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치매·조현병 걸린 의사 수십명..숨기고 진료하면 정부 모른다

정종훈 2019. 11.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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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상 정신질환자는 의료인 결격 사유 해당
병 숨기고 환자 진료, 청구 비용만 4년간 1000억
신고의무 규정 없는 허점 "검증 시스템 마련해야"
조현병 등 정신질환 앓는데도 환자 진료를 이어가는 의사가 해마다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간호사 A씨는 2017년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조현병 발병이 의료인으로서 결격 사유라는 걸 알았다. 결국 자신의 간호사 면허를 스스로 반납하기로 했다. A씨는 그해 9월 보건복지부에 간호사 면허를 취소해달라는 신청서를 자진 접수했다.

A씨는 2014년 이후 정신질환으로 의료인 자격이 취소된 유일한 사례다. 반면 치매ㆍ조현병을 앓는데도 이를 숨긴 채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매년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의료법 8조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의료인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만, 관리 허점 때문에 환자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치매ㆍ조현병 진단을 받은 의사들이 환자를 본 뒤 심평원에 진료비를 달라고 청구한 게 최대 156만여건에 달했다. 이에 따른 진료비 청구액만 1000억원을 넘는다.
치매 사실을 숨기는 의사가 적지 않다. [연합뉴스]
치매로 진료받은 의사는 2016년 53명, 2017년 48명, 지난해 61명, 올해 상반기 43명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치매 특성상 70대 이상 고령 의사가 76.7%(올해 상반기)로 가장 많았다. 이들이 청구한 진료 명세서만 최대 90만여 건, 진료비 청구액은 약 400억원이다.

조현병 치료를 받은 의사도 2016년 53명, 2017년 47명, 지난해 49명, 올해 상반기 40명에 달한다. 연령별로는 50세 미만이 57.5%(올해 상반기)로 절반을 넘겼다. 이러한 의사들이 청구한 진료 명세서는 최대 65만여건, 진료비 청구액은 약 650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엔 법적 한계가 크게 작용한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의료인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만, 정신질환 발병 사실을 무조건 신고할 의무가 없다. 의사가 자신의 병을 숨길 경우엔 찾아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의료인의 정신질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의료인 결격 사유에 해당된다. [사진 pixabay]
복지부는 국회에서 법 개정을 뒷받침하고, 별도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환자ㆍ소비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환자안전 의료정책 협의체'에서 면허 관리 개선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한의사협회 등과 함께 면허 관리를 위한 의료인 자율 규제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인재근 의원은 "복지부와 관련 기관ㆍ협회들은 진료 행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료인의 신체적ㆍ정신적 질환 여부를 체계적으로 검증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 의료 안전을 보장하고 대다수의 성실한 의료인 권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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