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인 선임되면 모든 자격 박탈 [법률프리즘]

2019. 12. 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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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25년간 검찰공무원으로 일해온 A씨는 업무 중 갑자기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 A씨의 부인은 남편이 해오던 은행거래(공무원 대출, 월급통장 관리 등)를 대신하기 위해서 은행에 갔다가, 남편 명의의 거래를 부인이 대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인은 주변의 조언을 받아 남편의 ‘성년후견인’이 되었다.

성년후견제도는 가정법원의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질병·장애·노령 등의 사유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된 피후견인의 재산 관리 및 일상생활을 지원하도록 한 제도이다. /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2년간 보장된 질병휴직 기간 중 국가는 성년후견인이 선임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며, 공무원 당연퇴직 통보와 함께 휴직기간에 받았던 월급을 환수했다. 가족은 생계와 치료비에 썼던 월급을 갑자기 국가에 반납해야 하는 상황도 힘들었지만, 25년간 헌신해온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서러웠다. 국가가 A씨에게 질병휴직이나 명예퇴직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는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위해 법원의 심판 또는 계약으로 후견인을 정해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국가공무원법은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공무원은 당연퇴직한다고 정하고 있고, 결격사유 중 하나가 성년후견인이 선임된 경우다. 다른 공무원 결격사유는 파산선고를 받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파면 또는 해임된 경우로, 본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년후견인은 A씨처럼 본인의 잘못과 무관하게 선임된다. 그리고 후견이 취소되더라도 다시 자격이 회복되지 않는다. 똑같은 건강상태라도 후견은 필요에 따라 신청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데 후견인 선임 여부에 따라 당연퇴직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한다.

더구나 이것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변호사법·의사법·사회복지사업법·보험업법 등 272개 법률에서 후견을 이유로 한 300여 개의 결격조항을 두고 있다. 이런 규정은 주요 국가 중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었다. 그런데 올해 일본이 법률을 개정해 이제 우리나라만 남았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정부에 개선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년후견인 선임을 당연퇴직이나 결격사유로 한 규정들을 없애야 한다. 대신 건강상태에 따라 다른 업무를 부여하거나 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일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퇴직을 위한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 과정에서 부당한 점이 있으면 다툴 수 있다.

법원은 “후견이 필요한 노인·장애인 등에게 본인의 의사와 능력을 존중하면서 재산·복리 등 폭넓은 보호를 제공합니다”라고 후견제도를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격결격이나 퇴직조항이 있다는 안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후견인이 선임되면 자격을 박탈시키면서, 재산을 보호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합리적인 법률 개정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한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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