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없는 유럽연합.. 'EU 제1공용어' 영어의 운명은?

김태훈 2019. 12. 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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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성사되면 영어 EU 공식 공용어서 빠져 / "현재 EU 집행위 문서 80% 이상이 영어로 작성" / '프랑스어의 옛 영광' 재현 노리는 마크롱 대통령 / '경제대국' 독일도 야심.. "영어 지위 유지될 것"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밀어붙이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세계일보 자료사진
 
“영국 없는 유럽연합(EU)에서 영어가 지금처럼 공용어 위치를 지킬 수 있을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영국 총선에서 압승하며 내년 1월31일로 예고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간 ‘영국 없는 EU’에 당혹감을 드러내 온 다른 회원국 지도자들도 이제 브렉시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가운데 그간 영어가 누려 온 EU의 제1공용어 지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이목이 쏠린다.

◆"EU 집행위 문서 80% 이상이 먼저 영어로 작성"

15일 EU에 따르면 현재 영국을 포함한 회원국 수는 28개이고 공용어는 24개에 달한다. 이는 ‘언어 다양성 보장’이란 명분 아래 EU 회원국이 가입 시 희망한 언어 한 개씩을 무조건 공용어로 지정해왔기 때문이다.

영국이 빠져나가면 회원국 수는 28개에서 27개, 공용어도 24개에서 23개로 줄어든다. 옛 영국 식민지로 현재 영어가 곧잘 통용되는 아일랜드와 몰타는 EU 회원국 가입 시 영어 말고 자기네 독자 언어를 공용어로 선택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브렉시트가 EU 공용어에 미치는 효과는 ‘-1’에 불과한 셈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본부.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사실상 세계 공용어어 다름없는 영어가 EU 공용어에서 제외되는 효과는 단순히 ‘24에서 1을 뺀’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박희권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오늘날 EU 집행위원회 문서의 80% 이상이 영어로 작성된 뒤 나머지 23개 공용어로 번역된다”며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EU 공무원, 로비스트, 언론인 간에 영어가 주로 사용된다”고 소개한 바 있다.

◆'프랑스어의 옛 영광' 재현 노리는 마크롱 대통령

EU 공용어로서 영어를 대체할 만한 언어로 우선 프랑스어가 꼽힌다. 사실 영어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아지기 전인 1990년대 초까진 EU에서 프랑스어 사용이 대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어보다 영어가 훨씬 더 낯익은 북유럽 및 동유럽 국가들이 EU의 새 회원국으로 속속 가입하며 프랑스어의 지위는 뚝 떨어졌다.

유럽연합(EU)의 두 ‘맹주’인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침 브렉시트를 계기로 프랑스는 자국어를 EU의 제1공용어로 되돌려 놓으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브렉시트 현실화가 임박하자 공개석상에서 “영국의 EU 탈퇴가 논의되는 지금 영어가 EU에서 이토록 널리 쓰이는 상황은 역설적”이라며 “영어의 (EU) 지배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프랑스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는 EU 기구의 양대 실세인 집행위원장과 유럽중앙은행 총재 직위에 각각 프랑스어를 잘하는 독일 정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그리고 자국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앉히고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영국 없는 EU’에서 프랑스어의 위상을 높이려는 사전포석으로 풀이된다. 

◆'경제대국' 독일도 야심… "영어 지위 유지될 것"

문제는 EU에서 프랑스와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이 영어 대신 선뜻 프랑스어 손을 들어줄지 미지수란 점이다. ‘베를린에선 독일어보다 영어가 더 잘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독일인들은 영어에 익숙하다.

더욱이 독일 역시 EU 역내 ‘제1의 경제대국’이란 위상에 걸맞게 자국어를 새로운 EU 공용어로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슬슬 일어나고 있다. 브렉시트 논의가 본격화한 이후 독일 유력 정치인들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독일 정부가 EU 기관과 공식 행사에서 독일어 사용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는 영어로 EU와 소통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는 독일이나 북유럽 및 동유럽 회원국 외교관들이 굳이 영어 대신 새 공용어를 채택하고 그를 배우느라 공을 들이진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록 ‘영국 없는 EU’이지만 공용어 자리는 계속 영어가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란 뜻이다.

이와 관련, 룩셈부르크 출신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에 모두 능통한 장 클로드 융커 전 EU 집행위원장은 “영어는 EU의 일상적인 실무 언어가 됐다”며 “브렉시트가 그걸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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