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돕는 장애인 죽음 내몬 '실적 일자리'
[경향신문] ㆍ20대 동료지원가 극단적 선택
ㆍ월 65만원 받고 4명 취업상담
ㆍ“질 낮은 일자리 사업의 현실”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돕는 일을 하던 20대 중증장애인 청년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중증장애인들끼리 취업을 도우면서 전문성도 쌓게 하겠다는 정부의 ‘중증장애인 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이 사업이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는 중증장애인에게 사실상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지급하면서 과도한 업무를 떠맡겨,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장애인 단체 등에 따르면, 전남 여수에서 살던 설요한씨(25)는 지난 5일 낮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설씨는 2016년 한 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후 지난해부터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IL)에서 일을 시작했다. 올해 4월부터는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에 참여해 ‘동료지원가’라는 직함을 달았다. 동료지원가의 역할은 직업이 없는 중증장애인을 찾아내 이들에게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설씨의 주변인들은 그가 동료지원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여수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대희 소장은 “힘든 티를 잘 안 내는 성격인데도,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이 정도 월급을 받고 해낼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닌 것 같다’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동료지원가는 본인과 같은 중증장애인을 한 달에 최소 4명 모집해 상담해준 후 이들의 취업준비 상황을 일지로 정리해야 한다. 1명당 의무 상담횟수가 5회이므로 총 20회를 상담해야 한다. 본인도 중증장애인인 만큼 부담이 적지 않은 업무량이었다. 이 같은 활동을 하고 받는 월급은 최대 65만9650원에 불과했다. 박 소장은 “고용공단과 전남도청의 평가를 앞두고, 설씨 혼자 30명이 넘는 참여자에 대한 서류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최근 특히 힘에 부쳐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중증장애인 동료지원가 사업이 도입 초기부터 ‘구색내기’ 일자리 사업이라 비판해왔다. 중증장애인이 동료의 취업을 도우면서 본인의 전문성도 기른다는 사업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동료지원가 1명이 한달에 4명, 1년에 총 48명의 참여자를 모집해야 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급여가 삭감되는 사업구조가 문제였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김태훈 기획실장은 “장애인을 노동에서 배제하지 말아달라고 해서 만든 사업인데, 경쟁·효율·실적 중심의 질 낮은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비장애인에게 이 급여를 받고 이런 일을 하라고 하면 누가 일을 하겠냐”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현장 지적을 반영해 우선 내년부터는 참여자 모집기준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동료지원가 한 사람이 매달 1.6명 정도의 참여자를 맡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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