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야단법석] MB보다 조국 동생을 더 고민한 영장판사들
'죽은 권력'이나 일반인은 속전속결 판단
JY·신동빈 등 재벌들 17~19시간 신기록
"여론에 고심 흔적 보이려 고의 지연" 논란
조씨 사례는 지난해 3월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과정과 명확한 대비를 이뤘다. 조씨와 똑같이 심문을 포기하고 서류 심사만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은 심사 당일 저녁 11시6분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자택에서 대기하던 이 전 대통령은 영장 발부 50여 분만인 같은 달 23일 자정께 구속 절차를 밟았다. 조씨와 이 전 대통령 모두 심문 시작 예정시간이 오전 10시30분으로 같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직 대통령보다 현직 법무부 장관 동생에 대한 영장판사의 고민이 3시간17분이나 더 걸렸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영장에 적시된 혐의만 20여 개에 달했던 만큼 검토할 자료도 조씨보다는 월등히 많았다는 게 정설이다.
조 전 장관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 치러진 지난달 31일 조씨의 두 번째 영장 심사에서는 당일 오후 11시36분 바로 영장 발부 결과가 나왔다. 첫 영장 심사 때보다 혐의가 추가되고 조씨 건강이 악화된 데다 조씨가 직접 출석해 6시간이나 심문을 받았음에도 판단 시간은 훨씬 빨랐다. 그 사이 달라진 점은 조씨의 친형인 조 전 장관의 사퇴와 형수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의 구속으로 여론의 추가 기울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최근 정치인·재벌과 관련한 굵직한 권력형 비리 수사·재판이 잇따르면서 법원 영장 판사들의 ‘고무줄 식’ 구속 심사 시간이 비판 대상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 관계자나 재벌 총수들에 대한 영장 판단은 별 이유도 없이 미루다 새벽 시간에 발표하면서 ‘죽은 권력’이나 일반인들에 대해서만 속전속결로 판단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대다수 법조인들은 법적 소신으로만 판단해야 할 영장 판사들이 비판 여론을 의식하며 영장심사 시간을 고의적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조 전 장관 의혹 관련 주변부 인물인 이모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최모 웰스씨앤티 대표(오후 9시8분), 조 전 장관 5촌 조범동씨(오후 10시56분), ‘웅동학원 뒷돈 전달책’ 조모씨(오후 10시5분)와 박모씨(오후 9시4분) 등은 대부분 심문 당일 저녁 시간대 영장 결과를 받았다. 반면 조 전 장관 동생 조모씨(오전 2시23분·첫 영장), 정경심 교수(오전 0시18분) 등 여론 포화를 맞을 수 있는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해선 다음 날이 돼서야 결과가 나왔다. 1심에서 결국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될 정도로 혐의가 무거웠던 현 정부 실세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해서도 영장 판사는 지난해 8월 심문 다음날 오전 0시42분에서야 기각 발표를 했다.
이 같은 경향은 이전 정부 영장 판단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정농단’ 사건 때도 박 전 대통령 탄핵 전까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오전 0시10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전 3시47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전 1시9분·첫 영장) 등 실세 정치인 대다수가 다음 날에야 영장 결과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2017년 3월30일 오전 10시30분에 심문을 시작해 16시간33분 뒤인 다음날 오전 3시3분에 영장이 발부됐다.
최씨 딸 정유라씨 영장 심사도 지금까지 법조계에 회자되는 사례다. 최종적으로 재판에 아예 넘기지도 못했을 정도로 혐의 입증이 안 됐던 정씨에 대해 법원은 다음날 새벽 1시27분까지 고민을 하고 첫 영장을 기각했다. 정권이 교체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된 2017년 6월의 일이었다. 지난해 7월 현직 국회의원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영장을 기각할 때도 결과는 자정을 넘겼다.
사법부 내 내홍이 극심했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때도 영장판사들은 전직 고위법관들에 대한 판단을 쉽게 내지 못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오전 2시3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오전 0시37분·첫 영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오전 1시57분)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 연루자들 대부분이 자정을 넘겨 결과를 받았다.
조 전 장관 동생 조씨의 경우도 두 번째 영장 심사 때는 당일 오후 11시36분 발부 결과를 받았다. 당시 신종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종전 구속 영장 청구 전후의 수사 진행 경과, 추가된 범죄 혐의 및 구속사유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는데, 조씨를 둘러싼 수사 상황 중 첫 영장 청구 때와 달라진 것은 지난 달 14일 조 전 장관이 사퇴하고 같은 달 24일 정 교수가 구속된 것 외엔 사실상 거의 없었다. 첫 영장 기각 때는 조씨의 건강 문제도 거론됐으나 두 번째 심사 때는 조씨가 목 보호대를 하고 휠체어까지 타고 심문을 받았는데도 건강 문제가 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영장 판사들의 종잡을 수 없는 심사 시간 기준엔 대다수 법조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증거인멸, 도주우려, 혐의의 중대성 등 법적 기준만 따졌다고 하기에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됐거나 형평성에 어긋난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비판의 소지가 있는 결론을 새벽 시간에 낼 경우 주요 언론 보도를 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방에서 영장 판사를 한 경험이 있는 재경지법의 한 고위 법관은 “서류 검토와 피의자 인상 확인을 거치면 사실 결론은 이미 나온다”며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거나 자신의 결론이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될 때는 고심했다는 티를 내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결과가 새벽 늦게 나오더라도 영장판사가 10시간 넘게 쉬지 않고 서류를 검토할 가능성은 낮다”며 영장전담법관들이 발표 시간대를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암시했다. .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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