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과유불급이다..통통 튀는 일본 영화포스터들

홍성윤 2019. 11. 30.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쉽게 읽는 서브컬처-82] 신장개업 / 일품치킨으로 만원사례!! / 추천 메뉴 갈비맛 치킨 비장의 갈비소스! / 천만고객!! / 중독되는 이 맛! / #튀기는대수사선 / 2020년 1월 3일 일본 신주쿠 외 전국 오픈!

120% 치킨집 전단지라고 생각한 당신의 패배다. 이것은 영화 포스터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일본 개봉(개봉명 익스트림 잡·エクストリ-ム·ジョブ)을 앞두고 정신줄 제대로 놓은 포스터를 들고 왔다. 일본의 영화 포스터는 언제나 소소한 관심을 받았다. 한국 포스터도 '클라이언트 취향'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 촌스러운 광고 문구로 도배되기 십상이지만 일본 쪽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 남다른 센스로 대중을 놀라게 한 일본 영화 포스터의 특징을 살펴보자(포스터 문구는 겹낫표(『 』) 안에 표기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모든 일본 영화 포스터를 도매금으로 넘겨 판단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님을 밝혀둔다. 과유불급이 아닌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는 훌륭한 포스터도 많다.

☞배우 얼굴은 다다익선이다

포스터 중앙을 장식하는 배우의 대문짝만한 얼굴. 주연 배우의 티켓 파워에 의존하는 상업영화에서는 흔한 선택이다. 한국 영화 포스터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 영화 포스터는 한발 더 나아가 주·조연 모두의 얼굴을 포스터에 담아낸다. 공리주의에 입각한 디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재일 한국인 3세 감독인 이상일이 연출한 '분노'(怒り, 2016)다. 아름다운 해변 사진에 '성낼 노(怒)'자가 크게 새겨진 한국판 포스터(오른쪽)와 달리 일본 포스터에는 와타나베 켄과 미야자키 아오이를 비롯한 배우 7명의 얼굴이 공격적으로 배치돼 있다. 물론 영화 자체가 가까운 사람을 범죄자로 의심하고 서로 갈등을 빚는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보니 일본 포스터가 더 적절한 구성일 수도 있겠다.

올해 개봉한 영화 포스터만 모아봤다. 올해 개봉한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영화 '매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ホテル, 2019) 포스터를 보면 영화 속에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추는 사람은 무조건 포스터에 넣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조연이지만 인생에서는 주연이니까요' 같은 상냥함도 있다. 포스터 속 인물은 무려 22명으로, 배우 많기로 유명한 '어벤져스: 엔드게임'(12명+1마리)보다 많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3명+1마리+1그루)보다는 적다. '그림자 밟기'(2019) 와 드라마 '컨피던스 맨 JP 극장판'(2019)도 마찬가지다. '루팡레인저 VS 패트레인저 VS 큐레인저'(2019)도 일단 전대물 주인공들이 19명이나 출연하는 영화이다 보니 포스터도 난리 났다. 이쯤 되니 출연했는데 포스터에 없으면 배우가 소송할 수 있는 법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포스터는 꽉 차야 제맛이다

어떤 일본 포스터는 여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때론 증오한다. 포스터 곳곳 빈자리가 없도록 홍보 문구를 채워 넣는다.

『올해 아카데미상 유력 후보! / 골든글러브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7개 부문 수상!/ '세션' 감독·각본 최신작 / 보는 사람 모두가 사랑에 빠지는, 극상의 뮤지컬 엔터테인먼트』. 라라랜드(2017)의 일본 포스터(왼쪽)는 마음이 급하다. 이것도 알리고 싶고, 저것도 알리고 싶고, 폭죽도 터뜨리고 싶고, 엠마 스톤 화려한 드레스도 종류별로 다 보여주고 싶고 그렇다. 단 한 컷의 이미지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포스터만 봐도 영화 한 편 다 보고 나온 포만감이 들 정도다.

『오스카가 달려든 재능과 광기 / 제87회 아카데미 작품상 등 5개 부문 노미네이트! / 142개 부문 노미네이트 48개 수상 / 더(もっと) 더 더 더 더 / 완벽을 추구하는 레슨. 두 사람의 세션은 누구도 본 적 없는 클라이맥스로』. 말이 나온 김에 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전작인 '위플래쉬'(2014)의 포스터(왼쪽)를 보고 넘어가자. 이미지 과잉은 어떻게든 참았는데 텍스트가 폭발했다. 오스카가 달려든 재능과 광기부터 시작해 수상 내역을 구성지게 담아냈다. 포스터 중앙의 '더(もっと) 더 더 더' 부분도 J K 시몬스의 음성이 자동 재생될 정도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국 포스터(가운데)도 못 참았다. 리뷰 포스터가 범람하게 된 원흉이기도 하다.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을 다미엔 차젤레라는 정체 불명의 발음으로 적은 것도 옥의 티. 『인류 역사상 최대의 건조물, 만리장성이 만들어진 목적이 드디어 밝혀진다』. 영화 '그레이트 월'의 포스터(오른쪽)는 주객전도다. 영화 제목보다 홍보 문구가 더 크고 굵고 눈에 띈다. 자잘한 텍스트는 없지만 압도적인 폰트로 포스터 상단을 가득 채웠다. 폭발하는 효과가 없었더라면 히스토리 채널 다큐멘터리로 착각하기에 딱 좋다.

☞영화 제목을 자꾸 바꾼다

영화 제목은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하는 가장 압축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지만, 그렇다고 불변은 아니다. 디즈니처럼 지역마다 그 나라의 정서에 맞게 제목을 바꾸는 경우도 있고, 영화 수입 과정에서 현지 배급사가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제목으로 바꾸기도 한다. 세션은 '위플래쉬'의 일본 개봉명이다. 어차피 영단어를 음차해서 쓸 거면서 제목을 바꾼 것도 포인트. 물론 너무 고민 없이 원제를 음차해 쓰는 제목도 정답은 아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데블스 애드버킷'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투어링 이어즈' '라우더 댄 밤즈' '매그니피센트7' '에쥬케이터' 등 극장에 가기 전에 영어사전부터 펼치게 만드는 불친절한 제목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비행체가 지구에. 그 목적은 불명-』. '메시지'(왼쪽)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어라이벌'(Arrival, 2016)의 일본 개봉 제목이다. 한국에서도 '컨택트'(가운데)란 제목으로 바꿔 개봉했는데, 한국 관객에게 영단어 어라이벌이 다소 낯설고, 도착이나 도달로 직역하기에도 애매한지라 제목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1997)와 헷갈리기도 한다. 포스터에 있어서는 한국이 확실히 패배했다. '부산행'(2016)의 일본 개봉명은 '신감염: 파이널 익스프레스'(新感染 ファイナル-エクスプレス·오른쪽)다. 일본의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과 발음이 동일한 점을 이용한 제목으로, 고속철을 무대로 펼쳐지는 좀비 사태라는 작품의 소재를 중의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걸작으로 꼽히는 옛 영화 중에는 확 바뀐 일본어 제목을 중역해 들여온 경우가 많았다. 원제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워낙 강렬한 제목이라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영화팬이 많다.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원제는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이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俺たちに明日はない, 1967) 원제는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였다. 일종의 초월 번역인 셈. '태양은 가득히'(太陽がいっぱい, 1960)의 원제는 햇살이 가득하단 뜻의 프랑스어 'Plein Soleil'로, 미국 개봉명인 '퍼플 눈(Purple Noon)'보다 원래의 뜻에 가깝다. 심지어 포스터도 세련되고 멋있어서 왜 일본 포스터는 퇴보하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중2병이 폭발하는 문구를 자꾸 넣는다

일본 영화 포스터의 문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김병헌 선수의 명언이 떠오른다.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문구마다 절절이 흐르는 만화적 감성 혹은 중2병 감성은 일본 포스터의 중요한 요소다. 한국 포스터에도 자주 들어가는 단골 문구가 있다. '올해 최고의 영화' '블록버스터의 서막이 열린다!' '감동 실화' '올여름 가장 뜨거운 영화가 왔다!' '아카데미 ○개 부문 노미네이트' '○○○의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이쪽이 식상하다면 일본 쪽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성수기를 노리고 나오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바이오 해저드: 더 파이널'(한국 개봉명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2017)의 경우 『지켜봐라, 최후. 내가 누구이든 간에-목숨을 불태운다』라는, 제호보다 큰 홍보 문구가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어서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가운데) 역시 강렬한 문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절망의 끝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 것인가 / 선과 악의 개념조차 초월한 사투의 끝에 도달한, 심원(深遠)한 종언(終焉) / 냉철한 복수자 대 흉악한 살인귀, 영화 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장대한 복수극!』이란 극찬이 고맙기는 하다. 그에 비해 영문판 포스터(오른쪽)는 단순하지만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

초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도 중2병 광선을 정통으로 맞았다. 포스터 자체는 무난하지만 홍보 문구의 허들이 장난 아니게 높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힘, 망설이지 마라(인크레더블 헐크)』 『장착하라, 강한 자신을(아이언맨)』 『신(神) 실격 히어로, 두 세계의 운명은 그의 손에(토르: 천둥의 신)』 『로크여, 너의 마지막 찬스다. 나와 함께 지구를 구하라(토르: 다크 월드)』 『사랑을 아는 전 인류에게 바친다(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우정이, 우정을 갈라놓다(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만화 '블리치'가 절로 생각날 정도로 허세와 과장과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는 도치법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한다. 특히 '어벤져스'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캐릭터별 포스터는 오그라든 손발을 더욱 꽉 쥐게 만든다. 『최후의 희망은 동료를 믿는 것(캡틴 아메리카)』 『설령 당신을 잃더라도 이 사랑만은 영원…(헐크와 블랙위도우)』 『반드시 지킨다. 이 목숨이 다하더라도…(호크아이)』 이런 식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메인 포스터와 캐릭터 포스터. 누가 보면 로맨스물로 착각하겠다.

☞일본이여 이것이 영화다 사태

2011년 한 영화가 개봉한다. '오즈·덴오·올라이더: 렛츠 고 가면라이더'란 긴 제목의 이 영화는 특촬물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40주년 기념작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세계여, 이것이 일본의 히어로다!(世界よ、これが日本のヒ-ロ-だ!)』란 포스터의 강렬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1년이 지나 일본 영화계를 뒤흔들게 된다.

이듬해 개봉한 '어벤져스'의 일본 배급사는 영화 홍보를 위해 고심하던 중 '렛츠 고 가면라이더' 문구를 차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영화 개봉 5개월 전에 내놓은 신문광고에서 일본이여, 이것이 영화다『(日本よ、これが映畵だ)』란 캐치프레이즈를 선보인다. 원래 의도는 센스 있는 오마주였지만, 도발적인 문구가 일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일본 영화계를 비롯해 소설가 야하기 도시히코, 칼럼니스트 오다지마 다가시, 무엇보다 일본 내 우익 세력은 "일본에 대한 모욕"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라며 격분했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홍보 문구는 바뀌지 않았고 영화의 공식 포스터에까지 쓰였다. 마블 영화가 유독 일본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를 두고 어벤져스 홍보 문구 사태라고 진단하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애초에 일본 영화 시장은 자국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이 득세한다). 하지만 배급사 직원의 뛰어난 센스 덕분에 탄생한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여러 영화 홍보에서 패러디되며 명문(名文)의 유지를 이어오고 있다. 이쯤 되면 즐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신문광고(왼쪽 상단)와 '춤추는 대수사선 Final'의 TV광고(왼쪽 하단)에서는 각각 『할리우드여, 이것이 일본 영화다』와 『할리우드여, 이것도 영화다』란 문구가 등장한 바 있다. 마블 역시 패러디에 동참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우주여, 이것이 히어로인가』란 문구를 내세웠다. 또 만화 '원피스'가 발행 부수 3억부 돌파 기념으로 뉴욕타임스에 광고(가운데)를 실었을 때 문구가 『세계여, 이것이 만화다!(Hey world, this is Manga!)』였다. 어벤져스부터 시작된 일본의 섀도복싱이 미국까지 넘어간 셈. 정작 미국에서는 어리둥절할 일이다.

어벤져스 때부터 꼬인 인연 때문인지 마블 시리즈 포스터는 유독 일본에서 수난을 받았다. 포스터에서부터 스포일러가 터져 나온다. 『사랑을 아는 전 인류에게 바친다 / 세계를 멸하는 것은 아이언맨(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아이언맨이 만든 인공지능(AI) 울트론이 세계를 위협하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고, 『어벤져스 외에는 전부 적(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에는 쉴드 내부의 하이드라 세력 때문에 조직이 궤멸하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는 내용을 대놓고 알려주고 있다. 더 나아가 타노스의 핑거스냅으로 어벤져스가 패배하고 인류의 절반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결말로 영화 팬들을 놀라게 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포스터에서는 『최강의, 끝을 향해-4월 27일(금) 어벤져스, 전멸』 이라고 결말까지 해맑게 알려준다. 그렇다면 아이언맨 사가의 종장이자 마블 10년사를 마무리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포스터는 어떨까.

『최강의, 역습(어벤지) / 어벤져스가 끝난다. 새로운 희망을 위해 / 금세기 최강 영화 어벤져스, 마침내 완결 / 일본이여, 이것이 최후다』. 전단지 앞면의 평이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뒷장을 살펴보니 여지없이 등장하는 '일본이여' 문구. 마지막까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세계여, 이것이 일본 영화 포스터다.

[홍성윤 편집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