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학교장의 권한위임과 교사의 자발성 / 김장균
김장균
서울신은초등학교 교장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자치단체의 교육감 선거에 대거 당선되면서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학교혁신 운동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과연 학교는 혁신됐는가? 학교 운영의 질적 변화 없이 명칭만 혁신학교로 불리는 속칭 ‘무늬만 혁신학교’라는 비아냥거림이 일부 들리기도 하지만,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 현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혁신학교 운동의 큰 성과다. 혁신학교는 크게 세가지 영역에서 학교 현장의 변화를 추구한다. 학교문화의 혁신, 교육과정 및 수업 혁신, 교원학습공동체 활성화다.
혁신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나름대로 변화를 고민해온 나는 권위주의적인 학교에서 공동체가 함께하는 민주적인 학교로, 교사 중심의 수업에서 학생 참여와 협력의 배움이 있는 수업으로, 획일화된 교육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 가는 현실에서 혁신학교가 본래 지향했던 목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사항이 전제돼야만 혁신학교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학교장의 대폭적 권한위임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됐던 권한을 여러 사람에게 분산하고, 교육과정을 비롯한 학교 운영의 전반 사항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구성원들과 협의·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을 통한 정보의 공유와 참여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이를 ‘군림하는 권위’가 아닌 ‘공유하는 권위’라고 말한다. ‘갑질’과 ‘꼰대질’로 대변되는 수직적 권위문화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부모와 자식, 학교장과 교직원, 경영자와 사원 간에 소통 단절의 원인이 되고 양자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수평적 리더십을 요구한다. 권한을 분산하고 위임을 확대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제도화돼야 한다.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은 조직의 발전을 위해 더욱 높은 책임감을 느끼고 직위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위임받은 권한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조직은 발전할 수 없고 퇴보만이 있을 뿐이다.
둘째는 교사의 자발성이다. 권한의 위임이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한다고 하는 것은 곧 교사들이 학생 교육 활동과 생활지도, 전문성 신장을 위한 자기 연찬 그리고 공동체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의미다. 대부분 혁신학교는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교육지원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담임교사들은 흔히 잡무라고 하는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오직 교과지도와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학년 단위의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 교육과정을 흥미롭게 재구성하고 생활지도 방법을 공유하며 그 결과를 학생 교육에 반영한다. 학년 단위의 작은 학교를 지향하는 것이다. 또 학교 현안문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지성을 통한 문제해결 및 의사결정 과정에도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따라서 혁신학교 교사들은 정규 교과 시간이 끝나도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말한다.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고. 이 한마디를 통해 나는 선생님들을 더 크게 신뢰하게 됐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나를 희생하고 공동체를 위해 양보와 배려심을 발휘하며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조직이 활성화되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 활동에 만족해하며 교사들은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혁신학교가 지향하는 학교일 것이다.
학교장의 대폭적 권한위임과 교사들의 자발성, 이 두 관계는 톱니바퀴처럼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 학교장은 교사들을 신뢰하는 가운데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교사들은 자발성을 발휘해 학교 교육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혁신학교뿐 아니라 모든 학교의 혁신을 위한 성공의 조건이다.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