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순간의 아파트가 평생을 좌우했다' 집에 인생 건 2030

2019. 11. 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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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0%의 기회, 90%의 절망

“○○는 강북에 집 사서 2년 만에 2억 벌었대.” “야, ××는 강남에 집 사서 1년 만에 3억 벌었어.”

20대와 30대 두 명만 모이면 집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더 많이 돈을 번 친구를 말해야 내 레벨이 올라가는 게임이라도 하는 듯, 금액이 끝도 없이 올라갑니다.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처럼, 완벽한 친구들의 영웅담은 그들에겐 희망이 되고, 조바심이 되고, 두려움이 됩니다. 그래서 대화의 끝은 비슷하게 끝납니다. “우리도 집 사자.”

또 다른 20대와 30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두 명이 모여도 집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ㅇㅇ는 강북의 바퀴벌레에 나오는 집에 산대.” “야, ××는 강남의 꼽등이 나오는 집에 살아.” 굳이 친구들이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지만, 사실 친구들이 사는 환경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20~30대는 두 그룹으로 갈립니다. 집을 샀거나 “우리도 집 사자”고 말하는 이들은 상위 10%입니다. 나머지 90%는 집이 없고 “우리도 집 사자”고 말할 수도 없는 이들입니다. 두 그룹은 넉넉한 부모가 있느냐, 안정된 소득을 버느냐로 갈립니다. 좋은 지역에 좋은 집을 사고 싶다는 바람과 욕망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10%와 90%가 격차를 좁히고 비슷하게 욕망을 좇을 수 있도록 제대로 돕지 못합니다. 그사이 상위 10%는 몇 년 치 근로소득을 한번에 벌지만, 나머지 90%는 전세대출 이자와 월세에 근로소득을 씁니다.

집값이 다시 오릅니다. 지난해 가을 폭등했다가 잠시 주춤했던 부동산 가격이 여름부터 슬금슬금 상승하고 있습니다. 서울 일부 지역의 아파트에서는, 지난해 만들어진 천장이 또다시 뚫렸습니다. 강남에선 평당(3.3㎡) 1억원짜리 아파트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그런데도 20~30대의 절반은 지금보다 더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한국갤럽 9월 설문조사). 이런 전망은 10%에는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90%에는 그 자체로 절망입니다. 2019년 겨울의 문턱, 집에 인생이 달린 20~30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네 명의 30대가 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와 안정된 직장에서 고정된 소득을 벌고 있다. 부모에게서 큰 자산을 상속받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적어도 빚을 물려받지는 않았다. 스스로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생각하겠지만 남들이 볼 때 ‘부러운 은수저’다. 거칠게 말하면, 비슷한 계층으로 묶여 비슷한 경로로 살아온 이들이 갈림길에 섰다. 2년 전쯤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전후 각자 내린 한 번의 선택 때문이었다.

“집 안을 둘러볼 때 느낌 좋았는데…”

2017년 9월 고민철(37·가명)씨는 서울 영등포의 신축 108㎡(33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2016년 결혼해 서울 강남구의 원룸 전셋집과 인천 송도의 아파트 전셋집을 거쳐 처음 마련한 ‘내 집’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으니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몇 달 전 사둔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 덕분이었다. 입주권 가격은 프리미엄 금액과 세금을 합쳐 6억8천만원. 결혼할 때 양쪽 부모에게 받은 5천만원과 부부가 모은 2억5천만원으로는 부족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4억원 가까이 빚을 냈다. “한 달에 이자만 100만원씩 나가지만 아내와 둘이 합쳐 (세후) 800만원씩 벌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주저하면 후회한다”는 생각에 ‘지른’ 아파트는 대박이 났다. 지난 9월 같은 동, 같은 평수가 13억원에 거래됐다. 2년 만에 6억2천만원이 올랐다. “투자 성공 방정식을 알아낸” 민철씨는 내년 5월에 입주하는 은평구의 신축 아파트 82㎡(25평) 입주권을 7억4500만원에 하나 더 사며 ‘서울 신축 아파트 2주택자’가 됐다.

혼자 전셋집에 살던 김명민(37·가명)씨도 2017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 105㎡(32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직장생활 13년간 모은 전세금 3억원에 대출 2억6천만원을 내서 매매대금 5억6천만원을 만들었다. 최근 실거래가는 6억9천만원으로, 2년 전보다 1억3천만원 올랐다. “2년 동안 ‘4억원 벌었다’ ‘5억원 벌었다’고 하는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 안 되지만, 이마저도 안 샀다면 망했을 것이다.” 명민씨는 이렇게 생각하며 만족한다.

아파트만 집이 아니다. 2017년 8월 황수철(38·가명)씨는 “집 안을 둘러볼 때 느낌이 좋았던” 서울 성동구의 33평 빌라를 3억6천만원에 사서 들어갔다. 세후 400만원대이던 월급을 5년간 고스란히 모아 2억원을 마련했고, 1억6천만원의 빚을 얻었다. 교통이 좋은 지역의 넓은 빌라에서 혼자 지내는 삶에 만족하지만 “잘못 판단했다”는 후회가 들 때도 많다. “빌라를 사기 전에 같이 봤던 마포구의 아파트 3곳이 최근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오른 아파트’에 나란히 선정돼서” 속이 무척 쓰리다. “아파트로 갈아타려”고 지난 8월 5억3천만원에 빌라를 내놓았지만 석 달간 집을 보러 온 사람은 한 명이다. “잘못된 한 번의 판단으로 내 인생의 몇 년을 날렸는지 모르겠고, 아예 (남들과) 회복이 불가능한 (자산) 격차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철씨는 괴롭다.

다른 3명이 집을 살 때, 김진아(35·가명)씨는 집을 팔았다. 2017년 9월 “아이 얼굴을 조금 더 보고, 평지에서 아이가 실컷 뛰어놀수 있도록” 은평구의 언덕에 있던 25평 아파트를 떠나 회사 근처인 마포구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그때도 마포의 25평 아파트는 6억원 중반에 거래되고 있었지만 아파트 매매대금 4억3천만원에 빚을 내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보름 만에 호가가 2천만원 올라 예산을 훌쩍 넘어섰다. “빚을 더 내서라도 꼭 집을 사려” 했으나 남편이 “제대로 경제 관념이 박힌 사람이면 이런 상황에 집을 사선 안 된다”고 극구 반대했다. 남편은 “한 달 전 문재인 정부가 8·2 대책을 내놨으니,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테니 기다려보자”고 설득했다. 결국 둘은 기존 아파트를 판 곳에 가까이 있는 아파트 33평에 전세 4억원을 주고 이사했다. 진아씨가 사려고 둘러봤던 마포 아파트는 2년 만에 3억~5억원씩 올라 “빚을 다 끌어모아도 넘볼 수 없는” 가격으로 치솟았다. 12월에 전세 계약이 만료되지만 “평지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바람은 이번에도 못 이룰 듯해 진아씨는 마음이 아프다.

‘비강남’과 송파·강동·성동·마포에서

2년 만에 이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부동산 계약서’ 한 장이었다. 네 명 모두 목돈 2억~3억원에 대출을 끼고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나 계약 내용에 따라 민철씨는 한번에 6억2천만원을, 명민씨는 1억3천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수철씨는 거래 자체가 없어 이익을 얼마나 볼지 알 수 없고, 진아씨는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주거비 부담으로 손해를 봤다. 그 결과 민철씨와 명민씨는 미래를 낙관하며, 수철씨와 진아씨는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2년 전, 우연히 서울의 어떤 지역에, 어떤 주택 형태를, 어떤 주거 형태로 살기 시작했느냐에 따라 계층과 인생관이 바뀐 것이다.

이들도 엇갈린 운명이 종잣돈 규모나 부동산 학습 수준, 위험 감수 수준 같은 개인의 능력이나 성향에 달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운’ 때문이라고 믿는다. 돈을 번 명민씨는 “아무리 같은 자본이어도 결국 (매매) 시기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고 결론 내렸고, 수철씨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이 후퇴했다”고 자책한다. ‘인생은 운발’이라는 명제와 함께 이들에게 생긴 교훈이 하나 더 있으니, ‘근로소득으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서울 아파트 투자를 통한 빛나는 ‘성공 신화’와 암담한 ‘실패담’은 직장 동료·친구 사이에서 단골 얘깃거리가 됐고, 젊은 세대의 욕망과 조바심을 자극했다. 올 들어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구입한 연령은 30대였다. 한국감정원 자료를 보면 2019년 1~9월 서울 아파트를 산 매입자 3만8388명 중 30대는 1만876명(28.3%)으로 가장 많았다. 40대(1만744명·28%)와 50대(7459명·19.4%)를 앞섰다. 30대의 강세는 유일하게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나타났다. 전국의 아파트 매매나, 서울의 아파트·단독주택·연립주택 등 전체 주택 매매에선 여전히 40대가 1위를 차지했다. 40대가 서울 강남에 집중하는 사이, 30대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싸지 않은 노원·성북·영등포 등 비강남 지역에 몰두했다. 동시에 송파·강동·성동·마포에서도 30대는 집을 많이 사들였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연령별 매입 통계가 올해부터 공표된 터라 이전 추이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30대 1위’는 이례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직장생활로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결혼하는 30대는 부동산 시장에서 실수요자로 꼽히지만, 투자 경험과 자금이 풍부한 40~50대의 매수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전국 주택 매매 시장에서 30대 비중은 20대와 합쳐도 28.9%로 40~50대(48.7%)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 다만 이준용 한국감정원 시장분석연구부장은 <한겨레21>에 “올해는 지난해보다 거래량이 줄었다. 30대가 이전보다 더 많이 시장에 유입됐는지, 40~50대의 거래가 줄어 30대의 투자 비중이 더 늘어났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서울에서는 아파트 매매가 지난해(9만6622건)의 40% 수준인 3만8388건 성사됐다.

학생이거나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20대에서도 서울 아파트 매수 건수가 늘고 있다. 올 1~4월 한 달 65건씩 아파트를 샀던 20대는 5~9월 평균 167건씩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은 적지만 그만큼 정부의 정책대출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덕분이다. 10월 직장생활 2년차인 마은수(28·가명)씨는 서대문의 25평 아파트를 4억3천만원에 샀다.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싸다는 지역들 중에서 낙점한” 곳이었다. 동생과 사는 월셋집 보증금에 부모님이 보태준 9천만원, 그리고 스스로 모은 4천만원을 더해 1억3천만원을 만들었다. 그보다 2배 많은 3억원은, 연소득 7천만원 이하 무주택자에게 주는 정부 정책대출을 활용했다. “보금자리론 대출이 집값의 40%만 되는 줄 알았는데 (5억원 이하 주택에는) 집값의 70%까지 2%대 초반 금리로 대출이 나온다”며 “남의 집 월세로 60만원이 나가는데, 차라리 내 집을 사서 이자로 55만원씩 내는 게 좋겠다” 싶어 큰 고민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도 부자 되고 싶다’ 실현할 최고 상품

주택시장에서 ‘조연’이었던 20~30대는 왜 수억원씩 빚내며 서울 아파트 시장의 ‘주연’이 되고 있을까. 부모 세대가 그랬듯, 독립한 20~30대가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집 소유는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한다는 의미 이상이다.

2013년 ‘하우스푸어(집이 있으나 대출이자 부담으로 빈곤하게 사는 사람) 사태’로 잠시 위기를 겪었으나 결국엔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린 부모 세대를 보며 ‘부동산 불패 신화’를 배운 20~30대에게 부동산은 주식시장보다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다. 또 불안한 일자리보다 안정적인 소득원이며, 연금보다 나은 노후 대비책이다. 그중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이명박 정부 때를 빼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적 없는 서울 아파트는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해줄 것 같은 최고 상품이다. 2018년 가을 폭등했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정부의 잇단 규제로 올 상반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가 여름부터 일부 지역에서 반등하자, 욕망을 키워온 20~30대가 ‘더 이상 기다리면 다시는 서울에 집을 살 기회는 없다’는 조바심에 부동산 시장으로 뛰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이다)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나온 것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의 특성도 서울 아파트와 맞닿아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의 신축 아파트를 산 김성원(36·가명)씨는 “이왕 빚을 많이 내는 만큼 아이가 잠들기 전 얼굴을 볼 수 있는 직주근접(직장과 가까운 거리의 집), 아이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 최소한 초등학교 인접 아파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헤지(상쇄)할 수 있는 신축 아파트를 원했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도 20~30대를 주연으로 만들었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세금 부담 강화로 40~50대 중심의 다주택자들이 주춤하는 사이, 집값의 40%를 대출받을 수 있는 무주택자인 20~30대의 매수세가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에선 20~30대가 선호하는 국민주택 규모(전용 85㎡ 이하)에 대해서는 100% 가점제로 분양 아파트 당첨자를 뽑는 것도 주요 원인이 됐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짧고 부양가족 수가 적은 20~30대는, 일부 추첨제가 적용되는 대형 평수의 초고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아파트를 분양받을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져, 기존 아파트를 살 수밖에 없다. 직장인 박기수(34·가명)씨는 8·2 대책 직전인 2017년 7월 일부 추첨으로 진행된 서대문구의 25평형 아파트 분양 청약에 도전해 가점 17점으로 당첨된 뒤 4억원가량 잠재적 시세차익을 봤으나, 이젠 박기수씨 같은 20~30대가 나오기 어렵다.

일단 매매시장에 뛰어든 20~30대는 공격적이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투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밀레니얼 이코노미>의 저자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한다. “50~60대는 노후가 걸린 은퇴자금으로 ‘지르는’ 투자 대신 가치투자(저평가된 상품을 싼 가격에 사서 적정 가격에 되파는 방식)를 한다. 반면 20~30대는 시장을 주도하고 가격이 오르는 좋은 자산을 사는 모멘텀 투자를 하고 있다.”

주택 소유 놓고 세대 내 불평등 심화

이런 투자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이준용 시장분석연구부장은 2019년 가을의 상승장에서 2006년 참여정부의 폭등장을 본다. 노련한 40~50대가 올려놓은 가격의 정점에 20~30대가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집을 샀다가 가난해지는 ‘하우스푸어’가 된 것처럼, 지금도 “30대가 부동산 (과열의) 끝에 가서 마무리를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 부장은 분석한다. 다만 2006년과 금융환경이 달라, 당장 20~30대가 부동산 가격 조정으로 하우스푸어가 될 가능성이 크게 높지 않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가격의 조정이 나타났던 2007~2009년은 경기도 나빴지만 금리도 급등해 (집주인들이) 이자 부담을 못 견뎌 집을 던진 것”이라며 “현재 금리가 너무 낮고 당분간은 오르기 어려워 20~30대가 이자를 내면서 버티지 싼값에 집을 던질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20~30대 내 자산 격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 아파트 매매 가격은 1.09% 떨어졌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11.59% 급등했다. 그중 강남 아파트는 14.78%나 올랐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상승폭은 작거나 비슷하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더 올라 ‘체감 가격’은 훨씬 크다. 집값이 전국 동시다발로 오르며 도처에서 거품이 끼었던 참여정부 때와 달리 이번엔 서울 강남 4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당(3.3㎡) 매매 가격은 2735만원으로, 25평 아파트 기준 6억8300만원이다. 집값의 40%를 대출받더라도 4억원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갭투자’에는 대출이 한 푼도 안 나온다. 부모의 자산을 물려받은 금수저·은수저이든지, 부모 덕에 교육을 잘 받아 매달 수십~수백만원의 대출이자를 갚을 능력이 있는 고소득 전문직이나 대기업 정규직이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직장인 권초희(34·가명)씨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강남 대치동이나 반포동은 못 들어가지만 그다음으로 좋은” 송파구에 있는 14억원짜리 25평 아파트에 갭투자를 했다. 그는 현재 결혼 당시 양쪽 부모가 마련해준 4억2천만원짜리 아파트 전세에 산다. 매매대금 14억원 중 전세금 8억3천만원을 빼고 남은 5억7천만원 중 3억원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나머지는 신용대출을 썼다. 전문직인 남편의 소득과 초희씨의 소득을 합쳐 한 달에 1천만원으로 최대한 빨리 대출을 갚고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 4~5년 뒤 송파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다.

서울 아파트 가격만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가 이어질 경우 넉넉한 부모와 안정된 직장을 가진 상위 10%의 20~30대에게 부의 쏠림이 가속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국 주택 소유 통계(통계청)를 보면 20~30대 1444만 명 중 10.7%(155만 명)가 아파트를 소유했다. 이 구조에선 20~30대 안에서 ‘부모 자산 불평등→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계급사회>를 쓴 손낙구씨는 “한쪽에선 부모님 도움과 맞벌이 고소득으로 집을 사지만 반대쪽에서는 갈수록 취업 자체가 어렵거나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장을 얻기 어려워 집을 소유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며 “20~30대 안에서도 주택 소유 여부를 놓고 세대 내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값은 무조건 안정시킨다’는 신호

20~30대와 모든 세대의 불평등을 막기 위해, 부동산에 잠긴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1500조원대 가계부채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부동산공화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정부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대출 규제와 세금 부과로 수요를 억제하고, 3기 신도시 등 공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30대가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지 않아도 인생이 망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지 않게 근본 처방으로 집값을 안정화하고, 그에 앞서 집값은 무조건 안정시킨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서연희(36·가명)씨는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초이노믹스’(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의 조언을 흘려들은 것이 지금도 못내 후회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건축 호재가 있는 목동 20평 아파트를 사서 2년 만에 4억원 가까이 자산이 불어났지만, 그보다 2년 먼저 샀다면 1억원 이상 더 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젠 정부가 집 사라고 하면 말을 잘 들을 거다. (둘 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지만) 남편과 다음 선거에선 재건축이 되도록 보수 정당에 투표하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아파트 한 채로 많은 것이 바뀐 느낌이다.” 이들에게 가족의 인생이, 미래가 아파트에 달려 있지 않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그나마 성공적” 대 “핀셋의 한계”

국토교통부가 재건축 사업지가 모여 있는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와 ‘마용성영’(마포·용산·성동·영등포구)을 중심으로 27개 동을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으로 11월6일 지정했다. 민간택지에 짓는 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도입은 정부의 마지막 규제 카드로 인식돼왔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원칙 아래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포함해 주택 정책을 12차례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각자 기준에 따라 정부가 지금까지 12~17번 발표했다고 보도하지만, 국토교통부는 2017년 6·19 대책부터 올해 8·12 대책까지 공식적으로 12번의 주택 대책이 있었다고 말한다. 핵심은 2017년 8·2 대책과 2018년 9·13 대책이다. 8·2 대책으로 5년여 만에 투기과열지역·투기지역 지정 부활, 청약 가점제 확대, 대출 대상과 한도 축소, 양도소득세 강화가 이뤄졌고, 9·13 대책으로 종합부동산세 강화, 실거주 목적 외의 대출 금지가 실시됐다. 동시에 2017년 11·29 대책(공공·공적임대주택 100만 가구 공급)과 2018년 9·21 대책(3기 새도시)으로 공급 확대도 꾀했다.

집권 초기 “부동산 대책을 일기 쓰듯 발표하지 않겠다”며 시장을 뒤쫓아가는 정책을 지양했던 문재인 정부가 결국 2~3개월에 한 번꼴로 대책을 내놓은 것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 주택 가격은 1.31% 올랐지만, 서울 아파트는 11.08% 폭등했다. 경기 과천·분당·광명·구리처럼 교통망 확충 등 호재가 있는 일부 수도권도 13~18%씩 상승했다. 저금리 기조로 시중에 많이 풀려 있는 돈이 정부 규제 발표로 불확실성이 하나씩 제거될 때마다 계단식으로 집값을 밀어올렸다. 여기에 정부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로 서울 시내 공급이 줄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개인의 욕망도 편승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이런 구조적 한계를 고려하면, 지난 2년6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가 “초기부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어떻게든 집값 폭등만은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평가한다. 이준용 한국감정원 시장분석연구부장도 “일부 지역, 일부 단지에서 이 정도 수준까지만 과열이 나타나는 것도 8·2와 9·13 대책으로 가수요나 투자수요가 과도하게 유입되는 것은 막은 결과”라고 평가한다. 구체적인 성과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유명무실화한 종합부동산세,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활, 2천만원 이하 임대소득세에도 과세 적용, 보증금 없는 공공임대주택 도입, 주거급여 부양의무기준 폐지 등을 꼽았다.

그러나 이번에 분양가 상한제를 서울 27개 동에만 적용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과열 뒤 ‘핀셋 규제’로 대응하는 틀에 대해선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를 쓴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때 부동산 시장 구조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가 정권을 잃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해서인지,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개혁 대상이 아니라 적당히 관리하면 되는 시장으로 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하며 부동산 정책을 설계한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부동산 시장에는 묵직한 망치가 필요하지, 핀셋으로 두드리면 못은 절대 안 들어간다”며 “(정권 후반기에는) 가장 부작용이 없고 확실한 처방인 보유세 강화라는 정공법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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