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인 듯, 심각한 듯, 말하는 듯..이모티콘 같은 1500년전 사람 얼굴 토기 발견

이기환 선임기자 2019. 12. 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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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무표정한 듯, 심각한 듯, 말하는 듯…. 마치 요즘의 이모티콘 같다. 경북 경산에서 다양한 표정을 머금은 1500년 전 사람모양을 한 토기가 발견됐다.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인 소월리 유적을 발굴 중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5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람 얼굴 모양의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透刻人面文甕形土器)를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지금까지 진주 중천리유적, 함평 금산리 방대형고분 등에서도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된 토기가 출토된 사례는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삼면에 돌아가며 얼굴 모양이 표현된 사례는 처음이다. 투각인면문옹형토기는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뚫어서 만든 항아리형 토기를 일컫는다. 김상현 화랑문화재연구원 연구부장은 “일본에서도 사람모양 토기가 많이 출토됐지만 삼면이 사람 얼굴로 된 예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경북 경산에서 발굴된 1500년전 사람모양 토기.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다.|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발견된 토기는 높이가 28㎝가량이다. 토기의 윗부분 중앙에는 원통형으로 낮게 돌출된 구멍을 뚫었다. 토기 옆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원형 구멍을 뚫어 귀를 표현했다. 각 구멍 사이에 만들어진 세 개의 면에 무표정한 듯, 심각한 듯, 말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얼굴 무늬를 각각 새겼다. 얼핏 보면 요즘의 이모티콘 같은 표정이다. 각 인면문의 두 눈과 입은 기다란 타원형으로 밖에서 오려냈다. 콧구멍에 해당하는 2개의 작은 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다.

시루 위에 올려놓은 사람모양 토기.|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서 콧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토기 옆 부분에 팔 모양이 도드라졌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가 출토된 구덩이는 지름 1.6m 가량의 원형으로 건물지군 사이 한쪽의 빈 공간에 있었다. 토기는 내부조사가 반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나왔다.

사람모양 토기의 다른 표정.|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또 이곳에서는 바닥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시루 1점도 함께 출토됐다. 시루의 몸통 중간 지점에는 소뿔모양 손잡이 2개가 부착되어 있다. 두 점의 토기는 서로 결합해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의 제작 기법과 특징 등으로 보면 5세기 전반 또는 그 이전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목적보다는 5세기경 유적에서 베풀어진 일종의 의례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유적의 중심을 이루는 주변의 고상건물지도 당시의 의례와 관련된 시설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 모양 토기의 또다른 표정.|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오승연 화랑문화재연구원장은 “깊이 2m 구덩에 중에서 겨우 1m 정도 판 상태에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시루, 목재 등의 유물이 나왔다”면서 “추가 발굴 때 이 유구의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원장은 “같은 높이에서 출토된 사람모양 토기와 시루를 맞춰보니 꼭 맞았다”면서 “사람모양 토기와 시루가 한 세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시루는 깨져 있었지만 사람모양 토기는 온전한 모습이었다. 오원장은 “하다못해 흙의 압력이 만만치 않았을텐데도 완전한 얼굴을 유지한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사람모양 토기가 확인된 소월리 유적.|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이 구덩이가 우물인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통상 우물일 경우엔 벽을 돌로 막는데, 이 구덩이에는 벽석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구덩이를 파자 계속 물이 나왔다. 오원장은 “제사 등 의례행위를 한 다음 토기 등을 매납한 우물인지, 혹은 의례 후에 의도적으로 파서 토기 등을 넣은 구덩이인지 아직 알 수는 없다”고 전했다.

소월리 유적은 금호강의 지류인 청통천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와 구덩이(수혈), 토기가마를 비롯하여 고려∼조선 시대의 무덤 등 많은 수의 유구가 확인됐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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