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본군 위안부 참상, 홀로그램으로 '영원한 증언'이 되다
[경향신문] 서강대 김주섭 교수팀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시작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 활용, 문답 가능하게
시·공간을 초월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할머니의 증언을 대화형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과 문답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홀로그램 등으로 구현된 할머니에게 인사하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직접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어 교육효과가 크고,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 모습을 영구 보존할 수도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줄어가는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6일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김주섭 교수 연구팀의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약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어디서든 피해 할머니의 증언을 대화 형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기관이 만든 1000여개의 질문에 대한 피해자의 증언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이 일에 자원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었다.
이날부터 촬영된 답변 영상은 인공지능에 의해 분류된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인공지능이 적합한 대답을 찾아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게 하는 원리다. 이 과정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 김 교수팀은 배경 합성에 이용되는 크로마키 기법으로 할머니를 촬영했다. 홀로그램 방식을 이용해 마치 사람들 앞에 할머니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구현하기 위해서다.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는 “피해 사실을 전하겠다”는 할머니의 소망과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학자의 의지가 만나 성사됐다. 경향신문은 아직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이들의 도전을 지켜봤다.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기억의 잔상과 싸우는 할머니를 돕다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야 마음이 좀 놓일 거 같습니다.”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난 이용수 할머니는 “잘 주무셨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연신 “괜찮다”고 말하는 할머니는 올해 91살의 고령이다.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에도 할머니는 “열심히 도와주는 분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소리는 못합니다”며 웃고 있었다.
할머니가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제안을 받은 것은 1년 전이다. “나이가 드니까 몸이 말을 잘 안들어요. 더 늦어서 내가 증언을 못하기 전에 이런 기회가 오니까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고민도 있었다. “앞으로 내가 없어도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될 텐데 괜히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저런 고민에 지쳐 보이는 할머니를 위해 김 교수는 촬영 시작에 앞서 ‘대화형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1년 전 준비단계에서 촬영했던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활용해 구동한 것이다. 할머니는 디스플레이 속에서 움직이는 또 다른 자신에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디스플레이 속 할머니는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외친 게 있습니다. 진상 규명하고, 공식적 사죄하고, 법적인 배상을 하라 이겁니다”라고 답했다. 이를 본 할머니는 “맞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디스플레이 속 할머니는 “안녕히 가세요. 사랑합니다”라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똑같이 하트를 만든 할머니는 “아이고 너무 신기하네. 내가 여기 있는데 용수가 저기도 있네”라며 아이처럼 웃었다. 체험을 끝내고 촬영을 위해 이동하는 할머니는 “용수를 만나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힘내서 증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날부터 나흘간 1000여개의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질문은 할머니의 유년시절, 가족, 당시의 사회 분위기부터 위안소에서의 생활 등도 포함돼 있다.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들이 총망라됐다. 화법에 따라 같은 내용의 질문도 다양한 방식으로 물어볼 수 있어 비슷한 답변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질문들 중에는 얼굴을 맞대고 물어보기 힘든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위안소에서 겪었던 일들에 관한 것이다. 할머니 역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옛날 그때로 돌아가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밤에 알 수 없이 서러워 울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도 고통스러운 질문은 어김없이 던져졌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할머니는 “그걸 말로 다 하려고 하면 힘들지만...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군인 방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라며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면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습니다”라고 했다. ‘어떤 생각을 하며 힘든 시간을 버텼나’라는 질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다만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답변을 듣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다행인 점은 이 프로젝트가 활성화되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거나 괴로운 날들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가 “앞으로 할머니가 직접 괴로운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자 할머니는 “제발...”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는 피해 증언 후 할머니 홀로 고통스러운 기억의 잔상들과 싸워야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줄어드는 피해 생존자 숫자만 세고 있는 현실
사실,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의 발상이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다. 이미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실제로 김 교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대화형 콘텐츠로 만든 미국 USC Shoah Foundation의 ‘NDT(New Dimensions in Testimony)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질문 구성이나 제작과 관련해 이 단체의 조언을 받고 있기도 하다.
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기록하는 활동을 돕고 있지만 국내 여건은 녹록지 않다. 김 교수의 구상을 실현하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도 국내 어디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NDT 프로젝트’에 제작 의뢰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역사가 외국인들 손에 다뤄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결국, 김 교수팀은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지만 제작에 필요한 자금은 국내에서 구하지 못했다. 미국 시민단체 ‘위안부행동’(대표 김현정) 등의 도움을 받아 미국 내 한 독지가의 지원을 받았다. 프로젝트를 끝낸 뒤 전시나 교육에 필요한 재원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이익 목적으로 제작한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디스플레이기와 컴퓨터, 마이크만 있으면 쉽게 구동할 수 있다”면서도 “이를 알릴 수단은 아직 없다”고 했다.
정부와 언론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줄어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숫자를 세고 있다. 하지만 증언을 보존하고 활용할 방안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지금처럼 역사를 생생하게 교육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다. 이러한 고민은 전적으로 뜻있는 개인의 희생에만 의존하고 있다.
김 교수는 “더 많은 할머니들의 기억을 콘텐츠화 하고 싶지만 이제 장시간 증언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이 거의 안 계신다”며 “한 두 분 정도만이라도 더 콘텐츠화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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