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학교' 거쳐 서울대 간 그들은 행복했을까요

이유진 2019. 11. 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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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이윤석(가명·23)씨는 중학교 시절 내내 토플 학원을 다녔습니다.

윤석씨가 중학교 때 다녔다는 토플 학원을 성훈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윤석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 '영재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연립방정식을 배우고, 중학교 때는 대학에서나 다루는 정수론을 익혔다고 합니다.

윤석씨는 중학교 때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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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2017년 9월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서울 자립형사립고 연합 설명회를 찾은 예비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강사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생 이윤석(가명·23)씨는 중학교 시절 내내 토플 학원을 다녔습니다.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제대로 해 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영어 유치원을 나왔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다녀오기도 한 그한테도 숙제의 수준이 너무 높았던 겁니다. 사실 토플은 영어로 진행하는 대학 강의를 수월하게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측정하는 시험입니다. 그가 중학생 때 부모에게 “토플 학원을 왜 다녀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아들아, 남들보다 뭔가 하나 더 있어야 앞서 나갈 수 있는 거야.” 안녕하세요, 사회정책팀에서 교육 분야를 취재하는 이유진입니다. 최근 윤석씨를 포함해 김성훈(가명·24), 최민영(가명·23)씨 등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외고)를 졸업한 서울대 재학생 4명을 만났습니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이들의 고교 입시 경험을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자사고·외고의 ‘제도화된 특권’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기꺼이 ‘내부고발자’로 나서 ‘입시 특권학교’로 변질된 자사고·외고의 맨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교 등급제 의혹입니다. 대학들이 내신 성적에 대한 평가 등에서 자사고·외고 등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요. 이들은 대체로 고교 등급제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고 털어놨습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논리가 지배하는 사교육 선행학습 실태도 고교 등급제 의혹만큼이나 놀라웠습니다. 윤석씨가 중학교 때 다녔다는 토플 학원을 성훈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들락거렸다고 합니다. 수학이 빠질 수 없죠. 윤석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치동 학원가에서 ‘영재수학’이라는 이름으로 연립방정식을 배우고, 중학교 때는 대학에서나 다루는 정수론을 익혔다고 합니다.

혹독한 입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은 때로는 마음을 다치고 때로는 친구를 잃기도 했습니다. 윤석씨는 중학교 때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어느 날 제일 친한 친구가 기술가정 노트를 빌려달라는 거예요. 제가 싫다고 거절했어요. ‘왜 노력을 안 하고 내 것을 빌려달라고 하냐’면서요. 그때 친구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절 쳐다보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정말 비인간적이었는데 당시 내가 처한 환경이 그랬던 것 같아요.”

학교도 경쟁을 계속 부추겼습니다. 서열과 차별은 자사고·외고 안에서도 공공연히 존재했습니다. 윤석씨가 나온 자사고에서는 학기 말에 전교 200명 가운데 상위 10명을 강당 단상에 세우고 메달과 장학금을 줬는데요, 윤석씨는 “나는 한 번도 단상에 못 올라가서 부모님의 압력이 심했다”고 돌이켰습니다. “사실 나도 충분히 공부를 잘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절 보고 ‘노력을 안 한다’고, ‘쟤는 저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고 자꾸 비교했어요.”

외고 출신 민영씨의 경험도 비슷합니다. 그는 학교에서 내신 5등급 아래는 “버려졌다”고 말했습니다. 전교 100등 안에 드는 학생들한테만 자습실을 쓰게 하고 보충수업을 해줬다는 겁니다. “외고에서 공부를 못하잖아요? 그러면 ‘시민권이 없는 존재’, ‘보이지 않는 사람’이 돼요.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 교육이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학생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대한민국 입시 경쟁에서는 앞줄에 서 있든 뒷줄에 서 있든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입시 특권학교’의 내부고발자로 나선 데에는 이런 경험들이 한몫을 했을 겁니다.

어쩌면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할지 모릅니다. 지금 같은 입시 경쟁이 없어지거나 훨씬 완화되면 되겠죠. 그때까지 중요한 건 자각과 성찰일 겁니다. 자사고·외고-서울대라는 ‘특권 트랙’을 거치고도 입시 경쟁에서 이겼다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 경쟁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들과 같은 ‘내부고발자’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오길, 그래서 공고해 보이기만 하는 ‘특권 트랙’에 거대한 균열을 만들길 기대합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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