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 만날 땐 잠시 꺼도 좋다더니..011, 정말 완전히 꺼야 할까

곽희양 기자 2019. 12. 2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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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SKT, 2G 서비스 조기종료 신청…과기부, 내년 초 결정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스피드 011.” 1996년 시작한 2세대(2G) 이동통신에 대한 SK텔레콤의 TV광고 문구다. 5G 시대가 열린 2019년, 2G와 ‘011’ 번호는 그만 꺼야 할까, 계속해야 할까.

2G 주파수 사용기간은 2021년 6월30일까지다. SK텔레콤은 지난 2월 “올해 2G 서비스를 조기 종료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지난 11월 정부에 조기 종료신청서를 제출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조기 종료 여부를 내년 초에 결정한다. 심사를 위한 자문위원회 구성·운영과 이용자 보호조치 검토 작업 등에는 두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지난 10월 기준 SK텔레콤의 2G 가입자는 54만9500여명이다. 2G 가입자를 줄이려는 SK텔레콤의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9월(108만6049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12월 현재 2G 가입자는 40만명 초반대로 추정된다. 반면 LG유플러스의 2G 가입자는 지난 10월 기준 57만600여명이다. 10월 기준 5G 가입자는 SK텔레콤 177만1400여명, KT 121만700여명, LG유플러스가 100만여명이다.

LG유플러스는 2G 서비스 조기 종료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3G 서비스를 시행하지 않은 LG유플러스는 2G 서비스 종료를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의 2G는 기존 서비스의 폭을 넓힌(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을 업그레이드한) 일종의 ‘2.5G’ 버전이다. SK텔레콤은 2G와 다른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WCDMA)으로 3G로 쓰고 있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의 상황이 약간 다르다는 의미다.

망 유지 어렵고 돈 안된다는 이유

가입자에 54만원 보상책 내놨지만

소상공인 등 “011 못 쓰면 생계 타격

번호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

010 통합 추진하는 과기부 ‘불가’

2011년 종료한 KT는 ‘법적 다툼’

SK텔레콤이 2G 서비스를 조기 종료하려는 이유는 망 유지가 어렵고, 돈도 안되기 때문이다. 2005년을 전후로 에릭슨·노키아 등 통신장비업체는 2G 장비 생산을 중단했다. SK텔레콤 측은 “각 국사(기지국)에는 통신장비가 고장날 경우를 대비해 예비장비를 구비해놓는데 2G 장비 생산이 중단돼 일부 국사에는 예비장비가 마련돼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예비장비의 소진이 예상되는 내년에는 2G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게 SK텔레콤 입장이다. 여기엔 저렴한 2G 요금제로는 2G망 운영비용을 뽑아내기 힘들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SK텔레콤은 2G 가입자에게 54만원 수준의 보상책을 내놨다. 2G에서 3G·LTE(4G)·5G로 전환하는 이들에게 휴대전화 구매비용 30만원 및 24개월간 요금 1만원 할인을 받거나, 24개월간 매달 요금제의 70% 할인(LTE 최저요금제 기준 55만4400원 할인)을 택하도록 했다.

하지만 2G 이용자들은 조기 종료를 찬성하지 않는다. 2G 서비스가 종료되면 이들이 쓰고 있는 ‘011’ 번호를 쓸 수 없게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소상공인들에게 011 번호는 오랜 시간 영업을 해왔다는 상징인 동시에 생계수단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번호를 바꾸면 고객이 떨어져나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011 등의 식별번호를 계속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인 ‘010통합반대운동본부’는 “2G 서비스 유지를 원하는 게 아니다. 2G를 종료하더라도 사용하고 있는 011 번호 그대로 3G·LTE(4G)·5G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또 “한시적 번호이동(2021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011 번호로 3G·LTE(4G)·5G를 사용하게 하는 정부 정책)이나 변경 번호 안내 서비스로는 불충분하다”며 “011 번호를 계속 쓰게 해달라”고 밝혔다.

이는 정부 정책과 상반된다. 정부는 011·016·017·018·019 등 5종류의 식별번호를 2004년 1월부터 010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펴왔다. 010으로 통합하게 되면 기존 011 등 5개 식별번호로 4억개의 번호를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량 등 새로운 서비스에 부여하겠다는 구상에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책의 일관성과 형평성 등의 문제 때문에 2021년 6월 이후 일부 이용자에게만 011 등의 식별번호를 허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2G·3G·LTE(4G)·5G로 발전하며 분할된 주파수를 회수해 5G용으로 사용하겠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다.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도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관련 사업자와 협의해 2G망 조기 종료를 고려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점을 고려해 2G 서비스 조기 종료와 011 번호 사용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게 SK텔레콤의 속내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SK텔레콤이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측은 지난 2월 SK텔레콤이 2G 서비스 조기 종료 계획을 밝히자 “SK텔레콤 2G 이용자는 최소 10년 이상, 길게는 30년간 가입해 이용한 사람들”이라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2G 조기 종료 수순을 밟는 것은 ‘토사구팽’ ”이라고 반발했다.

정부·SK텔레콤과 2G 이용자의 입장차가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면 2011년 법적 다툼까지 간 끝에 2G 서비스를 종료한 KT의 사례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LTE 주파수 대역의 일부를 2G 주파수로 쓰려 한 KT는 2G 가입자가 100만명 수준일 때 2G 서비스 종료를 진행했다. 결국 3차례 연기 끝에 가입자가 15만명으로 줄어드는 시점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당시 KT 이용자들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종료 승인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2년 2월 방통위 손을 들어줬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낸 헌법소원에서 “이동전화번호는 사업자와의 서비스 이용계약에 관한 것일 뿐, 번호 통합으로 가입자의 인격권, 재산권 등이 제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법적 다툼으로 인한 혼란이 반복되기 이전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강화된 보상책 등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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