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풀 한 포기 없던 몽골 황무지..나무 심으니 '윈도우 배경화면'됐다

김정연 2019. 10. 1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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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찾은 몽골 울란바토르 서쪽 아르갈란트에 조성된 '서울시 미래를 가꾸는 숲'. 올해 나무를 심은 지역이라 아직 나무가 얇고 작아서, 언뜻 보기엔 풀만 자란 평지처럼 보인다. 사진 왼쪽 아래처럼 구덩이를 판 뒤 1m 남짓 키의 '차차르간' 묘목을 심었다. 이 사진에 보이는 구역에는 1만여그루의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다. 김정연 기자
지난 8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2시간여 달려 도착한 아르갈란트 솜(우리나라 군(郡)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비포장 길 끝에는 크게 울타리가 둘러쳐진 노란색 평지가 보였다.

이곳은 서울시의 지원으로 사단법인 푸른아시아가 2016년부터 조성 중인 ‘서울시 미래를 가꾸는 숲’이다.
100㏊ 넓이에 8만여 그루의 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다.

초겨울로 접어든 시기라 온통 노란색이었지만, 여름에는 푸르른 빛을 띠었을 것이다.

2년 정도 자란 나무들은 갓 심은 묘목과 달리 키가 1.5m 가까이 되고 짙은 푸른색 잎도 수북히 달고 있다. 김정연 기자

풀 한 포기 안 자라던 땅… 지금은 여름이면 푸른 들판
몽골 아르갈란트 '서울시 미래를 가꾸는 숲'의 여름 풍경. 1년생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사진 푸른아시아]
아라갈란트 지역은 몽골 환경국에 사막화가 진행될 위험이 큰 지역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된 지역이다.

함께 간 푸른아시아 몽골 현지 사무소의 신동현 차장은 “원래 이 일대에는 잡풀도 안 자라는 모래땅 황무지였다"며 "이 데르스(사막화 지표 식물)조차 자라지 못하는 땅이었다”고 설명했다.

신 차장이 가리킨 곳에는 1년생 나무 사이사이에는 갈대처럼 생긴 데르스가 보였다.
초겨울이라 잎이 떨어진 나무들 사이사이로 흰 갈대처럼 생긴 식물이 자라나있다. '데르스'라는 사막화 지표식물이다. 이 일대는 원래 데르스도 자라지 못하는 황폐한 땅이었는데, 조림사업을 시작한 지 4년여만에 잡풀이 저절로 자라나는 땅으로 변했다. 김정연 기자


"늘 먼지 심하던 땅, 나무 심은 뒤 8살 손자 기침도 줄어"
아르갈란트는 약 5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솜(郡)이다.
그중 30여명이 조림장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조드옹후(40) 주민팀장은 “이전엔 유목을 하다가 아르갈란트에 정착해 산 지 10년째인데, 건조하고 풀도 거의 안 자라는 지역이라 가축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다”며 “지금은 잡풀도 많이 자라고, 여름엔 땅이 푸른 걸 보니 신기하다”고 전했다.

주민 엥흐만다흐(54)씨는 “1977년 솜이 처음 생길 때부터 살았는데, 사막화가 진행되는지 마른 흙에서 피어나는 먼지가 점점 심해졌었다”며 “나무를 심고 나서는 먼지도 확 줄어서 같이 사는 8살 손자가 기침을 훨씬 덜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한 식료품점 내에 진열된 차차르간 가공 제품들(2,3번째열). 차차르간은 '비타민 나무'로 불리며, 몽골 사람들이 민간약, 차 등으로 많이 이용해온 열매다. 김정연 기자
이곳 조림장에는 테두리에 방풍수로 쓸 포플러 2만 그루, 안쪽에는 몽골에서 민간약‧차로 많이 쓰이는 차차르간(산자나무, Sea Buckthorn) 나무 6만 그루를 심었다.

차차르간은 몽골에서 일명 '비타민 나무'로 불릴 정도로 비타민 함량이 높아, 최근 들어 차차르간을 이용한 건강식품 등도 많이 늘어나는 등 각광받고 있는 작물이라고 한다.

신 차장은 “올해부터 차차르간을 많이 심기 시작했다”며 “열매를 이용해서 수익을 내면 장기적으로 각 지역 조림장마다 주민들 스스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엔 차차르간 등 열매를 가공할 수 있는 자체 가공공장이 첫 삽을 떴다.

올해는 산림학 석사 출신의 현장 매니저 아리용토야(30)씨도 이곳 조림장에 합류했다.
아리용토야씨는 “푸른아시아의 다른 사업장에 비해 여기가 나무가 잘 자라는 편이라, 올해 비술나무 묘목 3000그루를 키워 내보냈고, 지금도 지난해 심은 묘목 6800그루가 겨울맞이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운 걸 지역에 직접 적용하는 일이 재밌고, 실제로 필요하고 유익한 일이라 더 좋다”고 말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 파놓은 골 사이에 심은 나무를 아르갈란트 주민들이 손보고 있다. 이렇게 골을 파놓은 구역에는 나무 2만여 그루를 심었다. 김정연 기자
이날 주민들은 10월 초 갑작스러운 비에 쓰러진 나무를 복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강한 바람에서 묘목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 키 높이로 파 놓은 골 사이사이로 차차르간 2만 그루가 줄지어 심겨 있는데, 폭우로 흙벽이 무너지면서 나무도 여러 군데 쓰러졌다.

흙이 쓸려내려 가면서 조림장 곳곳에 골이 패여 있었다.

신 팀장은 “몽골은 원래 연 강수량이 250㎜밖에 되지 않았는데, 올해 여름 폭우로 도심에선 차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며 “몽골 사람들도 ‘처음 보는 비’라고 하더라. 몽골 날씨도 변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바람이 심한 몽골 아르갈란트 지역에서 어린 묘목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한 구역은 땅을 깊게 파서 골을 만들어 나무 2만 그루를 심었다. 김정연 기자

기후변화 직격타 몽골, 호수가 통째로 사라졌다
몽골의 사막화지도. 기존의 사막 지역은 더 황폐해지고, 물이 풍부하던 산악 호수지역도 물이 말랐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1940년부터 2014년까지 몽골의 평균 기온은 2.07도 올랐다.
지난 100년간 전 세계 평균기온 상승 폭 0.9도보다 훨씬 가파른 속도다.

몽골 전역에서는 빠르게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몽골 기상청의 대기 질 전문가 우누르바트는 “최근 몽골 전역이 사막화되면서 황사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몽골에서는 황사를 보통 ‘모래폭풍’이라고 칭한다.
사막화된 지형에 몽골 특유의 강한 바람이 불면서 모래를 잔뜩 몰고 몰아치는 것을 뜻한다.

바람 자체가 건조해, ‘모래폭풍’은 사막화의 표식인 동시에 사막화를 진행하게 하는 원인이다.

호수가 많아 비교적 다양한 생물이 자라던 서쪽 산악지대에서는 호수가 아예 말라, 호수를 기반으로 존재하던 마을과 식생 등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푸른아시아 오기출 상임이사는 “호수 조사를 하러 전문가와 함께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호수가 보이지 않아 GPS(위성 위치확인 시스템)를 확인해봤더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호수 한가운데였다”라며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더라"고 놀라워했다.


"몽골 사막화, 결국 한국 일이기도 해"
몽골 내 푸른아시아 조림지 위치(원으로 표시된 9개 지역. 10번째 숲은 올해 2월 사업 추진을 시작해 아직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 이 단체가 나무를 심는 지역은 주로 울란바토르와 위도가 비슷한 중위도 지역이다. 기존에 사막이 아니던 지역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기 위해서다. 김정연 기자
푸른아시아는 인천·고양 등 지자체와 KB국민은행·BC카드 등 기업의 지원으로 몽골 전역 10곳에 숲을 만들고, 몽골 산림청과 손잡고 사막화가 진행된 고비사막에 대형 조림사업도 진행 중이다.

오기출 상임이사는 "몽골이 사막화되면 그 여파가 황사가 돼 한국까지 미친다"며 "처음에 우리가 나무를 심을 땐, 사람들이 '그게 되겠냐'고 했지만, 심고 나니 현지 주민들이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채더라"고 말했다.

그는 "나무를 심는 일은 시간이 걸리지만, 사막화에 대응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푸른아시아는 조림사업으로 땅을 회복시킨 공로로 2014년 유엔으로부터 '생명의 토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숲이 유지되진 않는다.

심은 뒤 자체적으로 꾸준히 가꿀 수 있도록 주민들을 교육하고, 숲에서 수익을 창출해 지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신동현 차장은 "키운 나무들에서 딴 차차르간·블랙커런트 등 열매를 가공할 공장을 지난 4일 짓기 시작했다"며 "자체생존이 가능한 모델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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