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3초' 결론까지 2년.. '곰탕집 성추행' 유죄 의미

남형도 기자 2019. 12. 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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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이슈+]피해자 진술 보고 판결, 경험 반영하려는 노력.."향후 사법부 판단 지침, 의미 있는 판결"

[편집자주] 온라인 뉴스의 강자 머니투데이가 그 날의 가장 뜨거웠던 이슈를 선정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드립니다. 어떤 이슈들이 온라인 세상을 달구고 있는지 [MT이슈+]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직장인 김성희씨(29·가명)는 2017년 연말에 겪은 일을 기억한다. 2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또렷하다. 12월이었고, 송년회가 끝난 밤이었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에 서 있는데, 한 남성이 내리면서 김씨의 엉덩이를 만졌다. 그리고 내린 뒤 그가 한 번 돌아보는 걸 봤다.

항의할 틈도 없이 출입문이 닫겼고, 김씨는 더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만원 버스며 지하철을 탄 지 10년 이상, 스친 것과 만진 것을 구분 못할 그가 아녔다. 김씨는 "분명 성추행을 당했는데, 신고해봤자 소용 없을 것 같아 말았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잊기 힘든 기억이 됐다.

김씨가 겪은 것처럼, 찰나에 벌어지는 성추행 사건에 향후 지침이 될만한 판결이 나왔다. 2년에 걸친 끝에 '성추행'으로 최종 결론이 난, '곰탕집 성추행 사건' 판결이다.

소위 길거리나 대중교통서 '스치듯' 벌어져왔던 성추행 사건 얘기다. 그동안에는 피해를 겪고도 증거가 마땅찮아서, 신고해도 안 될 것 같아서 참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유죄 판결을 계기로, 앞으론 이 같은 문제가 달라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사법부가 성추행 피해자의 일관된 목소리와 경험을 인정하면서, 가해자에게 경종을 울렸단 점에서 의미를 갖는단 것이다.

스친 시간 '1.333초', 성추행 결국 인정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2017년 11월26일, A씨(39)가 대전 한 곰탕집서 옆을 지나치던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쥔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식당 CCTV를 살펴본 결과, A씨와 피해자가 스쳐지나간 시간은 불과 1.333초였다. 그 순간 피해자는 돌아서서 즉각 항의했다. 다만 명확하게 포착된 증거는 없었다. 결국 피해자는 A씨를 고소했고,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진실 공방이 일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A씨 편을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성추행을 할 수 있냐"는 거였다. 반면 다른 누리꾼들은 "여성이 처음 만난 남성을 상대로 성추행 주장을 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박했다. 남녀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이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피해자 손을 들어줬다. 성추행이 있었다고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1심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2심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12일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스치듯 성추행',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증거'로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2년에 걸친 진실공방 끝에 성추행으로 인정된, 이 판결이 갖는 의미는 뭘까.

우선 찰나에 벌어지면서, 증거를 잡기 힘들었던 성추행 사건에 경종을 울리게 됐다.

성추행은 특성상 교묘하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스치듯 벌어질 경우엔 더 그렇다. 공공장소에서, 의도치 않은 것처럼 벌이는 성추행 말이다. 이에 대다수 여성들은 '곰탕집 사건'과 유사한 성추행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로, 이 같은 성추행도 처벌 받을 수 있단 게 명백히 알려졌다. 더 이상 "증거 있냐"거나, "우연히 벌어졌다"거나, "스친 것뿐이다"란 식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단 것이다. 발뺌해도 처벌한다는 메시지다.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 그 자체가 '증거'가 됐다. 이는 향후 벌어질 유사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새로운 판단 지침이 될 전망이다.

그간 성추행 사건서 자주 배제됐던, 피해자 목소리에 대한 인정의 폭이 늘어난 것도 중요 의미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만진 게 확실하고, 내가 분명히 불편과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했었는데 그동안 잘 안 들었었다"고 했다. 사법부가 '객관적 합리성'이라며, 피해자들 목소리나 경험을 많이 배제했었단 것이다. 이 소장은 "대법원이 확실하게, 우리 법 판단 기준은 이제 이거란 걸 보여줬다"며 "지난해 성인지 감수성 판결처럼, 매우 의미 있는 거라고 본다"고 했다.

'성추행 피해자'로 인정 받는다는 것, 여전히 험난해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비슷한 성추행 피해를 겪은 여성들 입장에서도,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좋은 선례가 됐다. 직장인 이모씨(35)는 "이 판결을 보면서, 그동안 살면서 숱하게 공공장소서 겪은, 교묘한 성추행이 생각났다"며 "피해를 겪으면 처벌할 수 있단 생각이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추행 피해자'로 인정 받는 과정이 길고 험난하단 건 향후 풀어야 할 과제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의 경우에도,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가면서 2년이 넘는 과정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젠더 갈등이 벌어졌고, 사법부를 향한 온갖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남성들은 시위에 나서기까지 했고, 여성들이 이에 반박하며 젠더 갈등까지 불거졌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2차 피해'도 빈번했다. 피해자를 향해 '꽃뱀 취급'을 했고, "여자가 벼슬이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여자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죄 없는 사람을 음해한단 식"이라며 "이번 (곰탕집 성추행) 건도 2차 피해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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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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