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간 바라만 본 북녘땅..부치지 못한 영상 편지

김희남 기자 입력 2019. 12. 21. 21:27 수정 2019. 12. 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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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면 전해주려고 실향민들이 만든 영상 편지가 2만 편 넘게 보관만 돼 있습니다.

전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김희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93세 아버지와 50대 막내아들이 길을 나섭니다.

찾아간 곳은 경원선 종착역인 강원도 철원군 백마고지역.

[아들 : 지금은 끊겨 있잖아요. (응. 끊겨 있구나) 빨리 여기 연결돼야 아버지도 고향 땅 한번 밟으시고 해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야.)]

이운용 할아버지의 고향은 철원과 맞닿은 북녘의 김화군 창도면.

분단 이전에는 철원에서 창도를 지나 금강산까지 전기철도가 놓여 자주 오가던 길입니다.

지척인 이 길을 69년간 이렇게 바라만 보면서 지내왔습니다.

[이운용/(93세) 실향민 : 내가 가장인데 식구들을 전부 버리고 혼자만 나왔단 말이에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같이 데리고 나오든지 못 나오든지 했을 텐데.]

북녘 가족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영상 편지를 만든 지 14년.

[대한적십자사 자료(2005년) : 아버지 제사는 음력으로 2월 그믐날인데, 어머니 돌아가신 날을 몰라 그날 한꺼번에 지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만들어진 실향민들의 영상 편지는 이렇게 사연 하나하나가 한 편의 가슴 아픈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2만 편을 넘는 영상 편지 가운데 북한에 보내진 건 20편에 불과합니다.

[정준영/대한적심자사 남북교류팀장 : 총 21,000편이 촬영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DVD로 이렇게 보관했고요. 지금은 USB나 이런 장치로 촬영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지난해 평양 공동선언에서 영상 편지 교환과 화상 상봉을 우선 해결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이경훈 씨는 최근 연로한 아버지의 사연을 영상으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아들 이경훈 씨 제작 영상 : 몇 년 후에는 더 이상 이산가족 상봉은 진행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세상을 떠나가는 그들의 아픈 기억들은 이후 한국 현대사의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운용/(93세) 실향민 : 안타까운 일이지. 한국은 내 땅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못하니 말이야.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

(VJ : 안민신) 

김희남 기자hn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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