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통증 주사]③ 주사 맞고 숨진 아내..몸에선 '살 파먹는 세균' 나와
■ 아빠의 저녁상, 엄마의 마지막 생일파티
속초의 한 가정집 부엌에서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달구지도 않은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수저로 밥솥에서 밥을 푼다. 부엌일에 영 서툰 아빠의 모습이다. 반찬거리가 있나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마땅한 게 없다. 고기 한 접시와 김치 등이 전부인 단출한 밥상 앞에 아빠는 두 아이와 함께 앉았다.
큰아들이 몇 숟가락 뜨자 밥이 왜 이렇게 딱딱하냐고 묻는다. 아빠가 밥을 하니까 딱딱하다고 덧붙인다. 별 뜻 없이 한 얘기지만, 아빠는 괜스레 미안하다. 두 아이에게는 엄마의 빈자리가, 남편에게는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저녁상이다.
두 아이가 잠든 밤, 안방에는 아빠 혼자다. 아빠는 휴대전화에 담아둔 엄마의 마지막 생일파티 영상을 본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부르고, 두 아이는 엄마에게 고마움을 담아 얘기한다. 아내의 마지막 생일은 2018년 9월 11일, 아내가 숨지기 두 달 전이었다.
■ "미끄러졌을 뿐인데"…주사 맞고 숨진 아내
아내는 지난해 12월 초 집안일을 하다 욕실에서 미끄러졌다. 왼쪽 종아리 근육이 놀란 정도였다. 아내는 12월 4일 속초의 한 마취통증의학과 의원을 찾았고, 해당 의원에서 이른바 '통증 주사'라고 불리는 '신경차단술' 시술을 받았다.
'신경차단술'은 통증을 느끼는 신경 주위에 약물을 주입해 염증을 씻어내고, 짧은 기간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을 가라앉힌다. 해당 의원은 염증을 씻어내는 데 스테로이드인 트리암시놀론을 사용했고, 마취제로 리도카인, 그리고 생리식염수를 섞었다.
저녁 때쯤 아내의 무릎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틀 정도 기다렸지만, 부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내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며칠을 앓았다. 12월 7일 새벽이 되자 아내의 말은 점점 어눌해졌고 숨은 가빠졌다.
남편은 새벽 네다섯 시쯤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두 군데 병원을 들렀지만, 아내의 상태는 손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수축기 혈압은 정상인 120(mmHg)의 절반밖에 안 되는 60이었다. 호흡곤란으로 몸속에 산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피부가 퍼렇게 뜨는 청색증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종합병원에서 의사는 남편을 따로 불렀다.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가족들을 불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뒤 아내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생을 마감했다.
■ 범인은 '살 파먹는 세균'
의사는 가족들이 모인 뒤 아내의 사인을 설명했다. 허벅지에서 '괴사성 근막염'이 시작돼 배 아래쪽까지 타고 올라갔다고 말했다. 또, 괴사성 근막염을 일으킨 세균이 혈관으로 많이 들어갔고, 모든 장기를 돈 상태여서 장기도 상태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패혈증'이었다. 괴사성 근막염과 패혈증을 일으킨 원인균도 알려줬다. 화농성 연쇄상구균이라고도 불리는 '고름사슬알균'이었다.
'고름사슬알균(Streptococcus pyogenes)'은 고름(pyo)을 생성(genes)하는 동그란 알균(coccus)이 사슬(streptos)처럼 이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피부농양의 원인균이지만, 일반인에게 흔히 무증상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균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뚫고 들어올 때다. 고름사슬알균은 우리 몸 속에서 독소를 뿜어 세포를 파괴한다. 초기 증상은 감염 부위에 열이 나고, 붓고, 붉은 반점이 생기는 봉와직염(연조직염, cellulitis)을 일으킨다. 적절히 치료하지 못하면 살이 썩는 괴사성 근막염으로 발전한다. 이 때문에 '살 파먹는 세균(flesh-eating bacteria)'으로도 불린다. 잠복기는 1~3일로 짧고, 심한 경우 독성쇼크증후군으로 급사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 보건소·경찰·의료중재원…"해당 의원, 무균 조제 원칙 안 지켰다"
아내는 사망 당시 30대 후반으로 고령도 아니었고, 음주와 흡연을 하지도 않았다. 당뇨와 고혈압 등 과거력도 없었다. 통증의학과에서 신경차단술을 받기 전 진료기록은 이비인후과에서 인두염과 비염 치료를 받은 게 전부였다. 남편은 의료사고를 의심하며 의사를 고소했다. 이에 보건소는 올해 1월 중순, 경찰은 2월 초에 해당 의원을 대상으로 각각 현장조사, 압수수색을 했다.
보건소 현장조사 결과는 해당 의원이 무균 조제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해당 의원의 간호조무사는 아침에 출근해 신경차단술에 사용할 통증 주사를 미리 혼합 조제했고, "리도카인의 경우 주사기 바늘만 바꿔서 4명에게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해당 의원의 감염 관리가 허술했던 점은 경찰 수사에서도 확인됐다. 경찰은 남편에게 해당 의원이 "약품을 미리 혼합해서 보관하고 있다가 환자에게 투약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의원의 과실과 환자의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약칭 의료중재원) 감정 결과를 보고 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착수 6달 만이다.
■ '의료 관련 감염'에 취약한 믹스 주사와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가 숨진 환자에게 시술한 '신경차단술'은 '신경치료술'이라고도 불리며 국민 10명 중 1명꼴로 시술받는 '국민 통증 치료술'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579만 명이 2,775만 회 시술받았다. 진료금액은 1조 원이 넘지만, 시술 건수로 나눠보면 회당 3만7천 원 수준이다. 다른 시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과가 좋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신경차단술을 즐겨 찾는다.
문제는 조제 과정이다. 신경차단술에 쓰는 주사는 소염진통제와 국소마취제에 생리식염수 등을 섞는 이른바 '믹스 주사'다. 이때 무균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감염관리에 실패하면 '병원 내 감염'으로도 불리는 '의료 관련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의료기관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가진 환자가 수시로 드나들고,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 서울 양천구 D의원, 2016년 강원도 원주시 H의원, 2017년 서울 서초구 P의원 등은 주사나 수액 혼합과정에서 감염관리에 실패해 대규모 '의료 관련 감염사고'를 일으켰다.
신경차단술 시술의 75%는 의원급에서 이뤄진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병원급 이상과 달리 감염관리실이나 감염전문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감염관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장만 눈 감으면 관행과 효율성을 이유로 미리 혼합주사액을 조제하거나 일회용 주사용품을 재사용하는 등 불결한 환경에서 조제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전남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간호조무사는 취재진에게 일부 의원의 감염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직접 찍은 사진을 보내며 증언까지 했다.
"신경차단술 주사는 원장님이 몇 대 몇으로 섞어서 쓰잖아요. 섞어서 만들어 놔라 얘기해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10개, 20개 해서 놔두고, 남은 건 그다음 날까지 쓰고 했는데, 실제로 한 분이 염증이 생겨서 왔어요."
"라이넥(태반주사)도 섞고, 마늘주사도 섞고, 그러면 그거 섞을 때마다 10개, 100개씩 계속 시린지(주사기) 써야 하잖아요. 같은 주사니 같은 액을 섞으니까 계속 그 주사 하나로 계속 그걸 뽑아 다시 수액에 뽑아 넣고 혼합을 한다고요."
-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조무사의 증언
■ 의사의 반론…'무균 조제했고, 환자 사망과 의료행위 관련 없다'
속초 사건의 당사자인 남편과 의사는 의료중재원에서 만났다. 아내의 사망으로 조정절차가 자동개시됐기 때문이다. 의사는 먼저 답변서를 통해 무균 조제 원칙을 지켰고, 아내의 괴사성 근막염 진행이 너무 빨랐다며 자신의 의료행위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정위원들 앞에 출석했을 때도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했다.
반면, 의료중재원 감정위원들의 판단은 달랐다. 무균 조제 원칙을 지켰다는 주장에 대해 "해당 시술 시 무균적 조작의 미흡함이 괴사성 근막염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감정했다. 또한, 괴사성 근막염 진행이 너무 빨랐다는 주장에 대해 "괴사성 근막염이 급성 질환으로서 빠른 전파속도, 전격성 경과 등을 나타내는 질병임을 고려하면, 이 사건 시술 당시 괴사성 근막염이 발병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와 같은 감정 결과를 받은 남편은 조정부 위원들 앞에서 합의 의사를 밝혔다. 의사는 감정 결과와 조정 절차에 못마땅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결국 조정 결과를 받아들였다.
취재진은 의사의 입장을 확인하기로 했다. 숨진 환자의 몸속에 직접 혼합액을 주입한 5cc 주사기를 실제로 바늘만 바꾼 뒤 재사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9월 말부터 지금까지 모두 (몇) 차례 전화와 문자,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직접 자택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끝내 의사의 반론을 받지는 못했다. 간호조무사도 수소문했다. 속초에 있는 간호학원 2곳과 간호조무사 카페, 맘 카페를 중심으로 간호조무사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 보건당국이 '작은 사건'으로 치부할 때 발생하는 허점
속초 사건은 집단감염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중요성이 떨어지는 작은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속초 사건은 제도의 허점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가장 큰 허점은 의원급이나 외래환자에 대한 감염 감시가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에 위탁해 운영하는 '전국의료관련감염감시체계(KONIS)'는 대형병원 위주로 구성돼 있다. 전국의 6만 5천여 곳의 병·의원 중에 227곳만 참여하고 있다. 감시 모듈도 중환자실, 수술 부위, 신생아중환자실, 손 위생 정도다.
이러다 보니 중소병원만 돼도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다. 질병관리본부가 중소병원 감염관리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능은 교육 정도에 그친다. 심지어 의원급에 대해서는 보건소의 지도 감독이 사실상 전부인데 해당 의원은 사고가 날 때까지 사전조제나 주사기 재사용이 적발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기존 역학조사 기준의 허점이다. 의료 관련 감염은 수술이나 치료 과정에서 피부라는 1차 방어선을 뚫고, 근육이나 장기, 혈관에 직접 닿는 의료기기를 주된 매개로 한다. 따라서 의료기기의 감염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1명의 피해만 발생하더라도 병원체는 금세 병원 내 다른 환자에게 전파될 수 있다. 2명 이상의 집단감염을 전제로 한 역학조사 기준을 완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속초 사건의 경우, 역학조사가 이뤄졌다면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환자의 몸에서 나온 고름사슬알균을 해당 의원에서 제조한 혼합 주사액이나 사용한 주사기, 가운 등에서 채취한 세균과 유전적으로 일치하는지 분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기준으로는 언론이 대대적으로 떠들지 않는 한 역학조사를 검토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행정처분 지연이다. 속초시보건소는 지난 1월 17일 보건복지부에 해당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했지만, 복지부는 9달 만에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회신했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이미 지난 3월에 폐업해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을 입증할 방법은 의사와 간호조무사의 증언밖에 없다. 복지부가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건을 신속히 돌려보내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 알려줬다면 이런 혼선을 빚지 않았다.
이승철 기자 (bullsey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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