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대하는 폴란드의 이중성 [해외문화 산책]

2019. 11. 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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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와 넷플릭스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다. 발단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이웃의 악마〉(The Devil Next Door)라는 다큐멘터리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폴란드의 수용소’로 표시됐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나치 강제수용소.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글이 문 위에 쓰여 있다. / 위키피디아

한국에선 〈공포의 이반〉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시리즈는 미국 클리블랜드에 살던 한 노인이 1986년 돌연 기소돼 이스라엘 법정에 끌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평범한 이웃집 할아버지인 줄만 알았던 노인은 사실은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당한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나치 부역자였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법정에 나와 ‘수용소의 도살자’였던 노인의 과거 범죄를 증언한다.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공포의 이반> 홍보포스터. / 넷플릭스

노인이 일했던 트레블링카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북동쪽에 있다. 나치의 여러 수용소 중에서도 특히 유대인 ‘절멸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다. 당시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처지였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비롯해 나치의 악명 높은 수용소들 상당수는 현재의 폴란드 땅에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즐겨 보는 젊은 세대들은 7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역사를 잘 모른다. 자칫 나치의 범죄가 폴란드의 짓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고 폴란드는 주장한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넷플릭스 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에게 최근 서한을 보내 독일의 점령을 명시하지 않은 점에 불만을 표하며, 다큐멘터리의 지도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폴란드의) 명예를 지키고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1942년의 유럽 지도까지 첨부했다.

1941년 7월 폴란드 북동부의 예드바브네에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 유럽유대인회의(EJC)

폴란드는 자신들이 가해자로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지난해에는 나치 범죄와 관련해 ‘폴란드 책임’을 주장하는 발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나치범죄의 책임으로부터 폴란드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폴란드에서 전쟁 기간 살해된 500만 명 중 200만 명이 유대인이다. 폴란드인 상당수는 유대인들과 집시들을 제거하는 데에 협력했다. 1941년 7월 북동부 예드바브네 주민들이 유대인 이웃 300명 이상을 헛간에 집어넣고 산 채로 불태운 ‘예드바브네 포그롬(유대인 학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 1일 폴란드 비엘룬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추모행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독일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재차 사과했다. 정작 역사에 덧칠하려는 쪽은 폴란드다. 나치 침공이 시작된 그단스크의 베스테르플라테 반도에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추모공원은 몇 해 전 시 정부 관할에서 중앙정부 관할로 바뀌고 관장이 바뀌더니 ‘애국주의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다. 박물관 입구 벽의 유대인 희생자 사진들은 유대인을 돕다가 처형당한 폴란드인 가족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난민들 모습을 담으며 인권·평화의 현재 의미를 강조한 동영상은 ‘영웅적인 폴란드 군인들’을 담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대체됐다. BBC는 전쟁범죄 책임을 거론하는 것조차 막겠다는 폴란드의 행태야말로 역사를 왜곡하는 ‘세뇌’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정은 국제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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