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요즘 美 밀레니얼세대 "팁? 그걸 왜 줘야하는거죠?"

실리콘밸리=박순찬 특파원 2019. 11. 18.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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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창 Now] [박순찬의 실리콘밸리 통신] 흔들리는 미국의 팁 문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 우버 이용자 70%가 23~38세
밀레니얼세대가 주로 이용하지만 항상 팁 주는 사람은 1% 불과
왜 내가? - 가게 주인이 줘야할 임금을 손님에게 떠넘긴다는 인식
무엇이든 독립적으로 하는 세대..
호텔 도어맨·벨보이에 부탁 대신 알아서 짐 옮기고 정보 수집해
"밀레니얼은 팁(tip)을 내지 않는다."

미국의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23~38세)'가 팁에 인색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단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55~73세)보다 돈을 적게 벌어서가 아니다. 무조건적 팁에 대한 거부감, 비(非)대면 서비스의 발달, 까다로운 서비스 눈높이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적은 시급(時給) 대신 손님이 주는 팁으로 보상받는 '팁 시스템'에 강력히 의존해온 미국 사회가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다.

팁에 인색한 밀레니얼

미국의 신용카드 정보업체인 '크레디트카드(creditcards)'는 올해로 3년째 팁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오고 있다. 한결같이 나타나는 신호는 '밀레니얼은 이전 세대보다 팁을 잘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발표된 올해 조사를 보면, 밀레니얼은 베이비부머에 비해 팁을 주는 경우가 눈에 띄게 적었다. 대표적으로 레스토랑에서 베이비부머는 89%가 웨이터에게 팁을 줬지만 밀레니얼은 66%에 그쳤다. 웨이터 입장에서 팁을 안 주는 베이비부머는 10명 중 1명꼴이지만, 밀레니얼은 3~4명이 그러는 것이다. 사람 손이 들어가는 대표 업종인 미용실에서도 베이비부머가 팁을 주는 경우는 73%인 반면 밀레니얼은 53%로 낮았다. 호텔방에 남기는 팁도 밀레니얼은 23%만 지갑을 열었다.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의 팁'을 주제로 스탠퍼드대·UC샌디에이고 연구진과 우버·리프트 관계자가 지난달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런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마트폰으로 주변 자가용을 호출해 택시처럼 이용하는 우버는 이용자의 70%가량이 밀레니얼이다. 운행 기록 4000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우버 기사에게 항상 팁을 주는 손님은 1%에 불과했다. 손님 60%는 아예 팁을 주지 않았다. 전체 운행의 16% 정도만 팁을 받았다. 우버는 미국 택시와 달리 '노 팁(no tip)' 정책으로 출시 초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기사와 일부 사용자의 요구로 2017년 6월 결국 '팁 주기' 메뉴를 신설했다.

"돈 없어 안 주는 게 아니다"

밀레니얼은 왜 팁에 인색한 것일까.

어떤 뚜렷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여러 사회·문화·경제적 요소가 골고루 맞물린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선 크레디트카드는 '밀레니얼이 팁에 문화적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의 테드 로스먼 애널리스트는 "팁을 받지 않는 레스토랑에 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설문에, 밀레니얼 대부분이 '그렇다'고 답했다"면서 "단순히 '밀레니얼은 팁을 잘 안 낸다'고 할 게 아니라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단지 돈을 적게 벌고, 돈이 아까워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공정함, 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에게 팁 문화는 불편한 구석이 많다. 가게 주인이 종업원에게 충분한 임금을 주지 않고 팁으로 손님에게 떠넘긴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또 각자 노력한 만큼 팁을 받는 게 아니라 젊고 매력적인 여성, 유색인종보다 백인이 팁을 더 받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반감도 작용할 수 있다.

호텔 업계도 밀레니얼이 여행은 자주 하지만, 팁 수입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한다. 유명 관광지인 캘리포니아주 소살리토의 한 4성급 호텔 매니저는 뉴욕타임스에 "밀레니얼은 남에게 뭘 시키기보다 뭐든지 직접 하는 독립적 성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어맨·벨보이에게 짐을 맡기고, 컨시어지에 뭘 부탁하는 대신 직접 짐을 옮기고 스마트폰으로 알아서 정보를 찾는 경우가 많다 보니 팁을 줘야 할 상황이 발생할 확률도 낮다는 것이다.

밀레니얼이 인공지능(AI) 시대 '맞춤형 추천'에 익숙해져 웬만한 '범용 서비스'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에밀리 가빈스키 미 노트르담대 교수는 "밀레니얼은 경험을 중시하고, 넷플릭스나 스티치픽스(옷 추천)와 같은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며 "베이비부머와 밀레니얼이 바라는 서비스의 수준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의 맞춤형 추천에 맞춰 높아진 눈높이를 오프라인이 따라가지 못하면 팁도 박해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도 하나의 요인이다. 어릴 때부터 우버를 접한 밀레니얼에게는 '이동 수단'에 팁을 줘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기사 얼굴을 맞대고 요금과 팁을 줘야 하는 택시와 달리, 우버는 일단 차에서 내린 다음 스마트폰에 팁을 줄지 말지 입력하는 비대면 방식이라 압박감이 없다.

'노 팁' 선언하는 식당도


이런 흐름에서 '팁 시스템'을 탈출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음식값을 10~20% 높이는 대신 팁을 받지 않는 '노 팁 레스토랑'이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에 속속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님의 반발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평가다. 팁을 15% 주나, 음식값을 15% 올리고 팁을 안 받으나 '조삼모사(朝三暮四)' 같지만 고객 입장에선 가격이 크게 오른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 팁은 좋은 서비스를 보장하는 일종의 담보 같은 것인데 일률적으로 팁을 매겨버리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결국 옐프(yelp)와 같은 맛집 평가 앱에서 낮은 평점을 받고, 손님이 뚝 떨어지면서 다시 '팁 시스템'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에는 '팁 시스템은 부도덕하다(Immoral)'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이 글에서 팁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프랑스처럼 '팁 포함 가격'으로 가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재 미국에서 팁을 없애려는 시도는 일반적으로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더 나은 대안을 찾을 때까지 음식점에서 25~30% 팁을 주고, 호텔방에 꼭 팁을 남기고, 편견 없이 모든 운전기사에게 같은 비율의 팁을 주자고 제안했다. 여기엔 1300여개 댓글이 달리며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미국의 팁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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