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통·농약통..일본 해안에 널브러진 '한글' 쓰레기들
지난해 8월 5일 일본 요코하마(橫浜)시 가마쿠라(鎌倉) 한 해변. 몸길이 10m쯤 되는 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죽은 고래 뱃속에는 오징어·새우 등과 함께 길이 12㎝가 넘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가 들어있었다.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가 고래 뱃속에서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썩어 고래의 죽음을 재촉한 것이다.
해류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 바다 이곳저곳을 흘러다니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바다로 사방이 둘러싸인 섬나라 일본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심각하다.
플라스틱 비닐을 뱃속에 품은 채 죽은 고래가 발견된 것처럼 일본 해안엔 한국·중국 등의 외국에서 흘러온 플라스틱 쓰레기가 수시로 발견된다.
규슈 해안에 한글 적힌 통발이
가라쓰는 한국 부산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로 209㎞ 정도 떨어진 해안 도시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경북 영덕', '근해 통발'이라는 한글이 쓰여 있었다. '김○○'라는 통발 주인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서 만들었다고 쓰인 파란색 플라스틱 화학 약품통 여러 개도 있었다. 국내산 '농약' 통까지 눈에 띄었다.
해류를 타고 일본 가라쓰 해안으로 건너온 플라스틱 쓰레기들이었다.
중국어가 쓰인 음료수병까지 더하면 100개 가까이가 해류를 타고 일본으로 온 외국산 플라스틱 쓰레기였다.
모래 속엔 미세플라스틱 가득
인공적으로 모래 해변을 만든 세계적인 관광지다. 유명 관광지답게 잦은 해안 청소로, 모래사장엔 눈에 보이는 큰 플라스틱 쓰레기는 없었다.
그렇지만, 5㎜ 이하의 눈으로는 보기 힘든 미세플라스틱 쓰레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취재팀이 미세플라스틱 관찰 장비를 이용해 모모치 해변의 모래를 수거, 직접 조사한 결과에서다.
그 결과 시료를 채취한 3곳 중 2곳에서 검은색·회색 등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는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이 모래에 섞여 있었다.
비치 클리너로 플라스틱 치워
가라쓰시의 경우 인구 12만명 정도의 작은 지방 도시다. 하지만 한 대당 1억5000만원 하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전용 장비를 사들여 활용 중이다.
지난달 20일 오후 찾은 가라쓰 히가시노하마 해안. 트럭 한 대가 해안 모래사장을 오가고 있었다.
비치 클리너(Beach Cleaner)라는 장비가 실린 트럭이었다.
해안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전문적으로 처리한다.
삽으로 쓰레기가 섞여 있는 모래를 퍼 올려 그물망에 올리면, 모터가 작동하면서 그물망을 '탈탈' 털어, 최종적으로 망에 쓰레기만 남기고 모래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내는 방식이다.
주민들 자발적으로 쓰레기 치워
가라쓰 시청에서 쓰레기봉투를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나눠주면, 그 봉투를 챙겨 들고 연중 수시로 가라쓰시 8개 지역 해안을 나눠 청소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라쓰시 해안에서만 시민단체 등이 지난해 15번의 청소를 통해, 치운 쓰레기만 135t에 이른다. 2017년엔 11번의 청소로 169t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일본 역시 수거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최종 처리 방법은 소각이라고 했다.
환경오염이 우려스럽지만, 결국 불에 태워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카에 씨는 "일본에선 초등학교에서부터 쓰레기를 함부로 안 버리도록 교육하는 데 힘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타규슈=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