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난 노후생활'..불법 건축물에서 사는 인생

CBS노컷뉴스 고태현 기자 입력 2019. 11. 18. 05:18 수정 2019. 11. 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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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건축의 함정①] 로망의 기쁨 보다 좌절만
부모님 설득해 업체 변경..얼굴도 못 드는 아들
※ 자연을 벗 삼아 전망 좋은 집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전원생활.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누구나에게 가장 큰 꿈이자 로망이다.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전문가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막상 주택을 짓게 되면 소비자는 '갑'이 아닌 '을'이 된다. 불공정계약, 공사 중단, 건축 하자 등 물적·심적 고통을 겪는다. CBS노컷뉴스는 '주택 건축의 함정'을 통해 일부 건축회사가 소비자를 어떻게 기망하는지, 또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로망의 기쁨 보다 좌절만…전원주택 건축 주의보
(계속)

공사가 멈춘 주택 건설현장. 피해 건축주는 계약에 따라 건축회사에 총 건축비 가운데 90%를 이미 지불했다. (사진=피해 건축주 제공)
충남 천안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던 김모(65)씨는 아내와 함께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내기 위해 전원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 물어물어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 위치한 전원주택 부지를 매입했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마음에 드는 한 건축회사도 발견했다.

1500채 이상 전원주택을 지었다는 홍보와 친절한 상담, 빠른 기일 내에 집을 지어주겠다고 업체는 설명했다.

믿음이 간 김 씨는 1층 25평, 2층 10평 구조로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고 지난해 3월 건축비 2억원에 업체와 계약했다.

추석 전까지 집을 지어주겠다는 업체의 설명에 김 씨는 천안 집을 팔아 건축비로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김 씨는 새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추석을 보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공사는 8월이 돼서 착공에 들어갔다. 추석 전 완공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내년 설을 기약하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주택골조가 완성되자마자 공사는 멈췄다. 김 씨는 하청업체로부터 건축회사가 돈을 주지 않아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 씨는 황당했다. 이미 전체 건축비의 90%를 건축회사에 지급했기 때문이다. 공사는 수개월 째 방치됐고, 건축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판 김 씨는 6개월간 펜션에서 살아야 했다.

주변에서 돈을 끌어다 기존 하청업체에 주고 어렵게 나머지 공사를 마무리한 김 씨는 준공 허가도 받지 못하고 새집으로 들어갔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불법 건축물에 사는 신세가 된 것이다.

김 씨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준공은 안됐지만 거주할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들어와야 했다"며 "나이 먹고 아내와 편히 지내려는 노후생활은 파탄 났다"고 한탄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발품 팔아 업체 선정…가족 간에 불화로 이어져

경기도 화성에 거주하는 경모(34)씨는 부모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새집을 짓겠다는 부모님 계획에 자신이 나서 업체를 추천한 것이 화근이었다.

부모님은 동네 사람에게 맡겨 집을 짓자고 했지만 경 씨는 이왕이면 근사한 집을 짓자는 욕심에 유명 건축박람회를 찾아 한 업체를 선택해 부모님께 추천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아들의 설득에 부모님은 받아들였고 지난해 2월 건축면적 37평, 2층 규모의 주택을 짓기로 하고 건축비 2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경 씨는 건축설계 수정을 거쳐 4개월 뒤 착공에 들어갔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 공사가 멈췄다. 하청업체가 건축회사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건축회사에는 총 건축비의 90%가 넘어간 상태였다. 경 씨는 막막했다. 건축회사에 연락하자 회사 사정이 어려워 잠시 중단된 것일 뿐 곧 진행될 것이란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2019년 2월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업체를 통해 집을 완공했다. 건축회사로부터 1억원 이상을 돌려받아야 했지만 연락도 닿지 않았다.

제주시 조천면에 조상 대대로 살던 땅에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김모씨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건축업계가 워낙 사기가 많다고 들었던 터라 비싼 돈을 주고라도 경험 많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업체를 선정했지만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건축박람회를 통해 알게 된 업체와 지난해 2월 3억원을 주고 45평 규모의 2층 주택을 짓기로 계약했다. 설계를 거쳐 지난해 11월 착공에 들어갔는데 올해 3월 공사는 중단됐다.

김 씨는 "가족별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형제간 다툼이 벌어졌다"며 "업체의 자금 압박으로 의도치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진=해당 건축회사 인터넷 홈페이지 갈무리)
◇전국적으로 20억 이상 피해…건축주들 민·형사소송 준비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해당 업체 한 곳에서만 피해를 본 건축주는 10명에 달했다. 계약금액도 20억원이 넘는다.

아직 파악되지 않은 건축주와 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 건축주들은 해당 업체가 유명 건축박람회에 다수 참가한 점, 1500채 이상 시공경력, 건축 전문가 집단, 업계 1위 등이라는 홍보를 믿고 계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디자인을 강조한 완성도 높은 집을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시일 내에 지어주겠다는 업체의 설명이 건축주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건축 피해로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에 입원한 건축주도 확인됐다. 제주 서귀포시 보목동에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염모씨는 "스트레스를 받아 쓰러져 병원에 3주간 입원하고 최근 퇴원했다"고 말했다.

염 씨를 비롯한 여러 건축주들은 각각 해당 건축회사를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 상태다.

염 씨는 "돈만 받고 공사를 하지 않는 것은 사기꾼"이라며 "이런 업체는 건축업계에서 퇴출시켜야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것"라며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아들의 권유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주택을 짓고 있는 조모씨도 "갑자기 공사가 중단되고 하청업체가 저희 건물에 유치권까지 행사했다"면서 "업체를 상대로 법적조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회사부로부터 받을 돈을 포기한 건축주도 있었다. 소송의 경우 변호사 선임 등 각종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현재 어려운 상황을 감안하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된다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 건축주 아들 경모씨는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 2~3년 이상 걸리고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마음고생도 심할 것"이라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소송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건축회사 관계자는 "작년부터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공사가 멈춘 현장은 건축주에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며 "현재 공사를 재개하려 하고 있는 등 방치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한다"고 해명했다.

민·형사소송에 대한 질문에는 "전원주택 건설은 수익이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는 많은 일을 하지 않으면 어려워진다"면서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판사가 결정할 것이고 소송은 다투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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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고태현 기자] th047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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