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80% 완치되는데.. 또 하나의 투병 '사회 복귀'

이영빈 기자 2019. 12.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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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외톨이 되기 쉬운 소아암 완치자들
일러스트= 안병현

10대 소아암(癌) 환자에게 병원은 집이다. 소아암은 완치율이 80%가 넘는다. 완치 청소년이 진짜 집으로, 학교로, 직장에 갈 수 있다는 통계다. 그러나 기억나는 삶의 절반은 고통과 투병. 생존했지만, 막상 무엇을 하려 생존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었다면 그나마 더 나았겠지만, 아이에게는 모든 게 새로운 시작이다.

암을 앓는 소아(15세 미만)는 증가 추세다. 소아암 진료 인원은 2010년 1만2000명에서 5년 새 2000명이 늘었다. 완치자도 늘었다. 암 완치 기준은 발병 판정 이후 5년간 살아있는 경우를 말한다. 2016년 처음으로 절반(52.7%)을 넘어섰다. 앓는 사람도 많고 완치도 많다는 뜻이지만,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도울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외모가 변한다. 방사선 치료로 탈모, 사시(斜視) 등이 온다. 성장기라서 팔다리 길이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도 한다. '옮는 것 아니냐'는 다른 학부모의 근거 없는 걱정까지 건너건너 듣는다. 치료 기간에 유치원, 초·중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혹 성인이 되어 취직하더라도 건강검진 받을 때마다 '역시 소아암 출신이라…'는 뒷얘기를 듣는다. 이들이 요구하는 사회 안전망은 뭘까. '아무튼, 주말'이 완치자와 부모들을 만났다.

외로운 소아암 완치자

소아암 치료를 마친 초등학생 수진(가명·11)이는 학교가 싫다. 놀 친구가 없다. 수진이는 "내가 봐도 그럴 만하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받은 탓에 머리가 듬성듬성 빠졌다. 왼쪽 눈은 사시. 같은 반 아이들이 괴롭히지는 않지만, 다가오지도 않는다. 늘 병원에 있었던 탓에 친구들과 친해지는 법을 모른다. 점심을 먹고 나면 늘 혼자다. 수진이 어머니는 "같은 반 친구나 선생님에게 잘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 역시 내 아이가 짐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며 "아침에 등교하기 싫어 낑낑대는 아이를 위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환자 대부분은 갑자기 머리가 부서질 듯 아프거나, 3주 가까운 고열 등 뚜렷한 증상으로 소아암을 발견했다. 이미 암이 꽤 진행됐다는 뜻. 그만큼 '독한 약'을 써야 한다. '독한 약'은 후유증을 낳는다. 완치자는 심장병, 2차 종양, 인지장애, 청·시력장애 등 각종 질환 발병률이 일반인보다 적게는 6배에서 높게는 76배까지 된다.

소아암은 성인의 암과 다르다. 성인이 많이 걸리는 간암, 위암 등은 환경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생후 기간이 짧은 소아는 그렇지 않다. 혈액암, 뇌종양을 제외하면 신경모세포종 등 익숙하지 않은 병명이 많다. 항암 치료도 성인보다 더 잘 듣는다. 소아암 완치율이 80%에 육박하는 이유다.

대부분 부모는 치료에만 집중한다. 그 뒤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소아암 완치자 김유진(가명·32)씨는 어머니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다. 운동선수 에이전트를 꿈꾸던 중학교 1학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유진씨에게 소아암이 찾아왔다. 2년 7개월 걸린 항암치료, 고등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머니의 미안함은 "그때 공부를 시켰다면 지금 에이전트가 됐을 수도 있다"는 후회에서 나온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유진씨는 "괜한 말씀"이라고 했다.

여러 이유로 생활이 버겁지만, 차별받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한다. 학생 때는 물론, 직장에서도 중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면 대우가 변한다.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해외 출장 등을 원해도 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장애인처럼 복지 혜택을 받지도 않는다. 일반 장애인은 지원금, 취업, 대입 등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일반 사람과 같은 출발선에서 불편한 몸으로 달리는 셈이다. "염치없지만, 저희를 배려해주세요."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들은 답변이었다.

소아암 완치자들이 지난달 23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유명 유튜버의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리부틴(RebooTeen) 프로젝트 더 많아져야

지난달 23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 10대 후반~20대 초반을 대상으로 크리에이터, 웹툰 작가의 강의가 열렸다. 흔한 강의였지만, 듣는 사람이 평소와 달랐다. 소아암 완치자들이었다. 유명 유튜버 '디바 제시카'에게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투병을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다"는 팬심 가득한 고백이 이어졌다. 항암 만화를 그린 웹툰 작가 '김보통'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직업을 얻어야 하는지 고민을 털어놨다.

같은 고통의 경험이 공감대를 만든다. 이야기가 통하니까 즐겁다. "피자 많이 먹어? 난 엄마가 못 먹게 해" "나는 조혈모세포 이식(항암치료)할 때도 피자 생각했을 만큼 좋아해" "그렇게 아픈데 피자 생각을 했단 말이야?"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는 나누지 못했던 대화들이다.

중증질환 의약품을 주로 다루는 '한국 BMS제약'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소아암 완치를 위한 '리부틴'(RebooT+Teen·다시 시작한다는 '리부트'와 10대라는 의미의 '틴') 프로젝트를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1999년부터 독거 노인, 빈곤 아동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잃어버린 10대를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지 도와준다. 만약 웹툰, 유튜브 등 웹콘텐츠에 관심이 많다면 관련 교육을 지원해주는 식이다.

완치자가 병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 멘토로 나서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완치자들이 나서서 치료 후 생활을 꾸준히 조언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2015년 기준 인구 통계로 볼 때, 소아암 발병률은 1.1%. 드물지만,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주변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중병을 앓았다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숨기 때문이다.

김아인(가명·21)씨는 환자들에게 자신을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본인이 투병 시절 꿈꿨던 직업이다. "앰프에서 나오는 전기기타의 지지징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투병하며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평범한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소아암 앓는 아이들을 위해 작곡할 거예요." 반응이 가장 좋았던 멘토 중 하나다. 환우들은 그를 보며 나았을 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현실적 조언에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병에 걸리면 체력이 많이 부족해져요. 저는 앓기 전의 절반으로 떨어졌어요. 다 나았을 때를 대비해서 평소 운동, 음식 등으로 체력을 길러놔야 해요. 병원 안에 갇히지 마세요. 여러분은 다시 시작해야 해요. 하고 싶은 게 많잖아요." 항암은 고독한 싸움이다. 이런 조언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소아암 치료와 동시에 사회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몸은 국가에서 치료해준다. 만 18세 미만 소아암 환자에게 진단, 치료, 재발 이후 치료까지 일체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는 책임지지 않는다. 프로젝트 '리부틴' 담당자인 권순정 BMS제약사 과장은 "초·중학생 때 2~3년은 성인 때 같은 기간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더 많다. 신체적 치료에만 집중한다면 이 시기를 고스란히 날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의 동년배 친구를 꾸준히 병실로 데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완치됐을 때 사회에서 적응해야 하는 만큼, 투병 생활 일반을 이해하는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한 완치자 부모는 "딸과 친하다던 아이의 동의를 구해 데려왔는데, 또 오겠다고 했다"며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매년 1000명가량 완치자가 누적되지만, 사회적 관심은 낮다. 박현진 국립암센터 소아암센터장은 "낙인이 싫어서 완치해도 숨는 경우가 많다"며 "민간 영역에 내버려두지 말고, 국가가 일정 부분 사후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취재하며 만났던 완치자들은 하나같이 물었다. "제 모습이 이상한데 괜찮을까요?" 대답했다. 말도 정말 잘하고 다른 사람과 차이를 모르겠다고. 그들이 다시 부탁했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셨다면 널리 알려 주세요. 대부분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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