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데이터 소유권 누구에게 있나

김동인 기자 입력 2019. 12. 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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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거대 기술 기업에 데이터를 제공한다. 차곡차곡 기록되는 개인정보는 부가가치를 만든다.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시사IN 이명익구글을 비롯한 거대 기술 기업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린다.

이어폰을 연결하고 초록빛 아이콘을 터치한다. 2006년 스웨덴에서 탄생한 전 세계 최대 인터넷 음악 스트리밍 앱 ‘스포티파이’는 온라인에서 ‘옛 애인보다 내 취향을 잘 아는 서비스’로 유명하다. 2억5000만명에 달하는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주 새로운 곡을 추천하는 ‘이번 주 당신을 위한 추천’ 서비스가 인기다. 넷플릭스처럼 데이터를 모아 이용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거대 데이터 기업이다.

스포티파이는 제한적 무료 서비스다. 스마트폰으로 무료 음악 서비스를 즐기되 곡 순서는 무작위다. 무료 사용자는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올 때 하트 버튼을 눌러 ‘내 음악’ 메뉴에 모아두거나, 제한된 횟수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을 건너뛸 수 있다. 곡 사이사이 등장하는 광고도 감수해야 한다. 월 1만2000원 남짓 구독료를 내면 이 모든 제한을 풀 수 있다. 전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인 1억4000만명 정도가 불편을 감수한 채 열심히 하트 버튼을 누른다. 그래야 취향에 맞는 음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스포티파이 무료 이용자들은 흔히 광고가 무료 스트리밍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광고는 전체 매출액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실은 무료 이용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취향 데이터를 제공한다. 스포티파이가 전 세계에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무료 사용자들이 누른 하트 버튼 덕분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분기 매출(2019년 3분기)은 약 17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2조2000억원 규모다. 분기 순익만 약 5400만 유로(704억원)이다.

스포티파이뿐만이 아니다. 거대 기술 기업에게 데이터는 돈이다. 차곡차곡 기록되는 개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분야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다.

AI는 기계가 알아서 반복 학습을 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핵심인데 기계가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 정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미지에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기술부터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예측하는 기술까지 모든 ‘학습’ 과정에 개인의 데이터가 활용된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거대 기술 기업이 AI 분야에서 앞선 지위를 확보한 것도 각 사가 확보한 대규모 고객 데이터 덕분이다.

막상 이런 데이터를 만들어주는 개인에게는 거대 기술 기업이 금전적 이익을 주지 않는다. AI 분야 기술 발전으로 산업 현장 일자리가 줄어들고 보편적 노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작 그 위협을 당하는 당사자인 대중은 열심히 거대 기술 기업에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데이터 경제’에 관한 전혀 다른 차원의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바로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ownership)’을 둘러싼 논쟁이다.

학계에서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논의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이 문제를 공론화한 주인공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앤드루 양이다. 앤드루 양은 1인당 월 1000달러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여기에 들어가는 재원을 ‘테크 체크(Tech Check)’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로부터 일종의 데이터 사용료를 거둬들이겠다는 의미다. 즉, 앤드루 양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활용해 돈을 벌고 있지만 정작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이용자들은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며 이를 환수해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경선에서 유력 후보는 아니지만 앤드루 양의 주장은 국제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차별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급급한 거대 기술 기업에 경종을 울렸다. 그동안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이메일, 검색, SNS 등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데이터를 수급해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만든 플랫폼에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데이터는 결국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일이다. 글, 사진, 영상을 올리고 게시물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거대 기술 기업들에게는 기계학습을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연합뉴스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앤드루 양(가운데)은 데이터 소유권 논쟁을 공론화했다.

“데이터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일각에서는 이 같은 개인의 데이터 생산을 노동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미국 시카고 대학 에릭 포즈너 교수와 마이크로소프트 수석연구원 글렌 웨일은 저서 <래디컬 마켓>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거대 기술 기업과 데이터를 생산하는 개인을 노동시장에 빗대 설명한다. “(거대 기술 기업은) 수요 독점을 이용해 데이터를 공급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0으로 묶어두고 있다. 지금이 전 세계의 데이터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데이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점일 수 있다.” 개인이 혼자 거대 기술 기업을 상대로 데이터 제공에 대한 협상에 나서기는 어려우니 데이터 노동자 간의 연대까지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상황에서는 다소 먼 나라 이야기다. 한국은 데이터 경제 후발주자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산업 발달을 위해 데이터 활용을 열어두는 정책에 몰두한다. 11월19일 국회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데이터 3법’ 개정안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초 여야는 이날 데이터 3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지만 모두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행정안전위 소관)은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상임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정보통신망법(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 신용정보법(정무위) 개정안은 법안심사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정치권을 향한 비난이 이어졌다. IT 업계를 비롯한 산업계에서는 정치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성토했고, 개인정보 데이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이들은 충분한 토론과 협의 없이 회기 막바지에 부랴부랴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다며 비판했다.

특히 업계 반발이 거세다. 데이터 경제 후발주자인 한국 기업은 개인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통로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은 이 같은 데이터(개인정보) 확보를 보다 용이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기업이 개인에게 개인정보 사용 동의 여부를 일일이 물어야 했지만, 법이 개정될 경우 개인정보를 가명화(이름을 가리고 일련번호 따위를 부여)한 뒤 ‘과학적 연구’에 한해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학적 연구라는 조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가명화된 이런저런 데이터를 조합하면 결국 해당 데이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 적정성 평가 때문에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도 뒤따른다. 이처럼 데이터 3법 개정안은 개인정보 활용 확대와 보호라는 양면적인 성격을 함께 가진다.

데이터 활용의 확장, 개인정보 보호 전담 기구 운용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한국에서는 앤드루 양의 ‘테크 체크’는 먼 이야기다. 그나마 11월18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민법 개정안이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 문제를 정치적 의제로 끌어올린 사례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2018년 11월21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개인정보 규제 완화 비판 기자회견.

개인정보를 민법상 ‘물건’의 정의에 포함하면

김 의원 발의안의 핵심은 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를 민법상 ‘물건’의 정의에 포함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법적으로 거래 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개념적 기반을 마련하는 내용이다. 이는 ‘기술 발전과 노동 축소’라는 점에서 기본소득 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개인정보를 비롯한 데이터가 무작정 수집할 수 있는 천연자원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정부의 재정 집행에 기반을 두는 반면, 김 의원의 민법 개정안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되 기업이 각기 대가를 지불하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주의적 접근에 가깝다. 김세연 의원실은 “기술 발전으로 인해 노동이 대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이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자는 차원에서 이 같은 개정안을 발의했다”라고 말했다.

당장 김세연발 민법 개정안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낮다. 20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률상 ‘물건’의 정의를 뒤흔드는 민법 개정은 우리 민법의 근간을 뒤흔들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의제다. 김 의원이 현 시점에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향후 21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는 상징적인 발의에 가깝다(김세연 의원은 개정안 발의 직전인 11월17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과연 누구의 소유인가? 이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대상인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뒤에 데이터 경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의 역할은 단순히 산업 육성을 위한 거수기가 되는 게 아니라, 이 숙제를 차근차근 공론장에 내놓는 데 있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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