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참여못한 재한 홍콩인들.."선거 승리 위해 비행기 탑니다"

유경선 기자,김정근 기자 입력 2019. 11. 24. 09:54 수정 2019. 11. 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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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돌아가신 분에 면목 없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과거 후회..자유 잃고 싶지 않다"
경찰이 고사작전에 들어간지 6일째인 지난 22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 곳곳에 시위 관련 문구·그림이 쓰여 있다. 2019.11.2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김정근 기자 = # 투표를 하러 홍콩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가장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제 의견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홍콩의 미래를 위해 좋은 의원을 선택해야 합니다. (Tsui씨·28·직장인)

#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선거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분들과 체포된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습니다. 투표를 하기 위해 8월에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었습니다. (Yip씨·23·학생)

# 한국으로 오기 전에 시위에 참여했는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깨달았습니다. 홍콩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친구들을 지지하고 싶어서 홍콩으로 돌아갑니다. (E모씨·25·학생)

한국에 사는 홍콩인들의 발걸음은 며칠 전부터 분주해졌다. 24일, 일요일 치러지는 구의원 선거 때문이다. 많은 재한(在韓) 홍콩인들이 선거권을 행사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날 선거는 친중 성향인 건제파(建制派)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재 구의회의 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절호의 기회다. 중도좌파 성향의 야당 민주파(民主派)가 약진할 경우, 그동안 정부의 강경진압 방침으로 수세에 몰렸던 홍콩 시위의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는 만큼 홍콩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투표하지 않으면 싸움 안 끝나…이렇게라도 보탬 되고 싶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홍콩인 오모씨(22)는 지난 21일 홍콩으로 출국했다. 오씨는 "이번 투표의 향방이 홍콩 시위에 매우 중요하다"며 "민주파가 후보를 많이 내기는 했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 친중파가 이길까 걱정돼 꼭 투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치고 선거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인 오씨는 "친구 2명도 함께 선거를 하러 홍콩으로 갔다"며 "우리뿐 아니라 많은 홍콩인들이 투표 때문에 홍콩에 갔다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인 입씨(Yip·23)는 "현재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귀국하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겁도 났지만, 그렇다고 투표를 하지 않으면 긴 싸움이 끝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선거일에 맞춰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었다는 입씨는 "시위가 반년째 이어지지만 타지에 있으면서 홍콩을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도 했다. 그는 "제가 가진 한 표는 보잘것 없지만 모인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현재 상황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고 덧붙였다.

홍콩인 학생 E모씨(25)는 "한국에 오기 전에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시위에 참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지역구에서는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홍콩으로 돌아가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직장인 추이씨(Tsui·28)도 "한국에 있어서 시위대에 참여해 의견을 직접 내지는 못하지만, 투표라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홍콩행을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홍콩 구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23일 오후 홍콩 주룽 공원 수영장에 투표소 방향을 알리는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2019.11.23/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정치 무관심했던 과거 후회…한국에 머무르며 무력감 느껴"

개인적 사정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는 홍콩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들은 직접 선거권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구의원 선거결과에 희망을 거는 모습이었다.

이화여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홍콩인 유모씨(25)는 "홍콩에 너무 돌아가고 싶고 상황을 직접 보고 싶다"며 "동생과 사촌들도 주말마다 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난 현실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 힘들고 무력감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유씨는 "한국에서 홍콩 관련 기사를 보고 혼자 자취방에서 운 적이 많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 사장님도 오늘(22일) 영업을 마치고 홍콩으로 가신대요. 홍콩인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가고, 어학원 친구들은 거의 다 간다고 해요. 투표 결과가 잘 나오면 좋겠어요."

지난 10월5일 홍콩 몽콕 경찰서 인근에 시위대가 모이자 한 여성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을 규탄하며 구호가 적힌 마스크를 들고 있다. © AFP=뉴스1

홍콩인 학생 진모씨(26)도 "졸업논문을 쓰고 있어 투표에 참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며 "대신 홍콩에 있는 친구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고 아쉬운 마음을 털어놨다.

진씨는 그동안은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투표를 한 적이 한번도 없고, 홍콩의 젊은이들도 정치에 관심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예전에는 별 후회가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죄책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선거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봤다.

"솔직히 그동안 홍콩 사람들은 이기적인 모습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시위를 거치며 모르는 사이인데도 물을 나눠마시고 필요한 것을 나눠쓰면서 '하나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생각이 바뀌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인 지지로 홍콩 외롭지 않아…28년 남은 자유 지키고 싶다"

진씨는 홍콩에 지지와 연대의 뜻을 보내는 한국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다른 나라들이 홍콩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외국에 머무르며 더 잘 알게 됐어요. 홍콩을 지지해주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요. 홍콩의 작은 목소리는 전 세계에 닿을 수 없어요. 하지만 각국에서 그 말을 전해준다면 세계인들이 알 수 있게 될 거예요."

진씨는 "다니고 있는 학교 게시판에 대자보가 붙어서 나도 포스트잇을 붙이려고 했는데 뒤에 중국인들이 서서 '쟤들 뭐하는 거냐'고 말하는 걸 듣고 무서워서 포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씨는 모든 중국인들이 홍콩 시위를 공격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국인과 홍콩인 대결구도가 자극적이라서 많이 보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지난 18일 고려대에서 토론회가 있었는데 '홍콩인들에게 민주화를 어떻게 하는지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중국인 학생들도 많았어요. 극단적 생각을 갖고 대자보를 찢는 중국인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진씨와 유씨는 모두 이날 선거결과와 홍콩의 앞날에 기대를 놓지 않았다.

"이번에 실패하면 홍콩은 정말 끝이에요. 홍콩의 자유를 중국이 빼앗을까 겁이 나요. 중국이 홍콩에게 체제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시간은 2047년까지에요. 남은 28년 동안만이라도 홍콩의 자유를 깨지 않고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앞에서 열린 홍콩의진실을알리는모임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한 대학생·청년 긴급행동'에서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고 있다. 2019.11.2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kays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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