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에 밀린 '학식', 사라지거나 비싸지거나

조문희 기자 2019. 12. 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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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밥먹을 권리 뺏지 말라” 19일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학생회관에 기숙사 식당 폐점 반대 대자보가 붙어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jeongk@kyunghyang.com

서울시립대 식당 내년 폐점 서울대도 운영시간 단축 형편 어려운 학생들 소확행 늘어나는 식비에 가물가물 대학 ‘수지타산’ 논리 벗어나 교육여건 후퇴시키지 말아야

저렴하고 푸짐한 대학생 식사의 대명사였던 ‘학식’(학생식당)이 사라진다. 밥값도 비싸진다.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는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던 기숙사 식당을 내년 2월 폐점하기로 지난 6일 결정했다. 기숙사 식당은 주말 식사와 평일 조식까지 제공하는 학교 내 유일 식당이었다. 2000~4000원에 식사를 제공했다. 1154명의 기숙사 학생뿐 아니라 시험기간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교환학생, 유학생 등 다양한 학내 구성원이 이용했다. 인근 백반집의 음식 가격은 최소 5000원이다. 기숙사 식당이 사라지면 학생들 식비는 늘어난다.

서울대 생협도 지난달 1일부터 직영 식당 2곳의 운영시간을 단축했다. 동원관 식당은 저녁 식사 제공을 중단했다. 학생회관 1층 식당은 점심시간을 1시간, 저녁시간은 30분 줄여 운영한다.

대학들은 수익성 악화를 근거로 들었다. 학생단체인 노동자연대 시립대모임에 따르면 학교는 연 9000만원가량의 적자를 거론했다. 지난 9월엔 적자 재정을 이유로 학내 모든 직영 식당의 식비를 500원 올렸다. 서울대에서도 생협 부이사장직을 맡은 정효지 학생처장이 지난 4일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공동행동)과의 면담에서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식당) 유지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 생협은 오는 20일 이사회를 앞두고 안건에 ‘식대 조정(안)’을 올려둔 상태다.

사라지는 학식, 오르는 밥값에 학생들은 당혹감을 표했다. 시립대 학생 양선경씨(22)는 “학교 인근에는 아침에 여는 식당이 많지 않다. 이 주변은 상권 발달 지역이 아니다 보니 주말이나 방학 때 가게가 많이 닫는다. 학생들의 식사에 제약이 많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 양진영씨(21)는 “기숙사에 살거나 시험·취직 준비로 종일 학교에 머무는 학생은 세끼를 학교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면서 “한끼 1000원씩만 가격이 올라도 한달이면 만만찮은 돈이 된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겐 그 비용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고 했다. 양씨는 “학식 이용시간이 제한되면 때를 놓친 학생들은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먹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학생 단체들은 학식도 교육 여건이라고 본다. 이들은 국공립 대학의 수지타산 논리를 비판했다.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는 18일 성명을 내고 “생협이 학내에서 식당, 카페, 매점 등을 운영하는 것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함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함도 아니다. 캠퍼스 구내식당의 존재 의의는 대학 구성원(특히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며 “대학본부는 식대 설정을 수지타산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대가 5000억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가졌고 생협으로부터 매년 4억5000만원가량의 임대료를 받는다고 했다. 식대 인상 없이도 식비 부담을 안정화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연대 측은 “(시립대는) 이미 턱없이 부족한 강좌 수와 11%에 불과한 기숙사 수용률 등 열악한 교육 여건으로 학생의 불만을 사왔다”면서 “대학의 공공성을 대표하는 공립대학인 시립대가 수익성 논리로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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