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하루', 김혜윤 아니었다면 이 낯선 세계에 몰입 가능했을까
‘어하루’, 상투적인 스토리에 지쳤다면 이만한 드라마가 없다
[엔터미디어=정덕현] 마치 작가의 머릿속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평범한 학원물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갑자기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은단오(김혜윤)는 엉뚱한 상황 속에 자신이 옮겨져 있는 걸 발견한다. 여기서부터 이 드라마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학원 로맨스물의 틀을 깨기 시작한다. 그 곳이 사실은 현실이 아닌 순정만화 속 세상이라는 게 밝혀지고, 딸깍 소리와 함께 다른 상황에 들어와 있는 걸 자각하게 된 건 은단오(김혜윤)에게 의식이 생겨서란다.
조금은 황당한 설정이지만, ‘비밀’이라는 제목의 만화 속에서 은단오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역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드라마는 동력을 갖게 된다. 사실상 만화작가가 그려나가는 남녀주인공인 오남주(김영대)와 여주다(이나은)의 들러리로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깨닫게 된 것. 은단오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변화시켜보겠다 마음먹는다.
순정만화 속 세계라는 설정이지만 이들이 고등학생들이고 대부분의 사건이 학교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은 의식을 갖게 되고 변화를 꿈꾸는 은단오라는 인물의 안간힘에 의미심장한 상징성을 부여한다. 매일 같이 입시지옥의 현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네 학생들의 삶이 그 순정만화 속 지극히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삶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 속에서 의식을 갖게 되고 자각하게 된 은단오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이야기는 이런 현실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건 의식을 갖게 된 인물이 은단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순정만화 ‘비밀’의 서브 남자주인공인 이도화(정건주)도 은단오처럼 자신이 만화 속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걸 알아채고, 은단오가 ‘어쩌다 발견한’ 하루(로운)는 심지어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였지만 은단오에 의해 자신을 자각하고 이 상투적이고 틀에 박힌 세계를 함께 바꿔나가려 한다.
이름도 없고 말도 없는 하루 앞에 계속 “내 이름은 단오야 은단오”를 말하고 자신들이 함께 이 상투적인 순정만화 속 이야기를 바꿔보자고 말하면서 하루는 점점 변화한다. 말없던 인물이 말을 하기 시작하고, 단오에게 늘 상처만 주는 약혼자 백경(이재욱)과 대립하기도 하며 단오와 함께 조금씩 이 세계를 바꿔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조역과 엑스트라가 주어진 순정만화 속 운명대로 가지 않고 의지를 갖고 행동하게 되면서 이 세계의 스토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를 이미 알고 있는 진미채(이태리)는 하루에게 그렇게 하면 엑스트라인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라고 경고하지만, 계속 은단오와 함께 세계를 바꾸려한 하루는 결국 사라져버리고 만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전형적인 학원로맨스 순정만화를 가져와 그 정해진 주조연과 이야기 속에서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틀에 박힌 이야기와 대결한다는 흥미로운 변주를 보여준다. 웹툰 원작이 갖고 있는 통통 튀는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고전적인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만화 속 세상과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 인물들이니 작가가 그려내는 운명대로 어쩔 수 없이 움직이면서도 갑자기 얼굴을 바꿔 그 상황이 한심하다고 말하는 단오의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드라마 인물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이 낯선 세계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중심축을 잡아내며 설득시키는 건 다름 아닌 은단오 역할의 김혜윤이 보여주는 놀라운 연기력이다.
이미 <스카이캐슬>을 통해 그 연기력이 만만찮다는 걸 예감했지만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김혜윤이라는 연기자가 얼마나 통통 튀는 매력과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소화해내는 연기자인가를 보여준다. 자칫 뻔하고 다소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학원로맨스가 그의 활력 넘치는 연기로 생기를 얻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무엇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우리가 늘상 학원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 등을 통해 봐왔던 그 틀에 박힌 구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해준다. 또 의식을 갖고 자각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의 대비효과는, 의식 없이 입시지옥과 취업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조연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나아가 뻔하디 뻔한 드라마의 스토리와도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낸다.
그저 학원 로맨스겠거니 하고 넘길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를 좀 봤다는 시청자들이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드라마이고, 무엇보다 상투성을 깨는 이야기에서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그건 김혜윤 같은 이 낯선 세계의 여행에 빠져들게 만드는 연기자가 있어 가능한 일이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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