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만연하는 가짜 의학정보]"배란일 다음날 관계하면 딸 낳는다?"

이정아 기자 2019. 11. 1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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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 전혀 없는 속설이 상식처럼 돌아
유튜브와 맘카페 등에서는 원하는 성별을 선택해 임신하는 비법이 널리 퍼져 있다. 유튜브, 네이버카페 제공

“첫째가 아들이에요. 둘째는 딸을 가지려는데 비법을 알려주세요.”, “딸을 임신할 확률을 높이는 음식이 있다는데 어떤 건가요?”, “셋째는 아들을 가지려는데 배테기(배란테스트기)로 이틀 전인지 어떻게 알지요?”, “딸 낳는 법 제가 직접 경험해보고 시도한 것들 공유할게요.”

임신을 준비 중인 여성들이나 임산부들이 많이 모이는 맘 카페나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성별 임신’, ‘딸 낳는 비법’, ‘아들 낳는 비법’을 검색해보면 엄청난 게시글과 동영상이 등장한다. 원하는 성별을 골라 임신하는 비법은 ‘딸아들 구별해 낳는 법’ 등 노골적인 제목의 서적으로도 나와 있고, TV 프로그램에서도 한 연예인이 비빔밥을 즐겨 먹고 게임을 많이 했더니 딸을 낳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수~수십만 원 돈을 내면 원하는 성별의 아기를 갖도록 구체적인 잠자리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

중고등학교 과학수업시간에 배우듯이 아기의 성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에 정해진다. 난자는 X염색체만을 가졌지만, 정자는 각각 X 또는 Y염색체를 갖고 있다. 난자가 어떤 정자와 만나느냐에 따라 아기는 여성(XX)이 되거나 남성(XY)이 된다. 

아기의 성별은 의지와 관계없이 무작위로 이뤄지는 ‘하늘의 뜻’인 것 같지만, 최근 인터넷과 미디어 등에서는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댄 ‘성별 선택 임신 비법’이 만연하다. 정말로 이런 비법들로 원하는 성별의 아기를 임신하는 일이 가능한지 알아봤다. 

여성 주기에 따라 딸이 잘 생기는 날짜가 있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

1990년대 프랑스의 생물학자 파트릭 숀은 아들 또는 딸을 갖기에 최적인 날짜를 알 수 있는 ‘셀나스 임신법’을 개발했다. 그는 153쌍 커플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대부분 원하는 성별의 자녀를 임신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자에 전기충격을 가하면 X염색체는 (+)극으로 Y염색체는 (-)극으로 모이는데, 여성은 생년월일에 따라 일정한 극성 주기가 있다. 이 극성 주기에 맞춰 원하는 성별을 임신할 수 있는 최적일을 정할 수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해외, 심지어 국내에서도 극성 주기를 토대로 ‘원하는 성별을 임신하는 최적의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가 여럿 운영되고 있다. 수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을 내고 여성의 생년월일과 생리주기, 혈액형, 최종 생리일 등을 알려주면 최적일을 알려준다. 심지어 사주와 음양오행, 주역, 바이오리듬 등을 이용한다고 광고하는 사이트도 있다.

맘카페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법은 배란테스트기, 일명 ‘배테기를 이용한 방법’이다. 배테기는 원래 배란일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오는 소변을 배테기에 흡수시키면 먼저 소변이 잘 흡수됐음을 의미하는 지시선이 나타난다. 배란기에는 지시선 옆에 또 하나의 붉은 선(테스트선)이 나타난다. 배란일이 임박할수록 테스트선 색깔이 짙어진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배테기를 이용해 배란일을 추정한 다음, 그 당일에 관계를 가지면 아들이, 배란일 2~3일 전에 관계를 가지면 딸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이유는 Y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X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훨씬 오래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여성의 질 내부가 pH 4.5~5.5 정도로 산성인데,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비교적 약해 쉽게 죽는다는 것이다. 질 내부는 평소 산성을 띠지만 배란일이 가까워지면 점점 알칼리성으로 바뀌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잘 맞추면 아들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극성 주기나 바이오리듬, 배란일 등을 이용해 성별을 선택해 임신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고기-오징어-연어 많이 먹고 산성 지켜라

배란점액을 닮은 윤활제 프리시드젤 - 산성인 질내 환경을 알칼리성으로 변화시켜 정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이동을 도와 수정 성공률을 높이는 윤활제. 프리시드 제공

X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Y염색체를 가진 정자보다 산성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다는 이유로 질 세정제나 음식을 이용해 원하는 성별을 임신할 수 있다는 비법도 퍼져 있다. 

딸을 임신하고 싶다면 식초처럼 산성을 띠는 물질로, 아들을 갖고 싶다면 소다수처럼 알칼리성을 띠는 물질로 관계를 갖기 15분 전에 질을 세척하라는 것이다. 또는 평소 고기와 오징어, 연어 등 산성을 띠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질 내부가 강력한 산성을 띠어 딸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비법도 있다. 이와 반대로 과일이나 채소, 현미밥 등 알칼리성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아들을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평소 게임을 많이 해 전자파에 노출이 많이 되거나 영상의학과, 원자력연구 시설 등 방사선을 이용하는 업계에서 일하면 비교적 약한 Y염색체가 도태돼 딸이 잘 생긴다는 이야기들도 나돈다.  이 역시 산성, 알칼리성 질세정제와 음식을 이용한 방법, 전자파나 방사선 영향으로 특정 성별을 임신할 확률이 높다는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어떠한 의학 논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딸 낳는 비법’ 전혀 입증되지 않아 

신지은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교수는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딸 낳는 비법 또는 아들 낳는 비법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며 “혹시나 최신 연구 성과가 있을지 찾아봤으나 관련 논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아들만 세 명”이라며 “난임 치료 전문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런 비법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사용하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굳이 성별을 선택해 임신하려면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유전자 분석을 한 뒤 체외수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태아의 성 감별을 목적으로 체외수정을 하는 일은 불법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이런 비법들을 활용해 원하는 성별의 자녀를 갖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신 교수는 “어차피 태아의 성별은 남자 또는 여자이므로, 동전을 던져서 앞면 찾기처럼 확률은 50%에 이른다”며 “이런 방법들이 의학적으로 인정 받으려면 잘 설계된 방법으로 무작위 대규모 연구를 거쳐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미 삼아 딸 또는 아들을 갖는 비법을 따라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통계적인 가능성과 특정 성별의 자녀를 애타게 갖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악용해 돈벌이를 하는 일부 사람들은 윤리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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