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 커지는 반발.."잠자는 고3 교실 재현될 것"
[경향신문] ㆍ교육계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반대하는 이유는
ㆍ대입 중심의 고교 교육, 주요대학에 ‘한정’해도 파장
ㆍ고교학점제 안착 못하고 수능 위주로 돌아갈 가능성
ㆍ문 정부 ‘서열화 해소’ 교육정책과 충돌·일관성 없어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비율 상향 조정 발언 이후, ‘잠자는 교실’이 재현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수도권 주요 대학’에 한정해 올릴 것이라고 했지만 이들 대학이 전체 고교 교육과정에서 지닌 파급력을 생각하면 공교육에 미치는 타격이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우려다.
무엇보다 정부의 교육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2025학년도부터 고교서열화를 폐지하고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겠다면서 그보다 3년 앞선 2022학년도부터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정책의 충돌이라는 지적이다.
■ 정시 확대, 수도권 주요 대학에 한정해도 공교육 타격 커
문 대통령은 정시전형 비율을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한정해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는 그 여파가 고등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클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전히 고등학교에는 소위 ‘명문대’에 많이 보내야 한다는 압박이 크기 때문에 이들 대학의 입학전형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상위권 학생 학부모들이 (토론식 수업 등보다) 수능 중심의 교육과정을 짜달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근 전국진로진학교사협의회 회장은 “정시 비율을 40%까지 확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매년 10%가량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되는 인원까지 고려하면 결국에는 50%를 정시로 뽑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시뿐 아니라 수시에도 수능 최저등급 기준이 있으니, 정시 비율 50%에다 최저등급까지 생각하면 수능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정시 확대가 공교육 파행으로 이어질 것을 가장 크게 걱정한다. 임병욱 서울 인창고 교장은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잠자는 교실’ 같은 교실 붕괴 현상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며 “앞으로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을 깨우면 학생들이 ‘저 그 과목 수능 안 봐요’라고 하는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방과후수업도 진로 적합성에 맞는 수업을 많이 했는데, 당장 이번 겨울방학부터 수능 중심 수업을 더 해달라는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정한 정시? 교육특권 못 끊어
문 대통령은 ‘교육특권’ 대물림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정시 비율 확대를 내놓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능 위주의 정시전형이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더 많은 서울, 상류층에게 더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김진훈 좋은교사운동 진학연구회 교사는 “특권 대물림 확대를 막기 위해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논리는 정말 모순”이라며 “당장 강남권 부동산업체들이 정시 확대를 홍보 문구에 활용하고 있고 지난주 대통령의 정시 발언 이후 사교육업체 주식이 올랐다”고 지적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16~2018학년도 서울대 정시 입학생 중 사교육 밀집지역인 서울 강남 3구와 양천구 학생이 24.5%를 차지한다. 보고서는 “강남구에서만 지난 3년간 347명이 서울대에 정시로 입학한 반면 4대 광역시 합격생은 모두 합해도 325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훈 교사는 “사실 반복적 문제풀이에 최적화된 것은 학원과 인터넷 강의”라며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사교육 수요가 자기소개서 상담 등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수능 사교육은 항시적이고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교육비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교육정책에 일관성 부재”
가장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이 일관된 신호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곡된 교육열 속에서는 정시든 수시든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교육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며 부작용을 보완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도입하고 고교서열화를 폐지하겠다고 하면서 2022학년도부터 다시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등 교육정책들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다양한 선택과목을 이수하고 학점을 다 채우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이다. 하지만 고교학점제가 도입돼도 동시에 수능이 확대되면, 학생들은 입시에 대비해 다양한 과목보다는 수능 과목 위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은 “교사들이 고교학점제 수업을 하려 해도 학부모와 학생들이 수능 위주의 수업을 요구할 것”이라며 “과거의 주입식 교육으로 완벽하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 확대가 특목고·자사고에 대한 수요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현재의 정시는 수능 100% 전형이 많기 때문에 내신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8학년도 서울대 입학전형에서 정시 합격자 10명 이상을 배출해낸 고교 유형을 보면, 전체 학생 수의 7.8%에 불과한 자율고가 8곳으로, 전체 학생 수 72.5%를 차지하는 일반고(7곳)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 김성천 교수는 “정시 비율을 확대하면서 고교서열화를 해소한다는 것은 교육철학의 충돌”이라면서 “정시 확대는 결국 학생들을 줄세우기 한다는 것이고 이는 대학서열화를 더욱 공고화한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김진훈 교사는 “고교서열화 해소를 왜 2025학년도까지 미루었는가 의구심이 든다”며 “2022년 대선 이후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도 모르는데,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그때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50여개 교육단체는 28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정부의 정시 확대 발표를 비판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연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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