에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상황이 상시화했다”며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낡은 법·제도 틀과 모든 생각을 바꾼다는 국민 공감대를 끌어내는 의식개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경제·규제개혁 입법 촉구를 위해 20대 국회 기간 국회를 16번 찾은 박 회장은 “선거 반년 전부터 모든 법안 논의가 전부 중단되는 일이 항상 반복했는데 지금은 그 대립이 훨씬 심각하다”며 “동물국회, 식물국회, 아수라장 국회라는 말까지 나오며 경제 입법이 막혀 있는데 20대 국회 같은 국회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박 회장은 2시간 넘게 격정적인 어조로 인터뷰를 이어가는 동안 국회에 입법을 호소하는 과정을 이야기할 때는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책임도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양극화, 불공정 관행 문제를 외면한 상태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업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강변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며 “기업이 우리 사회 성장 과정에서 혜택을 받은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만큼 부채의식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2019년 경제 평가와 2020년 새해 경제 전망은.

“장기적으로 발전적 성장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시각을 갖고 있다. 구조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기득권 장벽이 그대로 존재해 새로운 산업 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화했다. 진입장벽을 갖춰 계속 연명하는 집단과 하위 한계기업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는 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투자는 점점 줄어든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서도 작은 리스크만 있어도 원천봉쇄하는 지나친 수준에 있다. 단기적으로 대외환경이 부진한 것은 이해가 간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방어하려고 노력한 점도 긍정적 평가를 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구조개혁이 굉장히 더디기 때문에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대단히 우려스럽다.”

-민간 투자에 대해 정부·국회에 바라는 점은.

“투자는 기회의 산물이니, 기회가 더 많아지도록 모든 것을 바꿔달라. 법·제도의 모든 장벽을 들어내야 한다. 이에 저항이 되는 것들을 풀어달라. 새로운 기회를 많이 창출하면 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타다 논란에 대해 의견을 밝힌 바 있는데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부가 이 사태를 이해집단별로 나눠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우선 순위를 국민에 두어야 한다. 국민 편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고려해서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는 줄이도록 정부가 직접적 역할을 해야 한다. 사태를 이해집단끼리 충돌로 보고 ‘합의하라’ 할 일이 아니다.

모빌리티 비즈니스는 여객운송법 사각지대(루프홀·loophole)에서 비롯됐다. 법 개정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이 타다를 이용한 국민의 편익과 타다라는 업체는 어떻게 되는가. 모빌리티 비즈니스는 다른 나라에서도 미래지향적 사업이다. 계속 뻗어가도록 정부가 도와줘야지,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택시를 보호해야 하니 타다를 하지 말라는 것은 획기적인 서비스에 열광했던 국민과 업체 종사자들, 미래 지향적 사업가들이 다 포기하는 대가로 택시업계를 살리겠다는 말이다. 정부가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이용해 의무를 해태한다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택시기사들께도 미안한 일이다.

다른 나라에는 모빌리티 비즈니스가 다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서 한다는 상황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미래지향적인 사업이 나왔을 때 기득권의 이해충돌에서 빠져나와 사업을 하게 해주고, 피해보는 측을 보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공유경제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되는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나라마다 특성과 유불리가 다르므로 어떤 게 맞다 틀리다 이야기 하긴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공유경제를 해본 나라들은 거기서 레슨을 얻고 다른 지식으로 무장해 새로운 사업으로 가는데 우리나라는 하나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험조차 못해보고 남의 이야기로 판단하는 것은 눈을 가리고 미래를 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규제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사회를 움직이는 법·제도의 틀이 낡아서 바꿔야 한다. 사전에 허가·개방해서 일을 벌이게 해주고 사후에 정부가 챙기는 쪽으로 근본을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데 국회가 전혀 협조를 안한다. 정부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감사원 감사가 있으니 공직자들 중 누가 감히 개혁을 하겠는가. 대통령이 의지가 있어도 하위 공직자 레벨로 내려가면 안되는 이유다. 게다가 지자체는 선거를 의식한다. 결국 나라의 미래를 위해 모든 생각을 바꾼다는 국민 공감대를 끌어낼 정도의 의식개혁으로 몰고가야 해결이 될 것이다.”

-2020년 규제개혁 관련 계획은.

“새로운 사업이 많이 될 수 있도록 나서서 도우려 한다. 샌드박스 민간 접수기구를 우리가 해보겠다고 대통령께도 건의를 드렸다. 내년에 집중적으로 하겠다. 국회에 막혀 있는 ‘데이터 3법’은 미래 산업의 기본이다.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제조업이 한계에 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서비스업을 더 열어야 한다. 대기업들이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 다 옛날 얘기다. 이제 대기업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회가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시민사회가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조금씩 풀기 시작해야 한다.”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생각은.

“대형마트 규제는 ‘모두가 패자’다. 대형마트를 규제해서 전통상권이 살아나는 효과가 크지 않았고, 대형마트가 각종 규제에 시달리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온라인 유통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규제는 실효성을 잃었다. 사회 변화에 너무나 둔감하게 반응한 편의적·정치적 제도다. 이제는 풀어야 한다. 푼다고 해서 전통상권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도, 보호한다고 살아나지도 않는다. 대형마트 규제도 전통상인과 대형업체들 사이 이익의 충돌로만 보고 ‘너희들끼리 합의하라’거나 한쪽 편을 들어 다른 편을 규제한 것이다. 이제 그런 시각을 바꿔야 한다. 전통상권을 보호하려면 젠트리피케이션부터 막아야 한다.”

-일본 기업인들과 한일 수출규제에 대해 민간 기업인 영역에서 논의하는가.

“민간에서 이야기를 별로 못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일 상의 회장단 회의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 회장이 징용 관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제는 경제고 정치는 정치다. 정치 이슈는 이 회의에 끌고 들어오지 말라”면서 2018년 회의를 연기시켜 2년째 회의가 안 열렸다. 일본 회장은 ‘경제가 정치의 영향을 받으니 정치에 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만 이야기 하면 무책임하다’고 하지만 궤변이다. 경제인들이 왜 정치 이슈를 다루나. 그분이 그 입장을 견지하면 회의할 생각이 없다. 일본 기업인이 1965년 한일협정을 들고 정치적 발언을 하면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싸움이 나면 경제인들이 정치 싸움을 하는 꼴이 되니 만나지 말자고 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보상을 했으니 징용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그건 ‘거래’다. 역사가 거래로 지워지는가. 징용도 위안부도 일본이 한 것은 역사이고, 우리에게는 거래가 아니라 역사이자 살아있는 고통이기 때문에 안지워진다. 근본적으로 출발이 완전히 달라서 매 정부 때마다 충돌이 계속된다. 왜 경제인들이 해결해야 하는가.”

-올해 재계와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이 잦았다. 소통을 통한 효과가 있었나.

“효과가 있다. 대통령께 건의한 것이 상당히 반영됐다. 대통령께서 규제개혁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여러 효과가 있었다. 해외 순방을 모시고 나가면 대통령이 자랑스럽다. 개인 문재인이 아니라 국민의 합의에 의해 당선된 분이라는 민주주의 결과를 다른 나라 국민에게 보이는 것은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께서 내년에는 재계 총수들을 만나기보다는 이슈를 공유하는 그룹별로 나누어서 콘텐트 위주로 만나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상의 역할·위상에 대한 평가는.

“과거 전경련이 대기업을 대변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컸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상의가 재계 맏형이라는 평가 자체가 없는 서열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임감은 굉장히 커졌다.”

-민간 외교에 대한 성과를 자평한다면.

“옛날에는 우리가 해외에 뭘 팔아보려 애썼는데, 요즘은 우리한테 먼저 와서 거래하려 애쓴다. 운동장의 기울기가 바뀐 입장이 되어보니 보람이 있다. 경제적 기적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모두 이뤘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민간 외교가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은.

“남북관계에 대해 장밋빛 환상은 갖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이데올로기상 절대 전면적 개방을 안하고 통제·계획된 개방을 할 것이다. 그 속도를 빠르게 할 인프라에 집중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연말 전원회의, 연초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 3월 군사훈련, 도쿄올림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할 등을 지켜봐야겠다.”

-20대 국회와 내년 4월 들어설 21대 국회에 요청·당부는.

“20대 같은 국회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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