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아이, 친자식일까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9. 10.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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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남편의 무정자증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정자를 인공수정해 태어난 자녀를 남편의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오늘(23일) 결론을 내린다. 이 판결에 따라 기존 대법원 판례가 36년만에 변경될 가능성이 생겼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A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 사건의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부인 B씨와 1985년 결혼했지만 무정자증으로 자녀가 생기지 않았다. 이에 다른 사람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시술을 통해 1993년 첫째 아이를 낳은 뒤 두 사람의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이번에도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2013년 가정불화로 아내와 이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둘째 아이가 혼외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자식이 아니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이 시행한 유전자(DNA) 검사결과 두 자녀 모두 A씨와 유전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된다. 다만 대법원은 1983년 이후 부부가 동거하지 않아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다는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만 친생추정 예외를 인정해왔다.

현행 민법 제844조·제847조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고, 이 추정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친생부인의 소'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원고적격과 제척기간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일부 한계가 있었다.

1심 법원은 원고가 무정자증 진단을 받았다는 사정 외에 다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친생자 추정 원칙이 적용되고, 이런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했으므로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다고 보고 각하 판결을 내렸다. 또 1심 법원은 이번 소송을 만약 '친생부인의 소'로 보더라도 제척기간인 안 때부터 2년이 지났으므로 부적법해 각하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각하란 소송의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경우 본안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그대로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배우자가 동의한 경우’에는 친생자로 추정되는 원칙이 유지되지만, 유전자형이 다른 경우에는 친생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심 법원은 A씨와 두 아이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지만, 첫째 아이에 대해서는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A씨가 동의했기 때문에 소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둘째 아이에 대해서는 친생자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나, 입양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어 양친자관계가 성립해 소의 이익이 없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 사건이 우리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개변론을 연 바 있다. 학계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친생자관계 입증의 어려움이 개선됐고 사회인식 변화와 인공수정 등에 의한 임신·출산이 늘어나는 만큼 친생추정 예외 범위를 좀 더 넓게 보자는 절충적 견해와 이미 형성된 친자관계를 중시하는 기존 법리가 대립하고 있다.

당시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원고측)는 "자녀의 경우에는 자칫하면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부모가 친생부인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의 생부와 친자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또 "사회적 친자관계가 파탄됐다고 한다면 이들 사이에 친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통해 친생부인을 인정해주는 것이 자녀의 복리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피고측)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방식의 인공수정에 의해 출생한 자녀의 경우에는 그 인공수정에 동의한 부모의 경우 친생부인이나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에 따라 그 친생추정을 번복하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에 따라 허용돼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금반언의 원칙'이란 자신의 선행행위와 모순되는 후행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이미 표명한 자기의 언행에 대하여 이와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아울러 현 교수는 "모와 그의 남편이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것처럼 생부와 자녀 역시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통해 손쉽게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대법원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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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경 (변호사) 기자 mk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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