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비키니] 돈은 가장 많이 쓰지만 성적은 가장 나쁜 롯데
[주간동아]
"목표가 (홈런) 65개였는데 50개밖에 못 쳐서 팬들에게 죄송하고 그 죄송한 마음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달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제가 은퇴하기 전 우승을 만들어준 후배들한테, 팬들한테 감사합니다. 우승 공약대로 우승컵에 술을 따라 마셨는데 그날 필름이 끊겨서 술맛이 기억이 안 납니다."(이대호)
"(이대호 선배가) 팀을 잘 만들어주셔서 제가 편하게 올 시즌 주장 역할을 한 것 같고 어쨌든 제가 주장 할 때 우승해서 더욱 기분이 좋습니다. (타율이 무려 0.470인데 비결이 뭔가요?) 대충 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와서 앞으로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던 그런 시즌이었습니다."(손아섭)
선수들이 정신이 나간 게 아닙니다. 그저 지난해(2018) 구단 팬미팅 자리에서 한 이야기라 그렇습니다. 진행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1년 뒤로 가서 한국시리즈 우승 소감을 밝혀보자'고 제안하자 이렇게 '농담'을 건넨 겁니다.
내년에는 다르다. 내년에는…
롯데는 '가을야구'와 별 인연이 없는 팀이지만 '겨울야구'에서는 자타공인 최강팀입니다.제9구단 NC 다이노스가 1군 무대에 합류한 2013년 이후 롯데가 자유계약선수(FA)시장에서 쓴 돈은 총 613억 원. 이 부문 2위인 한화 이글스(566억5000만 원)와 비교해도 46억5000만 원이 많은 금액입니다. 46억5000만 원이면 어지간한 준척급 FA를 한 명 더 영입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롯데는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선수단 몸값 총액이 제일 많은 팀이 됐습니다.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올해 롯데 선수단 연봉은 총 101억8300만 원. 리그에서 유일하게 선수단 연봉으로 100억 원을 넘게 쓰는 팀이 롯데입니다.
문제는 돈을 많이 받는다고 성적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점. 연평균 37억5000만 원을 몸값으로 받는 이대호(37)는 이번 시즌 홈런 16개로, 2004년 붙박이 선수가 된 이후 제일 적은 기록을 남겼고, 24억5000만 원을 받는 손아섭(31)은 타율 0.295로 역시 붙박이가 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3할 타율에 실패했습니다.
간판타자 두 명이 이렇게 부진했는데 팀 성적이 좋을 리 없습니다. 롯데는 올 시즌 48승 3무 93패(승률 0.340)로 2004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졌습니다. 팀 연봉 1위 구단이 최하위에 그친 건 프로야구 역사상 이번 시즌 롯데가 처음입니다.
또 팀 승률 0.340은 프로야구가 10구단 체제로 바뀐 2015년 이후 나온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지난겨울 롯데에 가장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FA 자원 양의지(32·NC)가 올 시즌 남긴 타율(0.354)이 롯데 승률보다 높습니다.
이렇게 팀이 무너지면서 양상문(58) 전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부임 첫 시즌 도중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양 감독이 사퇴하던 날 이윤원(52) 전 단장 역시 구단 살림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렇다고 팀 분위기가 바뀐 것도 아닙니다. 양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94경기에서 34승 2무 58패(승률 0.370)를 기록한 롯데는 공필성(52) 감독 대행 체제에서는 14승 1무 35패(승률 0.286)가 전부였습니다.
이렇게 롯데는 문자 그대로 '총제적 난국'에 가까운 게 현실이지만, 이번 겨울에 나오는 기사를 보고 있으면 '내년에는 정말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스토브리그' 때만 되면 롯데에 우호적인 기사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롯데를 취재하고 싶어 언론계에 몸담게 됐다는 R 기자는 "롯데 자이언츠 기사가 쓰기 쉽기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오프시즌 롯데 자이언츠 기사는 날짜와 이름만 바꾸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선수 또는 코칭스태프 이름만 바꿔서 '◯◯◯ 합류, 내년 롯데 자이언츠는 전력 상승 기대'라고 기사를 쓰면 된다는 겁니다. R 기자는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어지간한 골수팬이면 다 안다. 롯데 자이언츠는 2020년에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성민규는 다르다. 성민규는…
성 단장 역시 롯데 일원답게 이번 겨울 '기사 폭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한국시리즈가 끝난 다음 날인 10월 27일부터 이 기사를 쓰고 있는 12월 11일까지 '성민규 단장'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총 320개.
같은 조건에서 정민철(47) 한화 단장이 등장하는 기사가 두 번째로 많은 258개였으니까 성 단장 기사가 25%가량 더 많았던 셈입니다. 롯데를 제외한 나머지 9개 팀 단장 이름이 들어간 기사는 평균 146개로 성 단장 기사가 2.2배 많았습니다.
성 단장 기사에서 제일 눈에 띄는 낱말은 '포수'였습니다. 전체 기사 320개에 포수라는 낱말은 총 1013번 등장했습니다. 포수 문제에 대해 성 단장이 찾은 첫 번째 답안은 한화에서 지성준(25)을 트레이드해온 것.
‘깜짝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성 단장은 "나는 승부사가 아니라 '플랜맨'"이라며 "포수 수급을 위해 FA 영입과 2차 드래프트, 트레이드 등 가능한 모든 계획을 따져봤다. 지성준을 데려온 건 그 많은 플랜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사에 등장한 횟수 자체는 86번으로 많지 않지만 성 단장은 '프로세스'라는 낱말도 강조합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야구는 결국 선수가 한다. 나는 단장으로서 팀이 올바른 프로세스를 거쳐 체질을 바꾸는 일을 할 뿐"이라며 "철저한 과정을 거치면 설령 실패해도 복기(復碁)를 통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보고 난 뒤 지난해 7월 '정신의학신문'에 실렸던 칼럼 '롯데 자이언츠 유발성 우울증'이 생각났습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 칼럼에 '무기력하게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지겨운 루틴을 버텨내는 것, 게으름과 나태함을 이기고 매일 티끌만큼 발전하는 모습에 내일이 있다고 믿는 것만이 우울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썼습니다. 성 단장이 '체질을 바꾼다'고 말하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이런 방법과 맞닿아 있을 겁니다.
롯데 선수들은 칼 퇴근 공무원?
박 전문의는 칼럼에서 최근의 롯데 야구를 이렇게 평합니다. '대충 버티고 실패해도 퇴근할 생각에 허허허, 야구 선수인지, 칼 퇴근 공무원인지, 특히 9회 말이나 연장 승부에선 집중력이 더 떨어집니다. 팀 전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지요. 스포츠,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야구팀이라면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인지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들에게 기대하고, 힘든 하루를 오직 야구를 보면서 위로받고 환기시키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야구를 안 보거나 응원팀을 바꾸는 것인데, 고향이 부산이라 이것이 도저히 힘들다면 기대를 낮춰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추억 속의 염종석과 주형광을 기억하기에 애정인지 집착인지 모를 기대로 또 실망을 반복하지요.'
질문을 조금 바꾸자면 이렇습니다. 성민규의 '프로세스'가 셀까요? 아니면 롯데 자이언츠의 '체질'이 더 셀까요?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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