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겨울왕국2 '노키즈존' 논란 속 '키즈전용관' 가봤더니

김보겸 2019. 12. 1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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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기다렸는데.."시끄럽다" 눈총받는 아이들
'겨울왕국2 키즈관' 등장에 어린이 800명 '꺄르르'
"아이 발달에 따른 아동 친화적 공간 마련해야"
“렛잇고 보러 왔어요” 10일 오전 수원 M영화관에 마련된 아이 전용 겨울왕국 상영관. 아이들 앉은 키가 작아 보이지 않지만 이날 4개 상영관은 ‘겨울왕국2’를 보러 온 아이들 800명으로 가득 찼다. (사진=김보겸 기자)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겨울왕국’ 4살 아이랑 보러 가도 될까요? 영화관에서 보는 건 역시 무리일까요?”

지난달 개봉해 17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겨울왕국2’를 둘러싸고 ‘노키즈존’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관심이 많은 화제작이다 보니 영화관에서 어린이 관객과 성인 관객 간 본의 아니게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도중 떠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잦다 보니 일반 성인 관객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그러나 ‘전체관람가’ 영화인데 아이들이 떠들세라 눈치를 봐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가뜩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공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아이들이 산만하게 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인 만큼, 성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아동 친화적인 키즈존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8살과 5살 아이를 둔 박모(36)씨는 “맞벌이라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데, 아이들이 소란을 피울까봐 극장에 가는 게 망설여진다”며 “작은 아이는 지금까지도 어린이집에 갈 때 엘사(‘겨울왕국’ 주인공) 옷을 입는데 영화 관람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박씨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들 통제할 자신 없으면 데리고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눈치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6살 아이를 둔 김모(35)씨는 “영화 보는 중간중간에 아이가 말을 하는 걸 조용히 시키느라 혼났다”며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서 성인들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넘어지니까 난간 잡고 이동해야지” “계단 잘 보고 올라오자” 10일 수원 M영화관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의 지도를 받아 키즈관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김보겸 기자)
◇컴컴한 극장 무서워 울어도, ‘키즈관’에서는 괜찮아…“사정 아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부모를 위해 아이들과 편하게 관람하도록 ‘키즈전용관’을 만든 곳도 있다. 수원시 28개 어린이집과 수원 M영화관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18일까지 보호자 동반 어린이 전용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200석 상영관 4개를 온전히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지난 10일 방문한 수원 M영화관에서는 이른 오전 9시 반부터 어린이 약 800명으로 바글바글했다. 김보현 수원시어린이집연합회장은 “영화 시작 시간은 10시인데 800명 남짓한 아이들을 차례로 4개 상영관에 들여보내는 시간을 고려해 5분 간격으로 상영 시간에 차이를 뒀다”고 말했다.

M영화관과 수원시 28개 어린이집에서 ‘키즈관 단체관람’을 시행한 건 올해로 5년째다. 부모와 교사들의 만족도는 높다. ‘사정을 아는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다는 이유다. 김옥향 어린이집 경기도연합회장은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며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기회를 만들어 주면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들을 통제·관리하는 교사 모두 부담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한 어린이집 교사는 “영화가 시작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들락거리는 아이들이 생긴다. 극장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걸 힘들어 하거나 컴컴한 내부가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며 “밖에 데리고 나가 달래야 하는 건 키즈관이나 일반관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래도 어린이 전용관이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16개월 아들을 데리고 온 김지은(26)씨는 ‘키즈관이 아니어도 영화를 보러 나올 생각이었나’는 질문에 “엄두도 못 내죠”라고 잘라 말했다. 김씨는 “카페 같은 곳에서 아이를 동반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몇 번 있다 보니 이제는 마트나 백화점 등에 갈 때도 항상 아이를 위한 시설이 있는지를 체크하게 된다”며 “아이가 어려 영화를 이해할 것 같진 않지만 이렇게라도 외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한옥을 개조한 카페가 들어서며 인기를 끈 수원시 ‘행궁동 카페거리’의 한 노키즈존 카페. “안전상의 이유로 아이 출입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사진=김보겸 기자)
◇영화관 벗어나자...‘노키즈존’ 이렇게 많았나

실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카페거리 상당수는 노키즈존이다. 이날 학부형들의 제보를 받고 영화관 근처 수원시 행궁동 카페거리에 들어서니 어렵지 않게 ‘노키즈존’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A카페 직원에게 노키즈존으로 운영하는 이유를 묻자 “아이들이 실내에 들어오면 뛰게 마련인데, 그러다 보면 인테리어를 위해 마련해둔 여러 소품들을 건드릴 수 있고 넘어져 다칠 수도 있어 안전상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수원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행궁동 카페거리에 들어가기 전 노키즈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해당 글 게시자는 “행궁동에 하도 노키즈존이 많다 보니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라며 “그러다 보니 기가 죽어 카페에 들어가기 전 (노키즈존 여부부터) 소심하게 묻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런 부모들을 위한 ‘노키즈존 제보 계정’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 노키즈존이라고 거절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노키즈존’과 ‘예스키즈존’을 제보받아 지도에 표시하는 계정이 활동 중이다. 지난 주말 방문한 행궁동 카페에서 아이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김씨는 “앞으로 노키즈존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라며 씁쓸해했다.

트위터 ‘노키즈존/키즈존 리스트 제보받아요’ 계정. 이 계정은 아이 동반 입장을 제한하는 ‘노키즈존’과, 아이를 데리고 오면 도와주는 ‘키즈존’을 제보받아 각각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접수된 노키즈존은 400곳, 키즈존은 48곳이다. (사진=‘노키즈존/키즈존 리스트 제보받아요’ 계정)
◇‘아이는 안되는 곳’ 보단 ‘아이를 위한 공간’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노키즈존을 만들어 아이를 분리하기보다는, 수원 M영화관 사례처럼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 마련이 현실적 대책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의 노키즈존 현상은 ‘내 권리를 방해하는 요소는 제거하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이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내 돈 내고 영화를 보러 왔는데 아이가 방해가 되니 노키즈존을 만들자는 건데, 이런 사고방식이 계속된다면 나중에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할 노인들을 배려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노키즈존을 만들어 아이들을 분리하기보다는, 아이들이 편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게 좋다”며 “궁극적으로는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아이와 성인이 공존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성애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에게 ‘공공장소에서 본인 아이 하나 통제 못 하나’며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현재의 합계출산율 0.8명, ‘인구 절벽 시대’로 이어졌다”며 “아이가 느낀 대로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의 일환이고 그 단계를 겪으며 성장한다”고 말했다.

김보겸 (kimkij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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