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복지]'여름아 부탁해' 속 난임부부보다 더 고단한 현실의 '금희'들

임재희 2019. 12.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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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여름아 부탁해'에서 난임부부 모습 그려
금희에겐 집에서 날마다 주사 놔주는 의사 남편 있어
시술비용도 걱정없어..현실부부는 '이중고'에 짓눌려
[서울=뉴시스]KBS 일일드라마 '여름아 부탁해' 포스터. (사진=KBS 누리집 갈무리)

[서울=뉴시스] 임재희 기자 = 소위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 남편과 얼마 전 수술을 했다는 경비아저씨에게 녹즙을 건넬 정도로 친절한 아내. 두 사람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뽀뽀하는 모습을 본 이웃 주민은 결혼한 지 10년도 넘었다는 말에 놀라 묻는다. "그 집 부부는 권태기도 없나 봐요?"

사실 이들 부부에게 없는 건 권태기가 아니었다. 결혼한 지 10년 넘은 두 사람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인공수정만 6번째, 아이는 이들 부부만의 소원이 아니다. 친정엄마는 "접시 깨지면 재수 없을까 봐"라며 떨어지는 접시를 붙잡으려 온몸을 던진다. 이 집에선 '애 떨어지겠다'는 관용구도 금기어다.

"미안해요. 이번에도 착상이 안 됐네요." 산부인과에서 걸려온 전화에 온 가족의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결국 부부는 6번 만에 난임 시술을 그만두기로 한다.

KBS 일일드라마 '여름아 부탁해'는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왕금희'(이영은), '한준호'(김사권) 부부 얘기로 시작한다.

난임부부는 단순히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난임 시술을 받은 부부는 16만2339명에 달한다. 금희와 준호 부부는 16만2339명의 현실 속 난임부부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을까.

총 128부작인 이 드라마에서 적어도 10회까지 준호는 "난임카페 회원들이 부러워하는" 남편이다.

시술로 몸이 불편해 밤새워 뒤척이던 금희 옆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도 준호는 일어나자마자 금희 몸 상태 걱정이 앞선다. 출근길엔 "요즘 타투가 유행인데 이마에 왕금희 남편이라고 새길까"라는 다정한 말을 아내에게 건네며 웃는다.

하지만 난임카페 회원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이런 자상함이 아니다. 그가 매일 같은 시간 집에서 편안히 금희에게 주사를 놔줄 수 있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수술을 앞둔 여성은 4~8주 매일 근육주사가 필요하다. 배란을 돕는 과배란유도제와 수정란 착상을 돕는 호르몬을 위해서다. 스스로 주사를 잘못 놓았다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 여성이 주사를 맞으려고 먼 거리에 있는 난임치료 병원과 집을 오가기 일쑤다.

준호는 고생하는 아내에게 "이거라도 놔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미안해 하지만 금희에겐 사실 둘도 없는 선물인 셈이다.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지만, 현실 속 난임부부에게는 시술 비용 또한 큰 부담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평균진료비용은 체외수정(신선배아) 약 359만원, 체외수정(동결배아) 약 130만원, 인공수정 약 70만원 등이었다. 이후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본인부담(30%)은 각각 102만원, 44만원, 24만원 수준으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 적용 이후에도 수많은 난임 부부들에게 시술 비용은 여전히 걱정거리일 수 밖에 없다.

[서울=뉴시스]KBS 일일드라마 '여름아 부탁해' 포스터. (사진=KBS 누리집 갈무리)

하지만 다행히도 현실 속 난임 부부들을 위한 복지 정책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월 '지역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사를 맞기 위해 대도시를 찾아야 하는 고통은 다소 덜 수 있을 전망이다.

개정안은 난임 여성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지역 보건소에서 난임 주사 시술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에 근거를 명시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분석한 결과 난임시술 여성환자 중 67.3%인 5만7943명이 상위 20개 기관을 찾고 있는데, 의료취약지역을 시작으로 난임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보건소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부터 난임 치료 시술에 대한 정부 지원제도도 현실에 맞춰 바뀐다.

우선 모든 시술에 50만원(확대 대상자 40만원)으로 제한됐던 최대 지원금액을 시술별로 조정했다. 여기에 가장 큰 비용이 필요한 체외수정 신선배아 시술의 경우 최대 110만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는 이미 만 44세로 제한했던 연령 기준도 폐지했다.

금희의 고통은 6번째 시술에 실패한 그 날 이후부터 시작된다.

난임 시술을 그만두면서 금희를 향한 사랑까지 그만두기로 한 준호가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기로 하면서 드라마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온갖 고난을 여름이와 함께 이겨냈던 금희에게 드라마는 백혈병까지 안겨준 상태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더 극한 상황을 만들었겠지만, 실제로 난임 부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금희처럼 고단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6번째 인공수정에도 아기 소식을 듣지 못해 한강 고수부지에서 울면서 엄마 '나영심(김혜옥)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금희의 모습이 현실 속 난임 부부들에겐 남 얘기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딸에게 건네는 엄마 나영심의 위로도 헛말이 아니다. "고생했어 우리 딸. 울지마 금희야. 너 잘못 아니니까 너무 기죽지 말고."

현재 정부의 난임 부부 지원 외에도 지방자치단체별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난임 부부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을터다. 드라마 속 준호 같은 남편이 없더라도 난임 부부들이 기죽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사회의 고민도 계속돼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lim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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