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고난서사의 재구성, 여성의 주체성 강조 [만화로 본 세상]
망자의 영혼을 위로해 천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신으로, 최초의 무당이라고도 하는 바리공주는 그간 문학을 비롯한 대중문화에서 여러 차례 다뤄졌다. 김선우의 〈바리공주〉, 황석영의 〈바리데기〉 등에 이어 연극과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려졌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목받고 다시 그려진 것은 바리공주의 고난서사였다.

원전 구비 전승의 결이 다양하지만 그 고난은 다음과 같다. 딸만 여섯이던 오구대왕과 길대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번째 딸 바리공주는 또 딸이 태어난 것에 분노한 오구대왕에게 버림받아 비리공덕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서 자란다. 하지만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이 병들자 저승에서 생명수를 구해 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생명수를 지키는 무장승은 남장을 한 바리공주에게 9년 동안 일해야 한다고 하더니, 9년 뒤 바리공주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자 다시 아들 일곱을 낳아주면 생명수를 주겠다고 한다. 일곱 아들을 낳고서야 생명수를 얻어 부모를 살린 바리공주는 저승을 떠나오며 만났던 영혼들을 인도하기로 결심하고 무조신(巫祖神)으로 거듭나 추앙받는다.
효와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 배치되었던 질곡 깊은 고난서사가 기존 전승의 주요 내용이었기에, 재창작이 이를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웹툰 〈바리공주〉(김나임 작가)는 고난서사가 아닌 결말 이후의 무조신 바리공주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환생하여 이승에서 견습 무당으로 일하는 열다섯 살 바리공주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그녀가 귀신들을 만나 해원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 시도는 두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외부의 요구에 의해 짊어졌던 고난이 아니라 바리공주가 스스로 선택한 일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 여성 서사의 시도로서 뜻깊다. 물론 과거의 바리공주 이야기도 여성에게 부과되는 억압을 폭로하는 인물로 바리공주를 다룸으로써 현실을 고발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난 이후 바리공주가 스스로 원한 일을 하게 되는 순간 이야기는 끝나고 만다. 웹툰 〈바리공주〉가 의미 있는 것은 고난에 대한 고발 그 이후의 삶을 그림으로써 여성에게 피해자, 희생자로서의 위치만이 아닌 주체로서의 위치를 열어준다는 데 있다.
달리 뜻깊은 것은 바리공주가 무당으로 일하며 이미 죽어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말을 들리게 하고 그 억울한 말들이 힘을 발휘하게 한다는 점이다. 견습 무당으로서 그녀가 만나는 귀신들은 대부분 한을 품고 죽은 이들이다. 그 한을 풀지 못하여 구천을 떠돌며 사람들을 해하는 귀신들을 만나 바리공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배경이 조선시대인 만큼 신분 문제, 남존여비 사상의 문제 등이 새겨진 그들의 한 서린 이야기는 바리공주 그 자신의 고난과 잇닿아 있다. 따라서 기존 바리공주 재창작의 현실 폭로를 더 다양한 인물을 통해 폭넓게 이루면서 신격을 지닌 바리공주를 경유해 문제의 해결까지 도모하게 한다. 무엇이 피해자를 아프게 했던 것인지 명확히 짚어내고, 한을 품게 만든 가해자들이 잘못을 책임지게 한다. 이는 한풀이, 해원의 진짜 의미를 상상적으로 그려내 보여준다.
효를 숭상하고 여성으로서의 희생을 칭송했던 원전이 고난서사를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 재구성되고, 웹툰 〈바리공주〉에 이르러 다시금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텍스트로 재탄생했다. 이런 흐름에 흥미를 느낀다면 〈심청전〉을 변용한 〈그녀의 심청〉(seri·비완 작·저스툰코미코)도 추천한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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