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노인엔 '밥' 그 이상..문 닫는 '무료급식소'

이선화 기자 2019. 12. 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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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민간의 후원으로 꾸려온 노인 무료 급식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습니다. 후원금도 모자라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민원도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밀착카메라 이선화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서울 종로의 한적한 골목.

한 노인이 종이 상자를 뜯더니 돌 위에 올려놓습니다.

공원 담벼락을 따라서 짐들이 놓여 있습니다.

맨 앞쪽에는 우산이랑 이렇게 신문이 들어있는 가방도 있고, 뒤쪽으로는 빈 상자들이 놓여있는데요.

맞은편에 있는 무료 급식소에서 배식을 받기 위해서 미리 자리를 맡아놓은 겁니다.

이곳은 100% 민간 후원으로 운영되는 급식소입니다.

하루 한 끼, 점심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노인 A : 내 보따리가 저기 1번이거든? 집에서 출발할 때 아마 (아침) 8시나 8시 반쯤 되면 나올 거야.]

먼 거리에서 오는 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노인 B : 한 시간 걸렸어요. (댁이 어디 쪽이신데요?) 중랑구. 옥수 와서 갈아타고.]

오래 걸리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 적적하다고 말합니다.

[노인 C : 휠체어타고 지하철에 놔두고 와. 이렇게라도 못 움직이면 양로원에 갖다 놓고서. 거기 가면 내 맘대로 못 하니까.]

밥 먹는 것 이상의 즐거움도 있다고 말합니다.

[노인 D : 여기 와서 앉아있는 것도 대화가 되고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여기서 만난 사람 밖에서 만나면 '야 술 한 잔 먹자'.]

영하 9도의 추위에도 몇 시간씩 기다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배식은 11시 30분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3분 정도 남았는데, 이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신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차례로 배식이 시작됩니다.

식사를 마치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장갑과 양말을 나누어주는 날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사흘 전 일등으로 자리를 맡았던 한 노인은 이날도 일찌감치 식사를 마칩니다.

[노인 A : 안 오면 굶어. 여기서 한 그릇, 저기서 한 그릇 먹고 집에 가면 자는 수밖에 없어.]

가족도, TV도 없는 노인의 삶에 급식소에 출석하는 일은 유일한 낙입니다.

[노인 A : 누가 자라 마라 하는 사람도 없고 밥 먹어라 마라 하는 사람도 없고. 심심해. 잠 안 오면 앉아서 불도 안 켜고 앉아서.]

이처럼 무료 점심을 찾는 발길은 늘고 있지만, 후원은 줄고 있어 급식소 사정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총책임자 : 모자라는 부분을 내가 개인적으로 집에서 다 조달해서 지금 어려움이 많아. (그래도) 배고픈 사람 밥을, 끊어지면 안 되잖아?]

경기 지역 사랑의 밥차는 이번 달부터 운영이 중단됩니다.

역시 민간의 지원으로 운영되는데, 후원금이 올해까지만 예정돼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수원시자원봉사센터 활동지원팀 : 1년 내내 밥차를 할 수 있는 예산이 안 되다 보니까. 올해까지는 예산을 받는 거고. 내년에는 아직 미정이에요.]

쉬어간다고는 하지만, 이곳을 찾던 노인들은 아쉬워합니다.

[노인 E : 여기 200~300명이 오는데 사실상 나도 80 노인네지만 지금 처량해요. 1년 열두 달 주면 좋지.]

밥차와 함께 노인들의 모임 공간도 줄어들었습니다.

[노인 F : 이게 다 장기판이에요. 추운데 노인 양반들 감기에 고생하고 벌벌 떨고 장기 두고.]

의정부에서 10년 간 밥을 제공하던 급식소는 지난달 30일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이곳은 민간 후원과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예산이 줄었고, 인근에 도서관이 생긴 이후 미관상 좋지 않다는 민원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은숙/119 한솥나눔 대표 : (옆에) 도서관이 들어서면서 가스사용이 안 되는 거예요. 위험물이다 해가지고. (이후) 비닐을 씌워서 했는데, 그나마 그것도 위생에 안 좋다 하고.]

노인들에게 급식소는 단순히 밥 한끼를 먹는 곳이 아닌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합니다.

급식소가 사라진 이번 겨울, 추위는 더 시리게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인턴기자 : 조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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