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연습생 출신이 본 '프듀X 사태'

이유진 기자 입력 2019. 11. 6. 21:52 수정 2019. 11. 6. 23: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오디션 프로는 잘못된 환상”
ㆍ“불공정한 현실의 압축판”
ㆍ“입시비리와 다르지 않아”

케이블 채널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이 제작진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번 사태로 화려한 성취 너머 묵과됐던 K팝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공정성 결여와 인권 감수성 부재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엠넷 제공

<프로듀스 101> 시리즈, <아이돌 학교> 등 엠넷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동안 연예기획사들이 극비로 감춰왔던 ‘아이돌 연습생’을 상품화시키며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화려한 아이돌 산업 이면에 가려진 연습생들의 실태를 조명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프로듀스 X 101> 조작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아이돌 연습생 출신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대형 기획사부터 중형 기획사까지 각각 8년, 4년, 3년, 2년 연습생 생활을 했다. 이들 중 가수 데뷔에 성공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명은 가수와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었고, 1명은 무직 상태였다.

<프로듀스 101 시즌1>이 처음 방송된 2016년 이후 아이돌 연습생은 방송사와 일부 기획사의 배를 불리는 데만 이용됐을 뿐, 그들의 실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한 아이돌 연습생은 “<프로듀스 101>은 잘못된 환상이다. 데뷔에 실패한 수많은 연습생들이 어떤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이돌 연습생은 “오히려 경쟁은 더 심해졌다. <프로듀스 X 101> 사태는 불공정한 현실의 압축판”이라고 전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아이돌그룹이 K팝 시장에서 큰 활약을 하면서 아이돌 산업의 쏠림현상은 더 심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대중문화예술종합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연예기획사 수는 2017년 2025개에서 2019년 2916개로 증가했다. 서울에만 2555개의 연예기획사가 집중돼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한국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 보고서’에 집계된 1952개(2017년 기준) 기획사 중 연습생을 보유한 회사는 13.4%(261개)였으며, 연습생 수는 총 1440명이었다. 이는 2014년 대비해 240명 증가한 것으로, 1440명의 연습생 중 가수 연습생이 1079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형 기획사 2곳을 거치며 총 8년의 연습생 생활을 한 ㄱ씨는 11세 나이에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했다. 그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애들이 너무 딱해서 볼 수가 없었어요.”

연습생 시절 지상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한 그는 “당시에도 점수가 방송에는 다르게 나가서 부모님이 항의한 적이 있다”며 “<아이돌 학교>에 출연한 연습생들이 출연료 10만원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출연료가 있는 게 어디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는 출연료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습생 기간을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한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논란이 되는 입시비리들과 다를 게 없었다. 데뷔가 코앞 같다가도 이상한 일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돈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저희 아버지가 자동차 딜러를 하셨거든요. 기획사 관계자가 어느 날 부모님 매장에 와서 차 가격을 물어보셨대요. 제가 연습생을 관두고 보니 그때 차를 그냥 줬어야 했다고. ‘엄마 아빠가 돈이 없어서 네가 데뷔를 못한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또 다른 대형 기획사 출신인 ㄴ씨(26)는 “<프로듀스 101> 같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히려 현실을 미화했다”고 말한다. 50명 이상 규모의 연습생을 보유한 ㄴ씨 기획사는 한 달에 한 번 ‘월말 평가’를 진행했다. 월말 평가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공통적으로 기획사에서 받았다는 평가 중 하나였다.

ㄴ씨는 “3~4일 준비를 해서 이틀에 걸쳐 심사를 받는다”며 “경쟁을 시키면서 일부러 연습생 사이에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월말 평가에서 저조한 쪽은 방출되는 거다. ‘저 친구를 죽여야 내가 산다’ 이런 강박에 시달릴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연습생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실력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에 더해 등급에 따라 기획사와의 계약 여부도 달랐다.

“ ‘새끼 연습생’이라고 막 들어오거나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친구들은 연습생 계약도 안 해요.”(ㄱ씨) “연습생 준비생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계약서를 안 써요. 몇 개월 하다 연습생 계약서를 쓰면 데뷔반에 들어간다는 암묵적 약속이 생기는 거죠.”(ㄴ씨)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습생이 있는 기획사 중 69.1%가 연습생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나머지는 무계약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기간은 평균 3년2개월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연습생들은 모두 10대 시절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를 제대로 다녔다는 연습생은 한 명도 없었다. 기획사에서 학교로 보낸 ‘공문’ 한 장이면 모든 게 해결됐다.

중형 기획사에서 지난 3월까지 2년간 연습생 생활을 한 ㄷ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올라와 숙소생활을 했다. 숙소 근처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1교시만 마치고 항상 조퇴를 했다. 회사에서 공문을 보내준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중형 기획사 2곳에서 3년의 연습생 기간을 보낸 ㄹ씨 역시 학교는 1교시만 출석하고 주로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ㄱ씨는 기획사 권유로 아예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회사에서 중학생 때 계속해서 자퇴를 권유했다. 중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에 꾸역꾸역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진학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이돌 학교>에 출연한 한 연습생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출연료 10만원을 받고 5개월 내내 24시간 촬영에 시달렸다. 휴대전화를 압수당했고, 생방송 당일까지 단 하루도 합숙소 밖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음식도 섭취하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실제 연습생들의 입을 통해 듣는 기획사의 연습생 관리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 촬영을 위한 카메라 대신 폐쇄회로(CC)TV가 기획사 곳곳에 설치돼 감시하는 것만 달랐다. SNS 활동이나 연애와 같은 사생활은 연습생 스스로 ‘알아서 당연히’ 자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기관리’라는 미명을 앞세워 자행되는 인신 공격이나 외모 비하 발언도 여전했다. ㄱ씨는 “인사가 ‘너 살 빠졌니’였다. ‘안녕하세요’ 하면 ‘오늘 좀 부었다?’ 이런 말이 돌아왔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었다. 나중엔 거식증에 걸려서 먹으면 화장실 가서 손 넣고 구토를 했다. 몸무게가 30㎏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ㄷ씨는 “매일 아침 연습실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몸무게를 재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체중이 늘면 벌점을 줬다”며 “한 친구는 남들보다 조금 통통하다는 이유로 매니저들이 ‘돼지’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들이 속했던 기획사는 중형급 이상에 이름만 들으면 아는 기획사들이었지만, 연습생들이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놓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3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끝내고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은 ㄹ씨는 “회사에 힘들다고 말하는 건 오히려 감점 요소였다”며 “ ‘힘들다’ ‘아프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낙오자가 됐다”고 말한다. ㄱ씨는 “정신과 약을 먹는 친구들이 많았다.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약 먹는 게 ‘멘털 관리’의 전부였다”고 했다.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한 친구는 아직도 공황장애로 힘들어해요. 저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번도 안 봤거든요. 연습생들이 사랑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속으로는 얼마나 힘들까, 현실이랑 너무 다르니까.”(ㄹ씨)

기획사에 종속된 삶을 살았지만 아이돌 데뷔에 실패한 뒤 찾아오는 뒷감당은 오롯이 연습생의 몫이었다. ㄱ씨는 “연습생을 그만두게 된 건 사장님들에 대한 배신감이 제일 컸다. 연습생 계약을 할 때 했던 달콤한 말들에 속았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ㄷ씨는 “연습생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소속사에서 2년간의 식비와 트레이닝 비용을 청구해왔다”며 “1000만원이 넘는 트레이닝 비용을 부모님이 대신 내주셨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님께 그 돈을 갚는 중”이라고 했다.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ㄹ씨는 다시 꿈을 찾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17세면 누구나 공부하고 그렇게 생활하잖아요. 그걸 포기하고 춤과 노래에 시간을 쏟은 건데, 앞으로 못하게 됐다 생각하니까 인생을 다 잃은 느낌…, 할 줄 아는 건 춤이랑 노래밖에 없어요. 나 이제 뭐하지? 그 생각만 들어요.”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