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터지는 '고요 속의 외침'?..난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패딩 안에 두 글자!!"
-"팬티 안에... 두 글자?!"
지난 7일 방영된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 한 장면이다. 이날 방송엔 예능프로 단골 게임인 '고요 속의 외침'이 등장했다. 이 게임은 음악이 크게 나오는 헤드폰을 껴 외부 소리를 차단한 뒤, 앞에서 설명하는 사람 입모양을 보고 정답을 맞추는 게임이다. 이때 입모양을 잘못 읽어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방송에선 '핫팩'을 설명하려는 출연자가 "패딩 안에 두 글자"라고 하자 정답을 맞추려는 출연자가 이를 오인해 "팬티 안에... 두 글자?"라고 말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다른 출연자들은 바닥에 뒹굴며 포복절도했다. 방송 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도 해당 부분이 편집된 영상이 공유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고요 속의 외침'이 예능에 처음 등장한 건 KBS 1TV 예능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서였다. 당시 출연자 4~5명이 한줄로 서서 헤드폰을 끼고 같은 단어를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게임은 가족오락관에서 약 14년 간 계속될 만큼 인기가 좋았다.
최근에는 tvN '신서유기', JTBC '아는 형님' 등에 심심찮게 '고요 속의 외침'이 등장하고 있다. 방영될 때마다 숱한 '짤방'(인터넷상 사진이나 영상)을 생성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요 속의 외침'은 예능프로 고전이자 단골 게임이지만, 이 게임이 TV에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리게 된다는 이들이 있다. '농인'(聾人)들이다. 농인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한국수어(手語, Sign language)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7일 '아는 형님' 방송 후 농인이라 밝힌 이가 SNS에 "게임 참여자가 엉뚱한 단어 말할 때마다 바보 아니냐며 웃는 사람들, 뭐가 재미 있는 건지"라며 "일반 학교에서 청인(聽人, 들을 수 있는 사람) 동급생한테 저런 짓을 수없이 당했다. 재미 있을 리가"라고 글을 올렸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에겐 소리를 차단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기대하는 설정 자체가 상처일 수 있는 얘기다. 18일 서울 서대문구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만난 농인들도 '고요 속의 외침'이 농인들에게 아픔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해 수어통역사 도움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민영 서울수어전문교육원 대리는 "자라 온 환경이 달라 농인이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면서도 "경험에서 비롯된,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고요 속의 외침'을 보다가 채널을 돌릴 수 있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은영 수어강사는 "본인이 농인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농인인 아이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는 이런 방송이 싫을 수 있다"며 "부모가 농인이라는 이유로 또래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라면 그럴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만난 농인들은 농인과 청인이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에 그로 인한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모두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지만, 농인의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닌 한국수어다. 한국수어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면서 국어와 함께 대한민국 법정공용어로 인정됐다. 또 농인들 사이엔 '농문화'라 불리는 고유의 문화도 있다.
장민영 대리는 "농인과 청인의 문화가 달라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그 중 하나가 '터치'"라고 말했다. 농인들은 다른 사람을 부를 때 당연하게 터치를 해 상대의 주목을 끌지만 청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장 대리는 "터치하면 농인은 '왜? 무슨 일인데'라고 반응하는 반면, 청인 입장에선 터치가 기분 나쁜 행동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영 강사도 "(차에 있는 사람을 부르기 위해) 농인들은 자동차 위를 툭툭 치거나 차에 신발을 던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반응이 다르다"며 "농인은 '앞이 위험하니 신발을 던졌나보다'라고 생각한다면 청인은 시비건다고 생각해 불쾌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해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다. 이 강사는 "예전에 한 농인이 커플에게 폭행 당하고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며 "커플 중 남자친구가 '왜 자꾸 내 애인을 쳐다보냐'고 농인을 때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인은 길을 걸을 때 (듣지 못하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오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선희 서울수어전문교육원 과장은 "농인과 청인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니 거기에 맞춰서 조사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농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경찰, 변호사 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비해 소통이 안 된다고 농인을 비웃거나 무시하는 사례는 줄었지만, 여전히 농인에 대한 이해도는 낮은 편이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 따르면 청각장애인에는 농인 외에 입술을 읽거나 발성연습으로 음성언어를 습득해 소통하는 '구화인', 어느 정도 청력이 있어 보청기가 있으면 소통이 가능한 '난청인' 등이 있다.
장민영 대리는 "'고요 속의 외침'에서 상대가 정답을 못 맞추면 더 크게 말하곤 해서 그런지, 청인들이 가끔 저를 향해 더 크게 외치는 경우가 있다"며 "저는 못 듣는데 왜 더 크게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농인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크게 외치면 들릴 거라고 생각한 거 같다"고 덧붙였다.
김선희 과장은 "(청각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감수를 하다보면 등장인물이 농인인지 구화인인지 구별 없이 설정된 경우가 많다"며 "농인은 다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어 교육으로 농인과 농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전했다. 장 대리는 "학교에서 영어, 한자 등을 배우며 그 나라 문화를 익히는 것처럼 수어도 초중고 교육과정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며 "하나의 언어로서 수어를 배우고 농문화를 학습한다면 차이가 좁혀져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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