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한국 정부 (Feat.홍콩 시위대)

전현우 입력 2019. 10. 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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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중화권 민주화 운동 연구소인 '다이얼로그 차이나'는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과 중국 톈안먼 민주화 시위 당시 주역이었던 왕단 등의 입장문을 전했습니다. 먼저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촛불집회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영화 1987'의 배경이 됐던 6월 항쟁 등으로 한국인이 민주와 인권을 위해 용기를 내 싸운 역사에 많은 감동을 하였다"면서 "우리는 한국인들이 먼저 걸어온 민주화의 길을 홍콩 시민들과 함께 손잡고 가주길 희망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왕단 역시 "오늘 홍콩은 39년 전 광주가 됐다"고 성토했습니다. 이어 "한국의 군부 독재 시절 국제 사회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관심과 지지를 표한 것처럼, 이제는 한국도 홍콩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열망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표해줄 것을 호소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 홍콩의 민주화 운동 주역과 과거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던 주역이 함께 시민 인권과 민주주의에 기대서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같은 날 한국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치러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3년(2020년~2022년) 임기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당선됐습니다. 예비 인권 이사회 이사국으로서 주 UN 한국 대표부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서 국제 인권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전 세계 인권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국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웃 지역에서 20주 가까이 진행된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식 반응이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 된 한국이 한국의 제1 수출국인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민간 영역에서는 중국 자금의 눈치를 보고 '자기 검열'을 해 홍콩 시위를 반대하거나 지지했다가 철회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게임회사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E-스포츠 경기에서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을 한 청응와이 선수에게 대회 출전 1년 정지와 상금 몰수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발이 크자 출전 정지 기간을 6개월로 줄이고 우승 상금을 돌려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NBA에서는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레이 단장이 홍콩 지지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NBA 후원 중국 기업 25곳 가운데 18곳이 NBA에 대한 협력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NBA 총재인 애덤 실버는 "중국의 친구들과 직접 소통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분노케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합니다."라며 사과를 해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행동이었단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 역시 중국 자금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구글은 지난 10일 '플레이스토어'에서 홍콩 시위대 역할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는 게임을 삭제했습니다. 애플 역시 지난 9일 홍콩 시위대가 경찰 위치를 추적하고 폐쇄 구역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데 사용된 애플리케이션인 'HK맵 라이브'를 '앱 스토어'에서 삭제했습니다. 이 조치는 중국 관영매체인 인민일보가 'HK맵 라이브'를 비판한 직후 이뤄져 자기 검열 아니냐는 의혹이 발생했습니다. 유사한 맥락으로 한국 엔터테이먼트 기업 JYP도 '쯔위 사태'로 중국에 고개를 숙인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월 한 프로그램에서 JYP의 아이돌그룹 트와이스의 쯔위가 대만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드는 모습이 방송됐습니다. 중국 쪽에서 이 모습을 문제 삼자 쯔위는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전 제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사과 영상을 올리고 JYP 측도 중국 측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일들의 공통점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민간 영역에서 중국 자금의 힘을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반면 미국 하원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본회의에서 홍콩 인권법을 포함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법안 2건과 결의안 1건을 가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 하원 낸시 펠로시 의장은 미국이 상업적 이익 때문에 중국에서의 인권을 옹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인권을 옹호할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될 것이다.”라며 홍콩인권법 가결의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떠한 선택을 할까요? 고려할 점은 많지만, 조심스럽게 유추할 자료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폐기됐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2018년 3월 정부 헌법 개헌안입니다. 이 헌법의 주된 특징 가운데 하나가 헌법의 주체를 현재 헌법의 국민 대신 '사람'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주체의 변화가 담은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현행 헌법에 아예 없던 사람이란 단어가 주체가 된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등의 천부인권을 보전해야 할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헌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지만, 정부의 지향점을 알기에는 충분한 자료입니다. 물론 현재도 한국 정부는 홍콩 시위에 대한 공식 반응은 없습니다. 반면 조슈아 웡과 왕단의 호소에 5·18기념재단과 5·18 관련 단체들은 어제(18일) 홍콩 시민에게 인권적 차원의 연대와 지지를 보내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연이은 홍콩 시민들의 호소에 한국 정부의 대답을 들을 날이 올지 궁금해집니다.

전현우 기자 (kbs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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