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와 표적] 美해저케이블 노리는 러시아 스파이 잠수함 '로샤리크'

최나실 입력 2019. 12. 1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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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 >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러시아 소형 '스파이 잠수함' 로샤리크(Losharik)의 추정 내부 구조도. 원자로실과 기계실인 후방 2개를 포함해 총 7개의 구형(球形) 티타늄 기밀실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코프오스트레일리아 캡처

“국가안보에 관한 문제다.”

올해 7월 1일 북극 바렌츠해의 러시아 영해에서 활동하던 러시아의 ‘연구 잠수함’에서 화재가 발생해 승조원 14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침묵하던 크렘린궁은 3일에야 브리핑에 나섰는데, 기자들이 들을 수 있는 답변은 “극비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말뿐이었다. 사망한 승조원들이 유독가스를 마셨다는 사실 정도 외에는 해당 잠수함의 기종과 이름은 물론 사고 경위와 구조 인원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졌다. 사고 당시 수행하던 임무도 당연히 극비였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매체들은 이 잠수함이 그간 정부가 꽁꽁 숨겨왔던 소형 심해 잠수함 AS-12, 일명 ‘로샤리크’(Losharik)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미 해군 연구소(USNI) 등에 따르면 AS-12는 선체 60~70m의 2,000톤급 핵 추진 잠수함으로 5MW 출력을 낼 수 있는 원자로 1기를 탑재했으며, 최대 25명까지 탑승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 가능한 수심도 유달리 깊다. 일반적인 잠수함이 해저 600m 안팎에서 활동하는 것과 달리 2012년 러시아 국방부는 로샤리크가 해저 2,500m에서 샘플을 추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 기종은 해저통신케이블(SCC)을 도청하거나 절단할 수 있는 ‘스파이 잠수함’으로 알려져 있다.

로샤리크(LosharikㆍЛошарик)는 본래 1971년 구소련에서 만들어진 동명의 만화영화 캐릭터 주인공의 이름이다. 로샤리크는 알록달록한 구체로 이루어진 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 해군 잠수함 '로샤리크'의 유선형 선체 안에 7개의 구체 티타늄 기밀실이 들어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미국 국가안보 전문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지난 6일 “오늘날 군은 그 어느 때보다 인터넷에 의존한다”면서 “해저케이블 절단은 한 나라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현대전이 이른바 네트워크중심전(NCW)으로 발전하면서 실시간 정보 공유를 위한 통신 체계의 중요성도 커졌다. 영국 우파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가 2017년 발간한 ‘불가결하지만 불안전한: 해저케이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통신의 97%가 해저케이블을 통해 이뤄진다. 전 세계에는 약 380개의 해저케이블이 있고, 총 길이는 120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를 30번 가까이 감을 수 있는 길이다.

때문에 해저케이블은 적국의 눈과 귀를 가리고 손발을 묶기 위한 ‘표적’으로 거론된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서방은 러시아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을 도청하거나, 유사시 이를 절단해 나토를 혼란에 빠뜨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리시 수낙 영국 보수당 하원의원은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서 “대개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을 갖춘 해저케이블 요충지들의 위치가 공개됨에 따라 인터넷과 현대 세계가 의존하는 ‘동맥’은 매우 취약해졌다”고 우려했다.

전 세계 바다에 매장된 해저통신케이블(SCC)의 모습. 전 세계에는 약 380개의 해저케이블이 작동하고 있으며, 이 길이를 모두 합치면 120만㎞에 상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브마린케이블맵 캡처

같은 보고서에서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 총사령관도 “해저케이블 기반 시설에 대한 전면 공격 시나리오를 생각한다면 통신 차단의 영향은 아마 재앙적일 것”이라며 “제한적인 방해 공작조차 상당한 경제적 혼란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우려에 회의적인 시각을 던지기도 한다. 통신 차단이 목적이라면 해저케이블은 ‘비효율적’ 공격 타깃이라는 것이다. 다국적 통신회사 시콤(SEACOM)의 바이런 클래터벅 회장은 지난 7월 CNN 인터뷰에서 “전 세계 혹은 특정 지역의 인터넷을 차단하려면 여러 케이블을 동시에 차단해야 한다”면서 “이 정도 수준의 작전이라면 상당한 수준의 조율 능력과 운용 자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상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디도스 공격 등이 훨씬 더 손쉬운 방법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해저케이블을 타깃으로 한 각국의 ‘스파이 활동’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추정한다. 여러 전례가 있어서다. 미 해군은 1970년 중앙정보국(CIA), 안전보장국(NSA)과 공조한 ‘아이비 벨’(IVY Bells) 작전을 시작해 오호츠크해에 설치된 구소련의 해저케이블을 10여년간 도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련 영해로 핵잠수함을 몰래 보내 두 달에 한 번씩 도청용 테이프를 설치했던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도 독일의 수중 케이블 일부를 잘라내고 새 연결 부분을 감청했었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북대서양 해저케이블 매립 지역에서 러시아 해군의 활동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서방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해 3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나토 총사령관은 미국 의회에 출석해 “최근 러시아 해군의 활동, 특히 잠수함 활동은 80년대 이후로는 보지 못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7년 시리아로 향하던 러시아 해군의 감시 정찰 선박 '얀타르'(Yantar)호가 터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포착된 모습. BBC 캡처

한 예로 2015년 9월 러시아 감시 정찰 선박인 ‘얀타르’(Yantar)호가 미 동부 해안을 따라 쿠바 쪽으로 이동하자 미 정보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인근 해저에 케이블이 대규모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얀타르호는 소형 잠수함들을 운반하는 모선(母船)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 전문가 H.I.서튼은 얀타르호도 서방 국가들에게 ‘요주의 선박’이라고 말한다. 그는 10일 포브스 기고에서 얀타르호가 “도청 장치를 해저 통신에 설치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면서 이 배가 심해 잠수함을 운반할 수 있고 두 개의 수중무인탐사기(ROV)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해저 케이블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튼은 얀타르호가 최근에도 중미 카리브해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공개 선박 추적 시스템에 포착됐다고 전했다.

얀타르호에 대한 러시아 해군의 공식 입장은 ‘해양학 연구용 선박’이다. 하지만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방송사 로시야는 얀타르호가 극비 케이블에 접속하는 게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절단한 후에 “특수 시스템으로 수중 센서를 끼워 넣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정보기술(IT) 보안 전문가 스테판 왓킨스는 AP에 “이 배(얀타르호)가 범죄활동을 하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은 없다”면서도 “당장 사보타주(방해 공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미래의 작전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AP는 공교롭게도 얀타르호의 움직임에 따라서 통신 교란이 일어난 실제 사례들이 있다고도 전했다. 2016년 10월 18일에는 시리아ㆍ레바논ㆍ리비아 등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중해 해저케이블 수리를 위해 한 시리아 통신회사가 긴급 정비를 실시했는데, 바로 전날에 얀타르호가 이 지역에 도착했었다는 것이다. 또 같은 해 11월 5일에는 오만에서 출발한 얀타르호가 이란 부셰르항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란의 인터넷이 마비됐다.

미국 해군이 총 3대를 운용하고 있는 시울프(Seawolf)급 잠수함. 특히 3번함 'USS 지미 카터'(위)는 특수 작전을 위해 다른 2대보다 선체가 30m 정도 연장된 개조 버전이다. H.I.서튼 닷컴 캡처

물론 미국도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대표적으로 시울프(Seawolf)급 공격 핵잠수함(SSN-23) 3번함 ‘USS 지미 카터’도 해저케이블을 도청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장비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선체 138m, 1만2,000톤급의 카터함은 현재 운용되고 있는 다른 두 척의 시울프급 잠수함에 8억8,700만달러(약 1조528억원)를 더 들여 개조한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잠수부들이 탑승할 수 있는 특수한 복합 임무 공간과 유인ㆍ무인 수중 정찰기 등을 탑재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체 길이를 30m 정도 확장했다는 것이다. 다만 러시아 잠수함들과 마찬가지로 시울프급 잠수함들 역시 그 모습조차 제대로 공개된 바 없어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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