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불기소 이유는 공개하고 공소장은 공개 금지? '깜깜이 수사' 이어 지나친 '면죄부'인가

윤지원 기자 입력 2019. 12. 10. 21:44 수정 2019. 12. 1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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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 수사를 감시하고 전관예우를 감시하겠다는 뜻에서 불기소 결정문 공개를 권고했다. 이 공개는 자칫 공인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 인권 침해나 수사 압박 우려도 나온다. 이 권고와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불기소 결정문은 공개하고, 공소장은 공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충돌한다.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는 지난 9일 판검사 및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감시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검찰 수사를 감시하고 전관예우를 감시하겠다는 취지의 권고다. 권고안대로라면 세월호 해경 지휘부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두 차례 무혐의 결정 같은 중대 사안을 두고 검찰은 불기소 이유를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개혁위 안에 따르면 기소 전에는 피의 사실을 공개할 수 없지만, 불기소되면 공직자 등에 한해 공개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문제나 김 전 차관 문제 등을 놓고 보면 개혁위 권고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개혁안은 현행 공보 규정 아래서는 고위 공직자나 권력자 등 공인에게 면죄부로 작용할 수 있다. ㄱ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수사 개시나 소환 여부 등이 모두 비공개돼 피의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첩첩산중인 상황이다. 여기다 불기소 결정문까지 공개한다면 공직자에게 지나친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다. 공직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내용을 알리지 않다가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불기소 이유를 공개하는 것도 인권 침해”라고 했다. 검찰이 무죄로 판단해 불기소 결정을 공개할 때 혐의도 함께 알려야 하는데, 이 혐의가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이다.

개혁위 권고안은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법무부 훈령)과 충돌한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훈령은 무죄 추정의 원칙, 피의자 인권보호를 이유로 불기소 사건을 포함한 모든 형사사건의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한다. 수사 대상자가 고위 공직자 등 공인일지라도 소환 여부 등 수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져서는 안된다. 불기소 처분에 대해서는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오보가 존재해 진상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한 경우’ 등 제한적 범위에 한해 불기소 이유를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법무부는 지난 10월 이 훈령의 초안을 발표하면서 “검찰의 피의 사실 흘리기, 망신주기식 수사, 여론 재판 등을 통해 법원의 재판 전에 (피의자가) 범죄자로 낙인찍혀 인권이 침해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개혁위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항에 대해서는 피의자 인권보호나 무죄 추정 원칙이 앞설 수 있지만 수사가 끝나면 공직자 수사에 대한 국민 알권리를 우선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 훈령은 공직자에 대한 기소 뒤에도 공소장 공개를 못하도록 했다. 훈령은 죄명, 공소사실 요지, 구속 여부 등만 제한적으로 공개한다. 개혁위는 아직 공소 제기 내용의 공개 여부와 범위 등을 두곤 권고안을 내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기소 즉시 공소장 전체를 공개한다.

개혁위 관계자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것”이라며 “개혁위 차원에서는 검찰의 무분별한 피의 사실 공표를 제한하는 방향은 유지하면서 현재 훈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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