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85년생 여성 총리' 핀란드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정환보 기자 2019. 12. 1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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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여성·청년 리더 가능한 까닭

지난 10일(현지시간) 공식 취임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리 안데르손 교육장관, 카트리 쿨무니 재무장관, 마리아 오히살로 내무장관이 헬싱키에서 첫 각료회의 후 환담하고 있다. 헬싱키 | AP연합뉴스

의회, 여성·45세 미만 ‘절반’

만 18세부터 ‘피선거권’ 부여

다당제 보장 등 제도 장치로

청년 정치 참여의 토대 마련

마린, 정치경력 13년 ‘베테랑’

제2당 극우당과 연정 ‘과제’

34세의 세계 최연소 현역 여성 총리와 12명의 여성 장관이 행정부를 이끄는 핀란드가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 ‘50대 남성 국무총리’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해진 한국은 물론, 청년과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도 핀란드에서 탄생한 ‘밀레니얼(1980~1990년대생) 여성 리더’가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핀란드에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 ‘준비된 핀란드’

지난 10일(현지시간) 핀란드 의회 ‘에두스쿤타’의 승인을 받으며 공식 취임한 산나 마린 총리는 핀란드에서도 역대 최연소 총리다. ‘이정표를 새겼다’는 점에서 핀란드 국내도 떠들썩하지만, ‘전대미문의 일’로 받아들이거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총리’가 나타났다거나 하는 호들갑이 벌어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미 1991년 에스코 아호 전 총리가 37세의 나이로 취임한 전례가 있다. 여성 총리도 2003년,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등장한 것이다.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2000년 핀란드 첫 여성 대통령에 오른 이후 연임에 성공하며 12년 동안 집권하기도 했다.

장관직 19개 중 12곳(63.2%)에 여성 장관을 앉힌 ‘여초 내각’도 주목받았지만, 사실 이전보다 비율이 약간 상향된 정도다.

헬싱키타임스 등에 따르면 총선 직후 지난 6월 내각 구성을 완료한 안티 린네 전 총리가 11명의 여성 장관(57.9%)을 임명한 전례가 있다. 핀란드는 전근대적 신분제 의회에서 보통선거를 통한 최초의 근대적 의회를 수립한 1907년 전체 의원 200명 가운데 19명을 ‘세계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는 여성과 청년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춰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가장 최근 선거인 지난 5월 총선으로 성립된 현 의회에서 여성 의원은 93명으로 46.5%에 이른다. 45세 미만 의원도 96명(48%)에 달한다. 남성과 여성,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반반’의 비율로 구성된 의회는 핀란드 인구분포를 빼닮은 ‘축소판’에 가깝다.

■ ‘젊은 정치인’ 가능한 제도

에두스쿤타가 ‘작은 핀란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완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득표율에 따른 의회 진입 장벽을 두지 않는 다당제 보장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영국과 같은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에 비해 사표(死票)가 월등하게 줄어들면서 민의가 비교적 고스란히 의회 구성에 반영되고,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실제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만 18세에 선거권은 물론 대선·총선·지방의회·유럽의회 선거의 피선거권이 주어진다. 정당은 통상 15세, 녹색당 등 일부 당은 13세부터 당원 가입을 받는다. 정당별 청년조직은 각 당의 싱크탱크로 기능하며 인재 충원 역할도 맡는다. 마린 총리도 21세이던 2006년 사민당 청년조직에 참여한 뒤 27세 때 탐페레 시의회 의장 등을 지내며 선출직 경력을 쌓았다.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꾸린 4개 정당 대표도 이력이 비슷하다. 중앙당의 카트리 쿨무니(32), 녹색당의 마리아 오히살로(34), 좌파동맹의 리 안데르손(32), 스웨덴인민당의 안나-마야 헨리크손(55) 등 연정 참여 5개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이번 조각으로 이들은 각각 재무·내무·교육·법무장관직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과제도 만만찮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핀란드인당은 사민당과 불과 1석 차이로 제2당에 올랐다. 핀란드의 경제를 이끌었던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 노키아의 몰락 등 경기침체, 최근 이민자 유입 증가로 인한 사회문제 등으로 인기를 끌어올린 핀란드인당이 연정의 주요 정책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서현수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연구원(탐페레대 정치학 박사)은 “핀란드인당 등 포퓰리즘 정당에서는 내각의 페미니즘 색채가 짙어지면서 역설적으로 블루칼라 등의 지지기반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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