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언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카르텔' 끊어내야 한다

2019. 10.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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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그 이후' 연속 기고
②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조국 사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

진보세력 '계급 대물림·위선'에 실망
검찰수사 역시 구시대 습성 되풀이

정치권 민주화세력 무능이 검찰 키워
무소불위 수사 최대 피해자는 국민

검찰개혁은 '미완의 민주화' 마침점
정치가 이제 제 일을 해야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해선 여러 갈래의 해석과 평가가 가능하지만, 거시적으로는 검찰·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이자, 1987년 이후 한 묶음으로 간주되어온 ‘민주진보’ 세력의 내적 균열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14일 오후 전격적으로 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기 전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의 비상식이고 무차별적인 수사, ‘피의사실 흘리기’와 언론을 통한 망신 주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뒤에도 이 나라의 법치와 공론의 장은 여전히 심각하게 뒤틀려 있음을 확인시켰다. 아울러 ‘민주진보세력’에 속한 이들 역시 일상생활에서는 보수세력과의 구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아프게 일깨웠다.

임명직 검찰총장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이 사태를 ‘법치’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검찰권력의 핵심은 미운 사람을 적으로 몰아 괴롭히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은 제대로 수사·기소하지 않는 데 있다. 언론권력의 핵심은 ‘적’으로 분류된 사람을 악의적 보도로 도배하는 데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편’의 심각한 범법과 부정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

많은 언론이 ‘전관예우’라는 ‘아름다운’ 표현을 여전히 애용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부패 카르텔이자 반사회적 범죄에 다름 아니다. 마이클 존스턴 미국 콜게이트대 교수는 한국의 부패를 “엘리트 카르텔 유형”이라 규정하면서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이 조직적으로 똘똘 뭉쳐 대다수 국민을 등쳐 먹는다”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1년 수임료로 100억원을 벌어들이고, 퇴임 검사가 수사 검사에게 전화 한 통 넣고 ‘전화변론’ 명목으로 5천만원을 받은 일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 법원, 언론, 행정부, 재벌은 이런 엘리트 범죄의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조국과 그의 가족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검찰과 언론, 한국당이 이 카르텔의 주요 축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자녀 교육과 재산 관리에서 드러난 조국 가족의 행태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계급 대물림’의 속된 욕망을, 청년들은 ‘구세대의 이기심’을 읽고 실망과 분노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와 기소 행태 역시 사회정의를 무너뜨릴 만큼 ‘계급편향적’이면서 구세대의 권위주의와 명령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사실이다.

수십년을 투표하고도 ‘똑똑한 놈’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직도 알아채지 못한 국민들이 여전히 검찰 권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0.05%도 안 되는 법조인 출신이 국회의원의 16%를 차지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에선 검사 출신이 4명이다. 대표와 원내대표가 모두 법조인 출신인 자유한국당에선 무려 13명의 전직 검사가 지도부와 원내에 포진해 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퇴임 뒤 로펌과 정치권에 갈 수 있는 검사들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적으로 거머쥐고 있는 한 그들의 칼은 언제나 기득권 카르텔을 위협하는 세력을 향할 것이다. 검찰은 1987년 이전에는 권력을 틀어쥔 군부에 충성했다. 권력이 기업으로 넘어간 87년 이후에는 대체로 그들에게 충성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의 검찰개혁은 미완의 민주화, 미완의 2016-2017 촛불의 완성으로 가는 시대적 화두임이 분명하다. 87년 이전의 정치를 안기부와 보안사가 주도했다면, 87년 이후는 사법부와 검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약점 많은 여야 정치권은 검찰과 법원, 언론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었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적 의제를 법원과 검찰에 넘겨버렸다. 87년 이후 심화된 ‘정치의 사법화’가 오늘날의 괴물 검찰을 만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겠다고 정계에 진출한 민주화 세력의 무능이 검찰에 무소불위의 힘을 안겨주었다.

시민들이 주말마다 서초동에 모여 ‘정치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문재인 정부나 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들은 구정권의 적폐 청산을 검찰에 의탁했다. 검찰이 아무리 막강하다 한들, 그들을 통제할 입법권은 국회와 정치권에 있다. 정치가 이들과 물밑에서 타협하거나 이들에게 약점을 보이면, 그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결국 조국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국민, 즉 촛불시민인 셈이고, 이런 검찰의 편향적 칼날의 최대 희생자가 힘없는 서민인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12일 저녁 검찰 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 수호를 주장하며 검찰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역 사거리에서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조국 가족의 자산 투자나 자녀 진학을 위한 행동들은 이 정부, 더 나아가 586세대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이미 알고 있던 민주진보세력의 이중성과 위선을 다시 한번 들추어냈다.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특정 부류 사람들이 평범한 이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을 동원해 교육을 통한 지위의 대물림을 시도한 사실을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물론 ‘위선’이라는 말조차 적용할 수 없는 세력의 후안무치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들이 ‘도덕’을 그리 쉽게 무시해선 안 된다. 그러니 보수언론의 공격에 억울해할 것도 없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정당화해서는 더욱 안 된다. 이론과 삶의 현장이 분리되면 행동이 말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이제 중산층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보수세력과 일상생활에서 큰 차이를 보여줄 만큼 철학과 가치관을 체화하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청년의 좌절과 보수화는 조국 사태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숙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력주의’에 길들여진 청년들은 ‘시험=공정’이란 생각에 ‘노력의 결과가 오염된다’며 조국 딸의 상급학교 진학 행태에 분노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실력 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정권에서 마음이 떠난 불안한 20대 청년들과,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소외감을 느낀 광화문의 60·70대 모두 전지구적으로 기세를 떨치는 ‘우익 포퓰리즘’의 토양이다. 진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의 극렬한 저항이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고 하나 문재인 정부를 지탱하는 청와대와 민주당은 ‘표’를 의식해 이해가 충돌하는 사회경제적 개혁, 특히 서민의 삶과 직결되는 부동산과 교육 문제에서 사실상 현상유지로 일관했다. 촛불시민은 사라지려던 ‘비상식 집단’이 다시 보수로 자처하게 된 지금 상황에 가슴이 무너진다. 그러나 지위 세습에 분노하는 지금의 여론 지형은 정부가 교육, 복지 등 사회 영역에서 새로운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밑천이다. 문제는 방향과 주체다.

검찰개혁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위관료-검찰-언론-사학-지역토호로 연결된 한국의 기득권 부패 카르텔의 개혁이다. 정권은 수없이 교체되고, 촛불시민이 아무리 광화문과 서초동에 많이 나와도 이것을 바꾸어내지 못하면 서민 대중은 ‘개돼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한국은 사법-관료-언론 복합체가 지배하는 ‘1당 국가’였다. 이런 국가에서 정책은 실종되고 정당이 해야 할 일을 시민이 거리에서 수행하였다. 검찰과 언론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니, 조국 사태와 같은 이슈가 국가의 여론을 집어삼키고 정작 중요한 국가사회적 대사는 수면 아래에 잠긴다. 정치가 제 일을 해야 한다. 선거제도와 정당시스템 전반에 걸친 정치개혁이 중요한 이유다. 불평등, 교육, 저출산, 기후위기 등의 시급한 과제에 몸을 던질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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