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화 못 읽은 TV조선 '연애의 맛'

민주언론시민연합 입력 2019. 11. 16. 09: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방송 모니터위원회 보고서 ]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 이 보고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모임인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만나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 등을 모니터하고, 한 달에 1개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방송비평을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민언련(02-392-0181)으로 연락주세요.

지난달 24일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연애의 맛>이 최고 시청률 4.485%(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시즌3의 문을 열었다. 이는 동 시간대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첫 화 시청률만 보면 이전 시즌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매년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연애의 맛>이 유독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진은 그 비결로 다른 연애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을 꼽았다. '데이트 미션'과 같은 인위적인 개입 없이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교류를 그저 장려한다는 것이다. 과연 말 그대로 이 프로그램에는 별다른 '미션'이 없다.

하지만 <연애의 맛>은 인위적 개입만 없을 뿐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대부분 답습하고 있다. 가상 커플의 나이 차가 과도하다거나 비뚤어진 성 관념을 고착화하는 경우가 그렇다. 또 사회적 통념에 기대어 성 역할을 강요하거나 출연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도 빈번하게 관찰된다. 사실상 이전의 연애 프로그램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자 <연애의 맛> 시즌1·2를 시청했고, 그중 도드라지는 장면을 추려 이번 보고서 작성에 활용했다.

한쪽으로 쏠린 나이 차

<연애의 맛>을 시청하면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가상 연애 커플의 현저한 나이 차다. 시즌1·2에는 각각 다섯 커플이 등장하는데(한 번의 만남으로 가상 연애가 종료된 커플은 제외), 나이 차의 평균을 구해보면 시즌1은 13.2살, 시즌2는 10.4살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시즌1·2 모두 10살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것이다. 물론 띠동갑 사이라고 해서 연애나 결혼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에서 비롯된 나이 차도 아니고, 제작진이 출연자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나이 차다. 게다가 이것이 남자 출연자의 나이는 높고 여자 출연자의 나이는 낮은 형태로만 나타난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더욱 자세히 보면 현격한 나이 차가 특정 조합의 커플에 쏠려 있는 것이 드러난다. 두 시즌 전체에 걸쳐 남성 연예인과 여성 비연예인 커플이 총 8쌍 등장하는데, 이들 간 나이 차는 13.4살이다. 반면 여자 연예인과 남성 비연예인 커플은 총 2쌍 출연하는데, 이들은 5.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심지어 시즌2에 출연한 '숙행-이종현' 커플은 한 살 차이다. 어떤 성별로 조합된 커플이냐에 따라 나이 차에도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 '연애의 맛' 출연자와 나이 차.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물론 이 같은 나이 설정에 대한 비판은 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작진들의 해명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2월에 나온 YTN과의 인터뷰에서 <연애의 맛> 서혜진 CP는 이렇게 대답했다. "연예인들의 감수성은 실제 나이에 비해 순수한 경우가 많다. 우선 대화가 서로 통해야 했다. 그들의 나이를 숫자로 계산해서 생각했다기보다 예술가적 면모를 지닌 사람들의 순수성을 먼저 이해해야 했기에 나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 CP의 해명에도 여전히 뒷맛은 씁쓸하다. '연예인이 나이에 비해 순수하다', '연예인의 감수성은 순수하다'는 말이 보편성을 띤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가, '순수하면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전제도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서 CP가 말하는 '연예인'에는 사실상 남자 연예인만 포함돼 있다. 그가 말하는 연예인에 여자 연예인도 포함돼 있었다면 출연자들의 성별 조합은 더욱 다양했어야 하고 나이 차 또한 그랬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는 달랐다. 능력 있는 40대 남성과 젊은 20대 여성의 만남은 인정하면서 능력 있는 40대 여성과 젊은 20대 남성의 만남은 주선하지 않았다. 가상 커플의 현저한 나이 차도 문제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연애의 맛> 제작진의 인식은 더욱 불편하다.

성 관념 고착화

<연애의 맛>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성 관념을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성 관념은 각각의 성별을 어떠한 정형화된 틀에 가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고 쉽게 규정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여성 출연자 자막엔 분홍색, 남성 출연자 자막엔 파란색 넣어 성별을 구별하는 '연애의 맛'.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시즌1 4·6화, 시즌2 15·8화. 사진='연애의 맛' 갈무리

시즌1과 2를 통틀어 성 이미지 고착화가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영역은 '자막'이다. 자막은 제작진이 영상을 편집할 때 표기하는 것으로, 제작진의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다. 자막을 보면 <연애의 맛> 제작진의 성별에 관한 인식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로그램 전 회차에서 남자 출연진의 말은 파랑으로, 여성 출연자의 말은 분홍으로 색을 입히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관념을 현재에도 대입하려는 퇴행적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출연진의 어떤 행동을 성별 탓으로 해석하는 행태도 문제다. 시즌1 16화에는 정영주 씨가 음식을 먹을 때 손으로 받치는 장면이 나온다. 음식물을 바닥에 흘리지 않기 위해서든 음식을 건네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든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이유로 손을 받친다. 하지만 자막은 '여성스러운 꽃받침 시식'이라고 표현했다. 다양한 이유를 배제하고 '여성스러운 행동'이라 수식한 것이다. 만일 남성 출연자가 그랬다면 여기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음식을 먹을 때 손을 대는 건 특정한 성별이어서 하는 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습에 기대어 연약한 여성상을 강요하는 시도도 포착되기 때문이다. 시즌2 7화의 스튜디오 패널 간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해당 대화가 이뤄지기 전, 관찰 영상에는 이형철 씨가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는 여성 출연자를 귀여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 보고 스튜디오 패널인 박나래 씨가 "저거 보니까 이제 (놀이기구) 못 타야겠네"라고 하자, 같은 패널인 장수원 씨는 "못 타는 척도 해줘야지"라고 덧붙였다. 당시 패널들은 이를 웃고 넘겼다. 하지만 이는 결코 웃음거리로 치부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여성 스스로 연약한 여성상을 학습하고, 남성이 이를 또 한 번 되짚은 대화는 작금의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와 정면 배치된다.

▲ 손 받치는 행동을 '여성스러운'이라고 칭한 '연애의 맛' 시즌1 16화. 사진='연애의 맛' 갈무리

성 역할 강요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고정된 성 역할에서 탈피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군인, 경찰 등에서 여성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여성에게 전가되던 육아와 살림, 요리 등의 가사 노동을 남성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비등해지고 있다. 하지만 <연애의 맛>은 이러한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프로그램 곳곳에서 시대착오적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시즌1 5화에는 이필모 씨가 상대 출연자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손수 음식을 만들어 도시락통에 담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더불어 상대 출연자가 감동하는 장면도 담았다. 호감 가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 사람과 그 정성에 감동한 상대방, 여기까지는 나무랄 데 없는 편집이다.

하지만 이후 스튜디오 패널 간의 대화에서 이전의 흐뭇함은 금세 일그러진다. '남자들의 로망, 여친 메이드 도시락'이란 자막 때문이다. 남성 패널들은 이필모 씨가 도시락을 싸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시청한 뒤, 이에 감탄하면서도 자신들은 '여친'이 싸준 도시락을 먹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구시대적 발상인 데다 굳이 되짚고 넘어가야 할 정도로 중요한 언행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연애의 맛> 제작진은 이를 자막화해 한 번 더 강조했다. 해당 발언이 '음식은 여자의 몫'이란 뉘앙스를 풍길 수 있음에도 이렇게 편집한 것은 제작진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성 역할의 올가미는 남성 출연자에게도 씌워지고 있다. 시즌1 5화에는 이필모 씨가 상대방의 시계를 공구를 이용해 수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남자가 섹시해 보일 때=공구 쓸 때'라는 자막이 쓰였다. 분명 상대방의 시계를 고쳐주려는 이필모 씨의 마음 씀씀이는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굳이 공구와 남자의 섹시함을 등호로 연결할 이유는 없다. 사람마다 섹시함을 느끼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불어 '섹시함'은 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유일한 매력도 아니다.

▲ 도시락은 여성, 공구는 남성의 몫? 성 역할 고착화하는 '연애의 맛' 시즌1 5화 자막. 표='연애의 맛' 갈무리

빈번한 외모 평가

마지막 비판 지점은 <연애의 맛>이 과도한 외모 평가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비연예인 출연자가 등장할 때마다 스튜디오에서는 온갖 감탄사가 쏟아진다. 얼굴과 몸매로도 부족해 머릿결까지 평가할 정도다.

스튜디오 패널 최화정 씨의 발언이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직접 보면 훨씬 예쁘대요. 피부도 너무 예쁘고, 머릿결도 너무 예쁘고." 최 씨는 시즌2 15화에서 비연예인 출연자의 얼굴뿐 아니라 머릿결까지 평가의 범주로 하락시켰다. 시즌1 1화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견된다. "대박이다. 엄청 예쁘시다." 스튜디오 패널 박나래 씨의 발언인데, 이는 비연예인 출연자를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외모지상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남성 패널이 남성 출연자를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시즌2 6화에서 남성 출연자가 처음 등장하자 모두가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외모만을 보고 '사람이 괜찮다'는 식으로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패널로 나온 이용진 씨는 "탤런트 느낌 나는데?", "우와 기럭지 봐"라고 하며 닮은 연예인을 칭찬처럼 말해준다. 남성이 남성을, 즉 동성이 동성의 외모를 평가하며 칭찬하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외모를 대화 주제로 삼는 그 자체는 엄연히 지양해야 할 태도다.

더 큰 문제는 비연예인 출연자의 친구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시즌2 6화에 출연한 천명훈 씨의 발언이 단적인 사례다. 천 씨는 비연예인 출연자인 이채은 씨의 친구에 대해 "그 와중에 채은 씨 친구분 미모가 상당하시네요"라는 식으로 품평했다. 비연예인 출연자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도 모자라 그의 친구까지 평가의 대상에 올린 것인데, 이는 잘못된 언행에 대한 반성과 교정 없이 그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타인의 외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칭찬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외모 평가를 두고 상대방을 상품화하는 것이자 차별의 이음동의어라는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연애의 맛>은 시대의 요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흥행=차별성' 아냐… 시대 흐름 역행한다면 무슨 의미인가

넷플릭스에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영화가 있다. 남성 중심주의 사고에 심취해있던 남자 주인공이 여성 중심 사회를 맞닥뜨리게 되면서 지난날의 과오를 깨달아 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머리를 세게 부딪쳐 젠더 권력이 뒤바뀐 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이 설정이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익숙지 않은 것은 아니다. 흔히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미디어에서 젠더 관념을 뒤바꿔보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마블 최초의 여성 히어로 영화 <캡틴마블>, 자스민이 술탄에 도전하는 <알라딘>, 커리어우먼들의 세계를 그린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 열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성평등적 관점을 담은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은 현실의 반영 아닐까. 현실은 물론 콘텐츠 시장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면, 현실을 담는 TV 프로그램도 이에 발맞춰야 한다. 그러나 <연애의 맛>은 '종편이 만든 예능 프로그램 중 나름 실적이 좋다'는 평가 외에는 칭찬할 만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세태를 꼬집는다거나 시대 흐름을 반영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데이트 미션' 같은 인위적인 개입만 버릴 것이 아니라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구시대적 사고관도 함께 버렸어야 하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연애 예능은 개인의 내밀한 부분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여기에 대한 고민 없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만 해서는 '실적 좋다' 외의 호평을 끌어낼 수 없다. 지난달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연애의 맛>. 이전 시즌과 다를 바 없이 시대에 역행하는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인가?

※ 모니터 기간 대상 : 2018년 9월16일~2019년 2월21일 TV조선 <연애의 맛> 시즌1, 2019년 5월23일~2019년 9월19일 TV조선 <연애의 맛> 시즌2
※ 문의 : 조선희 활동가 (02) 392-0181/ 정리 :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노동원 회원

[미디어오늘 바로가기][미디어오늘 페이스북]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