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돋보기]경기중 화장실 가고, 선수끼리 얼굴 붉히고..이건 아스널이 아니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입력 2019. 12. 6. 16:47 수정 2019. 12. 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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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오바메양이 6일 브라이튼과의 프리미어리그 홈경기중 갑자기 터널로 뛰어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나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가.’

6일 브라이튼과의 프리미어리그 홈경기를 보러 에미리츠 스타디움을 찾은 6만164명의 아스널 팬들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을 것 같다.승리를 기대했던 그라운드에서 그들이 목도한 것은 갈 길을 잃어버린 채 우왕좌왕하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아스널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1977년 3월 이후 42년 만에 직면한 9경기 무승(6무3패) 행진. 순위는 10위까지 떨어졌다. 아스널 팬으로 살아가는 게 힘든 나날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브라이튼전 패배는 그 정점이었다. 브라이튼은 빅6를 상대로 한 원정에서 1무15패로 처참했다. 패전률이 93.75%. 그야말로 원정에서 빅6의 ‘밥’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 1-1로 맞서던 후반 35분 브라이튼 공격수 네알 무페가 머리로 방향을 돌려놓은 게 아스널 골문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1-2. 아스널에게는 남은 10분 동안 동점골을 터뜨릴 힘도, 투지도, 능력도 없었다. 브라이튼의 역사적인 승리가 아스널에겐 날개 없는 추락이 됐다. 점유율 49%-51%, 슈팅수 12-20, 유효 슈팅수 5-9로 모두 뒤진 게 아스널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

“홈이 아니라 원정인 줄 알았다”는 한탄이 나올 만했다. 아스널은 무패 우승을 달성했던 2003~04 시즌엔 홈에서 48개의 유효 슈팅만 허용했는데 올 시즌엔 8번의 홈경기서 벌써 52개를 내줬다.

아스널은 모든 게 엉망이었다. 1-2로 끌려가던 후반 막판 주포 오바메양이 경기 도중 갑자기 터널로 뛰어가 사라졌다가 2~3분이 지나 돌아오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오죽 화장실이 급했으면 그랬을까’라고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만 아스널 팬들 입장에선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주장인 오바메양이 전반 막판 20살 신예 조 윌록에게 화를 내는 장면도 아스널의 현재 팀 분위기를 말해줬다. 41분 오바메양이 오른쪽을 돌파해 완벽한 크로스를 올렸는데 윌록의 노마크 헤딩슛이 브라이튼 골키퍼 발에 막혔다. 윌록이 전반 종료 직전 역습 상황에서 오바메양과 사인이 맞지 않아 엉뚱한 데로 패스를 보내자 오바메양이 폭발한 것이다. 윌록은 결국 하프타임에 교체됐다.

열정적인 지시를 내리는 융베리 아스널 임시 감독과 달리 관중석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경기 종료 후에는 외질이 그라운드를 빠져나오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실패가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소극적인 심리가 다시 선수들의 발목을 잡고, 급기야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악마의 사이클’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임시 감독인 융베리는 “이건 아스널이 아니다”라고 한탄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아스널의 현실을 압축한 표현은 이거였다. “감독은 자를 수 있지만 아스널 자체는 못 자른다.”

감독이 아니라 아스널 전체가 문제라는 자조였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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