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고구려비, 광개토왕때 건립 가능성

조종엽 기자 2019. 11. 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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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고구려비'로 알려진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사진)에서 '영락칠년(永樂七年)'이라는 글자를 판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고 연구위원은 "비석 정면 상단 부분에서 '영락칠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문구를 확인했다"며 "비석이 397년(영락칠년)이나 그와 멀지 않은 시점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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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인 '영락칠년' 글자 새로 판독.. 기존 학계 '장수왕 유력'과 달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분석
‘중원 고구려비’로 알려진 국보 제205호 ‘충주 고구려비’(사진)에서 ‘영락칠년(永樂七年)’이라는 글자를 판독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락’은 광개토왕의 연호다. 이 판독이 옳다면 이 비가 또 다른 광개토왕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광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2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여는 ‘충주 고구려비 발견 4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연구를 발표한다.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고 연구위원은 “비석 정면 상단 부분에서 ‘영락칠년세재정유(永樂七年歲在丁酉)’라는 문구를 확인했다”며 “비석이 397년(영락칠년)이나 그와 멀지 않은 시점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연호와 간지를 기재한 방식이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영락오년세재을미(永樂五年歲在乙未)’와 같다.

충주 고구려비는 마멸이 심해 읽어내기 힘든 글자가 많다. 모두 500여 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이지만 판독된 건 200여 자에 불과하다. 학계에서는 장수왕(재위 413∼491)이나 문자왕(재위 491∼519)대에 건립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 왔다. 고 연구위원은 고해상도 디지털 사진과 양질의 탁본, 3차원(3D) 스캐닝 데이터, RTI 촬영(다양한 각도에서 조명을 비춰 사진을 찍는 촬영기법) 자료를 확보해 글자를 종합 분석했다.

이번 분석을 통해 이 비석이 4면 모두에 글자가 새겨진 ‘4면비’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본문에서 ‘십이월이십삼(오)일갑인(十二月廿三(五)日甲寅)’으로 판독되던 부분은 ‘십이월이십칠일경인(十二月七日庚寅)’이라고 봤다. 397년 음력 12월 27일의 간지가 ‘경인’이다.

고 연구위원은 “이번 건립 연대 추정에 따라 충주 고구려비가 세워진 뒤 나중에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며 “충주 고구려비는 신라를 ‘형제’ 관계로 표현했고, 광개토왕비는 ‘속민’으로 표현한 것에서 정치적 관계의 변동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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