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 줄고 있는 에이즈, 한국은 매년 1000명 늘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19. 12. 12.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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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60%가 동성간 성접촉" 정부 "이성 감염이 53%" 엇갈려
"솔직히 말 못하는 경우 많아.. 경로 정확히 파악해야 예방 가능"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이어가고 있는 김모(23)씨는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 감염자다. 현재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에이즈 약'을 받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의료진에게 "'원 나이트'로 여성과 관계를 맺고 나서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행하는 감염 경로 조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환자로서 의사와 지속적인 유대 관계가 이뤄지자 "동성 간 성 접촉을 해왔고, 그걸로 이렇게 쉽게 에이즈에 걸릴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올해 20여명의 젊은 감염자를 진료했는데, 다섯 중 넷 정도는 동성 간 성 접촉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에이즈 신규 감염, 한국만 증가

에이즈는 예방 홍보 활동과 치료 약제 보급으로 전염력이 줄면서 1995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신규 감염자는 꾸준히 줄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매년 신규 에이즈 감염이 가파르게 증가하더니 2013년부터는 매년 1000명 이상의 새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200명이 넘었다. 그중 20~30대가 60%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에이즈 감염 전문가들은 젊은이들의 동성 간 성 접촉으로 인한 감염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40~50대 중년층의 신규 감염은 최근 정체이거나 줄고 있다.

/그래픽=김하경

최근 발표된 '한국 에이즈 코호트 연구'(전국 21개 대학병원이 참여해 감염자 1442명을 반복 면접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에이즈 감염 경로는 동성 간 성 접촉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이성 간 성 접촉은 35%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층으로 갈수록 동성 간 성 접촉 감염 비율이 증가해 이들의 동성 간 성 접촉 감염 비율은 70% 이상이다. 10대는 90%를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뒤바뀐 정부 조사 감염 경로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보건소 등을 통해 하는 정부의 감염 경로 조사(2018년)에서는 이성 간 성 접촉(53%)이 동성 간 성 접촉(47%)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온다. 코호트 연구 결과와 반대다. 고려대구로병원 송준영 감염내과 교수는 "코호트 연구에서는 감염자들이 주치의와의 신뢰 관계 속에서 솔직하게 감염 경로를 밝히는 경우가 많고, 진찰을 통해서 동성 간 성 접촉에 따른 특징적인 임상 소견을 보고 감염 경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하지만 보건소 조사는 설문조사인 형태가 많고,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솔직하게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정부가 수년간 이뤄진 코호트 연구에서 나온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국내 에이즈 감염은 이성 간 성 접촉에 의한 것이 더 많은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감염 경로 실상 제대로 알려야

의학적으로 이성 간 1회 성 접촉을 통해서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은 0.04~ 0.08% 이다. 그러나 1회 동성 간 성 접촉에 의해 감염될 확률은 1.38%까지 증가한다.

한국에이즈예방재단 김준명(전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 이사장은 "감염 확률이 17~34배 높은데도 10~20대가 동성 간 성 접촉을 하는 경우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 없이 노출돼 자기도 모르게 신규 감염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에이즈 감염자에게 한 달에 150만원 정도 드는 약값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젊은 신규 감염자가 늘수록 개인적으로 평생 에이즈에 시달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국가 재정적으로는 부담이 커진다. 감염자가 약물치료를 받으면 전염력이 크게 줄어 신규 전파가 준다.

김준명 이사장은 "에이즈 낙인과 편견을 줄여 조기 발견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감염 경로 실상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리고 학교 보건 교육에서도 가르쳐야 신규 감염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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