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은 쓴소리하며 불출마, 중진은 조국 방어 앞장서며 재도전..與의 '관습 파괴' 물갈이

손덕호 기자 2019. 10.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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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이철희·표창원, 불출마 선언⋯조국 정국 때 무기력 토로하며 黨 지도부 비판

중진 의원은 조용하거나 '친문 선명성' 내세워 총선 재도전 의사 밝혀

정치권선 "여당의 총선 물갈이 패턴과 다르다"는 말 나와

정당들이 총선을 앞두고 꺼내드는 필승 전략 중 하나가 인적 쇄신이다. 현역 의원들이 스스로 불출마를 선택하는 등 용퇴하거나 공천권을 쥔 쪽이 인위적으로 현역 의원들을 쳐내고 그 자리에 새 인물을 수혈하는 이른바 '현역 물갈이'다. 6개월도 남지 않은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보다 인적 쇄신에서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에서는 통상 다선(多選) 중진 의원들이 용퇴하던 과거 관행과 달리 초선 의원들이 불출마를 잇따라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조국 전 법무장관 정국 때 당 지도부 보인 리더십에 대해 공개적으로 쏜소리를 내놓았다. 반면 중진 의원들은 잠잠하다. 오히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적극 방어에 나서는 등 '친문(親文)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물갈이 흐름이 기존 정치 관습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지난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심경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선 2명 불출마…'쓴 소리'도 초선 몫

민주당에서는 이달 들어서만 현역 의원 2명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표창원(경기 용인정) 의원은 지난 24일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에 책임을 지겠다"며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지역구 현역 의원으로는 첫 불출마 선언이었다. 경찰대 교수 출신으로 프로파일러로 활동하던 표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로 있던 2015년 '인재 영입 1호'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런 그가 4년만에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최근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서도 무척 괴로웠다"고 했다. "그 동안 공정과 정의를 주장하고 상대(야당)의 불의에 대해 공격했는데, 우리에게 야기된 공정성 시비가 내로남불로 비치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을 맡았던 법제사법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법사위는 지옥 같았다"고도 했다.

표 의원에 앞서 비례대표 초선인 이철희 의원은 지난 15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입장문에서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새 저도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이 의원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선 당 지도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25일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조국 정국 이후 당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고 있다"며 "이렇게 민주당이 무기력해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해찬 당대표에게 있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 처음으로 '이해찬 책임론'을 공개 제기한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한겨레 인터뷰에선 "당이 노쇠하고 낡았다"며 "조국 정국을 거치면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당이 대통령 뒤에 숨는 것이다. 너무 비겁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연합뉴스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민주당 초선 의원들도 조 전 장관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 지도부가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놓으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조응천(경기 남양주갑) 의원은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조국 사태로 인해 많은 의원이 괴로워했고 지옥을 맛봤다"며 "(당 지도부가 현 정국을) 너무 '핑크빛'으로만 본다"고 했다. 조 의원도 원래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근무했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총선 때 영입한 인물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 과정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나타냈던 금태섭(서울 강서갑)·김해영(부산 연제)·박용진(서울 강북을) 의원도 초선들이다. 또 초선 비례대표 의원 중 김성수·제윤경·최운열 의원 등도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진은 조국 적극 방어하며 존재감 부각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며 불출마를 선언하는 사이 다선 중진들 사이에서 용퇴론은 잦아든 분위기다. 지난 9월 5선의 원혜영(경기 부천오정) 의원이 불출마를 고민 중이란 말이 흘러나왔지만 이후 실제 불출마 의사를 밝힌 중진 의원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일부 중진 의원들은 초선 의원들의 쓴소리와 달리 조 전 장관을 강하게 방어하며 출마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석현(오른쪽) 의원이 이인영 원내대표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6선의 이석현 의원(경기 안양동안갑)은 지난 23일 지역구인 경기 안양시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출마 의지는 물론 국회의장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내년 총선에) 당선되면 민주당 내 최다선 의원이 된다"며 "국회의장이 돼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개혁이 완수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싶다"고 했다. '물갈이'와 관련해서는 "마지막 도전으로 정상에 오른 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 지역구에는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인 권미혁 의원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조국 정국에서도 조 전 장관 일가(一家)를 적극 방어에 나섰다. 그는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57)씨가 구속된 지난 24일, 페이스북에서 "변호인단은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라. 특히 정 교수 건강문제에 구체적인 자료 보완이 필요하다"며 "우울하지만 지치지 말고 힘내자"라고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이 사퇴하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밤엔 "'조국 출구전략이니, 사퇴설이니 하는 보도에 놀라 지도부에 진중히 체크해보니 낭설"이라며 "우리는 국민의 촛불만 믿고 조국과 함께 검찰 개혁을 끝까지 갈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5선 중진 이종걸 의원(경기 안양만안) 의원도 조국 정국 때 조 전 장관 지지자들이 주최한 서울 서초동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제가 왜 (과거) 문재인 대통령을 그리(반대)했던가.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그 동안 당내에서 친노·친문 진영과 거리를 뒀던 점을 사과했다. 이어 "목숨을 걸고 문재인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을 뒤흔드는 정치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걸 의원은 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일 "황 대표가 검사 재직 시절 삼성 비자금 사건 리스트에 올랐던 것 기억하느냐. 당시 어떤 조사도 받지 않은 사람은 검사들"이라며 "공수처법은 리스트에 올랐지만 조사도 처벌도 받지 않은 황교안 검사 같은 사람을 조사하는 법"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이종걸(오른쪽 두 번째) 공동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선의 심재권 의원(서울 강동을)도 조국 정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5일 심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 전 장관 딸의 학교생활기록부 유출은 명백히 초중등교육법에 위반된다'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지적했고, 박 장관은 "공개돼서는 안 될 정보들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의학논문 제1저자'와 관련해 "조 전 장관의 딸은 한영외고 시절 영어 작문 성적은 3년간 6~7등급, 독해는 7등급 이하였다"고 밝혀 논란이 되던 시기였다. 심 의원은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통화에서 "의정활동, 지역활동 모두 잘 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에 나선다는 뜻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與 공천, 경선이 원칙⋯親文 당원 표심 잡기가 관건

민주당의 일부 초선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허거나 고민 중인 것과 달리 중진 의원들은 '친문 선명성' 경쟁을 벌이듯 내년 총선 준비에 적극적 배경에는 민주당의 총선 공천룰과 관련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 공천에서 현역 의원에 대해서는 '경선을 통한 공천'을 원칙으로 정했다. 직무수행 평가를 통해 전체 의원 '하위 20%'에게 감점을 주고 정치 신인에게 가산점도 주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리당원을 많이 확보하지 않으면 현역 의원이라고 해서 공천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때문에 다선 중진 의원들이 친문 성향 권리당원 확보를 위해 조국 전 장관 이슈에서 선명성 경쟁을 벌인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 권리당원의 대부분이 친문 성향인데 이들 표심을 확보해야 경선 통과가 유리하다"고 했다.

민주당 내 일부에서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초선 의원들이 불출마하고 친문 색채가 강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총선에 나설 경우 지난 2016년 총선 때 옛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식 공천 흐름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공천을 밀어붙인 박근혜 전 대통령 측과 비주류 출신 당대표였던 김무성 의원 측이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공천 파동이 벌어졌다. 그 결과, 선거 3개월을 앞두고 180석까지 자신했던 새누리당은 122석을 얻어 1당 자리를 민주당(123석)에 내줬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총선은 한국당이 공천 파동을 겪는 사이 민주당이 인적 쇄신에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승부가 갈렸다"고 했다. 지난 총선 당시 현역 의원 교체율이 33.3%였던 민주당은 32.8%였던 새누리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2012년 17대 총선 때는 현역 물갈이 비율이 41.7%였던 새누리당이 37.1%였던 민주당에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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