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40주년]②국내외 문건·증언으로 재구성한 10·26(1)

2019. 10.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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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홍덕화 탐사보도팀 기자 = "어디로 가지? 육본(육군본부), '부'(중앙정보부 남산 분청)?" "육본으로 가시죠."

김재규(53) 중앙정보부장이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한 직후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오며 차량 동승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김재규는 조수석에 탄 수행 비서관 박흥주(39)가 "그렇게 하시죠"라며 정승화(50) 육참총장의 '육본행' 제안을 거들자 그대로 따랐다. 육군본부 계엄군법회의 1심(국선)과 2·3심(사선)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79·홍익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는 "이 한 마디가 김재규의 운명을 갈랐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건 당일 오후 6시 중정 안가에 도착했고 만찬 중이던 7시 45분 김재규의 총격에 즉사했다. 차지철(45) 경호실장은 김재규의 총격을 두 차례나 받고도 숨이 붙어 있었으나 확인사살에 나선 김태원(32)의 M16 소총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원수 살해 사건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보직 변경 신고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서울=연합뉴스) 박정희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정승화 신임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보직변경 신고를 받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는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본사자료)//1979.2.2/(2019.10.25)<저작권자 ⓒ 2005 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용산 미군 헬기장의 갈등

사건 당일 오전 용산 미군 헬기장에서는 김재규와 차지철 경호실장이 갈등했다.

박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 행사와 보안시설 개소식 참석을 위해 헬기장에서 '1호 헬기'에 오른 뒤, 김재규가 1호 헬기에 동승하려 하자 차지철 경호실장이 제지하며 "2호기로 오라"고 했다.

10·26 사건 때 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장(육군 중장)이었던 김영선(90) 전 국회의원(11·12·13대)은 이 갈등이 저녁까지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2018년 12월 국내 인터넷 매체 미디어파인과 인터뷰에서 "(궁정동) 만찬은 비서실장 김계원(2016년 사망)이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이후 2호 헬기를 타지도 않았고 중정이 관할하는 보안 시설 개소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김계원이 귀경 중 차 실장에게 만찬을 제안하고 박 대통령에게 건의해 '최후의 만찬'이 성사됐다는 게 김영선 전 의원의 전언이다.

오후 4시 헬기 편으로 귀경한 박 대통령은 6시께 김계원, 차지철과 함께 중정이 관할하는 궁정동 안가의 만찬장에 도착했다.

김재규는 부마사태 대응 문제로 대통령에게 질책을 당하자 오후 7시께 만찬장 밖으로 나갔다. 김재규는 만찬장에서 약 50m 떨어진 안가 본관에서 김정섭 중정 제2 차장보와 식사 중이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만찬을 마치고 올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어 2층 집무실에서 권총을 꺼내 호주머니에 숨기고 돌아왔다고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수사전모 발표문은 기록하고 있다.

궁정동 안가의 사건 현장을 약도로 그려 설명하는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10·26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10일 현재 공원으로 변한 궁정동 안가의 사건 현장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만찬을 하며 대기하던 별채(본관) 위치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고 있다.(2019.10.25)

◇ 처절한 사건 현장 긴박했던 3분

대통령의 질책에 차지철의 '훈수'까지 듣고 격분한 김재규는 부하인 박선호와 박흥주를 불러 '거사' 결행을 지시했다. 두 사람은 "(살해 대상이) 각하까지입니까?"라고 물으며 이행 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이들은 실제 현장에 있던 경호원이 4명인데 7명이라고 거짓말까지 하며 '연기'를 건의했으나 여의치 않자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박선호는 절친한 해병대 동기인 정인형 경호처장에게 총을 쏘기 전 "우리 같이 살자"고 소리치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와 차지철, 박종규 등 5·16 쿠데타의 주역들 (서울=연합뉴스)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사진 왼쪽)와 차지철경호실장(사진 앞줄 오른쪽 끝), 박종규 전 경호실장(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등 쿠데타 주역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지지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장면. 고 김천길 AP통신기자의 대표작이다. [문화일보 제공](2019.10.25)

안동일 변호사가 쓴『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에 따르면 만찬장에선 대통령 왼쪽에 앉았던 가수 심민경(24·예명 심수봉)이 '그때 그 사람'에 이어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불렀고, 차지철은 '도라지' 노래로 흥을 돋웠다. 초조한 듯 시계를 들여다보던 김재규는 식당 관리인인 사무관이 들어와 "과장님이 뵙자고 합니다"라고 속삭이자 따라나섰다. 이어 신재순(22)이 심민경의 기타 반주에 맞춰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자 대통령도 따라 불렀고, 이후 심민경이 기타 줄을 조율하던 중 총성이 울렸다. 오후 7시 45분이었다.

김재규는 '이 버러지 같은 놈'이라며 권총을 뽑아 차지철과 대통령에게 각각 한 발씩을 쐈다. 그는 총신이 짧아 휴대하기 좋은 독일산 월터 PPK 권총을 쏘기 전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라는 말도 내뱉었다. 이어 김계원을 툭 치며 "각하를 똑바로 모시세요"라고 힐난했다. 대통령은 가슴 부위에 총탄을 맞고 머리를 식탁 쪽으로 떨구었다가 오른쪽 신재순 씨 쪽으로 쓰러졌다.

김재규 박선호가 사용한 PPK(왼쪽)와 38리볼버(Smith & Wesson)권총의 동종 모델. (서울=연합뉴스) 김재규는 처음 두 발을 PPK로 쏘았으나 고장이 나자 박선호가 사용하던 38리볼버로 차지철 실장과 박 대통령에게 제3, 제4탄을 발사해 절명시켰다. 두 총 모두 총신과 손잡이 부분이 비교적 짧아 휴대하기에 간편한 편이다.(2019.10.25)

합동수사본부의 사건 발표문에 따르면 김재규는 오른쪽 팔목에 관통상을 입고 화장실로 피신하는 차지철을 향해 3번째 탄환을 쏘려 했으나 총신에 탄피가 끼어 방아쇠 작동이 안 됐다. 방 밖으로 나와 박흥주 비서관의 총을 빌리려 했으나 실탄이 없었고, 박선호(45) 의전과장의 38 리볼버(Smith & Wesson) 권총을 가지고 돌아왔다. 차지철은 경호원을 부르며 방문 쪽으로 나오려 했고, 김재규와 마주치자 저항하려다가 복부에 다시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김재규는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 '각하' 머리 쪽으로 1발을 추가로 발사해 절명케 한다.

검찰 신문 기록을 보면 김재규는 첫 총성 후 밖으로 도피한 김계원을 복도에서 만나 "혁명이 끝났으니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시오"라고 마무리를 당부했고, 김계원은 "알았어"라고 답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가 거실 (서울=연합뉴스) 김영규 기자 =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궁정동 안가 내부 거실.1993.3.4 //(2019.10.25) <저작권자 ⓒ 2009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대기실 마루 쪽 문 앞에 있었던 박선호는 첫 총성을 신호로 경호원들을 제압하기로 한 약속에 따라 안재송 경호부처장과 정인형 경호처장에게 선제 사격을 가해 쓰러뜨렸다. 주방에서 식사 중이던 박상범과 김용섭, 또 뒤뜰 쪽으로 나가던 김용태 등 경호관 3명은 박흥주와 이기주(31·중정 경비원), 유성옥(36·중정 운전사) 등이 난사한 15발의 흉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호원 박상범(76)은 4발의 관통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확인 사살을 모면해 목숨을 건졌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정부에서 경호실장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불과 3분 만에 목적을 달성한 김재규는 안가 본관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피 묻은 셔츠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식당으로 뛰어온 그는 정 총장에게 "큰일 났다. 차 타고 가며 얘기하자"라며 그를 전용차에 태웠다. 뒷좌석 좌우에 김정섭과 정 총장을 앉히고 자신은 중간에 앉아 육본 벙커까지 이동했다. 합동수사본부 수사전모 발표문에 담긴 사건 기록이다.

◇'네 시간 천하'로 끝난 김재규의 10ㆍ26

박정희 대통령의 건설부 연두순시 (서울=연합뉴스)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순시차 31일 건설부를 방문해 김재규 건설장관으로부터 업무 보고를 듣고 있다. 1975.1.31(본사자료)/(2019.10.25)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은 최근 연합뉴스 기자에게 당시 김재규가 정승화에게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대통령 서거'를 암시하면서 기밀 유지와 계엄령 선포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전두환 회고록 1 혼돈의 시간』에 기록된 이후 상황은 이렇다.

오후 8시께 육본 벙커에 도착한 김재규는 청와대에 있던 김계원에게 전화를 걸어 최규하 총리를 데리고 오라고 요청했다. 최 총리와 김계원을 필두로 구자춘 내무부 장관, 김치열 법무부 장관, 유혁인 정무 1 수석 비서관 등이 속속 벙커에 도착했다.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각 군 참모총장들까지 모이면서 장소가 비좁아지자 이들은 밤 11시께 국방부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최 총리는 노 장관에게서 대통령 서거 사실을 보고 받은 뒤 김재규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그는 "대통령 유고다. 보안을 유지하고 각의를 열어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어 김재규는 김계원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계엄령을 선포해 계엄사 간판을 군사혁명 위원회로 바꿔 달자며 국무회의 개최를 요구했다. 김계원은 최 총리에게 계엄령 선포를 위한 비상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했고 최 총리가 수락했다.

그런데 국무회의 계엄 선포 의결 절차 진행 중 제동이 걸렸다. 신현확 부총리와 김성진 장관 등이 비상계엄 선포 사유를 밝히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계원은 계엄령을 의결, 선포해 속전속결로 권력을 장악하려던 김재규의 예상이 빗나가자 자신들의 계획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노 장관과 정 총장에게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렸다. 사건 발생 후 4시간가량이 흐른 오후 11시 30분이었다.

duckhwa@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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