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들 '90년대생' 열공..30대 "낀세대는 서럽다" 불만
국내 대형 유통회사에 다니는 A과장(36)의 최대 고민은 93년생(26세) 신입사원을 대하는 일이다. 최근 일이 몰려 업무 지시를 했더니 이 사원은 "이건 제 일이 아니다. 팀장님이 시킨 일부터 하겠다"며 거절했다. 회식 날에는 "운동 약속이 있어 불참한다"며 먼저 짐을 챙겨 퇴근해 버린다. A과장은 "후배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닌데 같은 팀 일원으로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 사이 90년대생이 기업에 들어오면서 조직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주요 대기업은 업무 자율성과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90년생의 특성에 맞춰 복지나 근무환경 등을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리가 정해진 ‘지정좌석제’ 대신 직원이 매일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는 ‘공유좌석제’를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의 창의력과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당당한 90년생 신입사원에 속 끓는 30대…"혹시 나도 젊은꼰대?"
그러나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특히 조직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는 30대 직원들은 당당하게 권리를 찾는 90년생에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30대는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내고 선약이 있다면서 회식에 불참하는 90년생이 부러우면서도 막상 이들의 단호한 태도에 서운함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말 잘못 꺼냈다가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라 기분 상하지 않게 이들을 설득할 방법을 고심하기도 한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에 다니는 B차장(39)은 "‘내 일’만 챙기고 팀 상황은 나 몰라라하는 90년대생이 얄밉기도 하지만, 맞는 말만 해서 반박은 못하겠다"며 "나도 모르게 ‘젊은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40~50대 관리자급의 요구에 맞추면서 20대 직원을 이끌어야 하는 ‘낀 세대’가 된 셈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30대는 조직 내 암묵적인 규율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참은 세대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20대를 보면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갈등이 새로운 세대를 받아들이면서 일어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기업들이 90년생을 제대로 관찰하고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점도 90년생을 파악하고 포용하고자 하는 조직의 요구를 반영한다.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씨는 "기업에 몰려들고 있는 90년생 직장 새내기들을 어떻게 하면 조직에 빠르게 융화시키느냐가 한국 조직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고 말했다. 그는 90년생 직장인이 기존 세대와 다른 점으로 ①회사가 아닌 ‘자기 자신과 미래’에 충성 ② 일과 삶의 균형 중시 ③ 보여주기식 노력에 대한 환멸 및 효율성 선호 등을 꼽았다. 저자는 "기업의 성패는 이들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했다.
◇부장님도 ‘90년생 공부’…대기업 ‘소통·행복·수평적 조직’ 강조
주요 기업들도 인력의 주축으로 부상한 90년대생을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수평적 조직문화와 소통, 워라벨 등을 강조하는 것도 세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경영진과 임원진은 ‘90년생이 온다’ 등의 책을 사서 읽는 등 자발적으로 공부에 나서고 있고, 기업들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세대 차이를 설명하는 특강을 열고 있다. 국내 한 호텔의 C(45) 팀장은 "요즘 젊은 직원들은 개인 생활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서 점심식사나 회식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원들을 직접 만나 소통을 하는 자리인 ‘행복 토크’를 열고 ‘번개 모임(즉흥적으로 만든 모임)’을 주최해 젊은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90년대생은 회사에서의 성공보다 행복과 자아실현을 중시하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포스코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 대리급 이하 직원으로 구성된 ‘영보드’를 운영 중이다. 영보드는 젊은 직원을 대표해 최고경영자에게 제철소 현장 분위기 등을 전달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역할을 한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를 보다 수평적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다.
곽 교수는 "요즘 20대는 합리적이고 똑똑하지만,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공동체 중심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경향도 있다"며 "기업은 유의미한 활동이나 체험을 통해 20대 직원들이 팀워크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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