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사라진 '일본 방사성 폐기물 자루'..올림픽 맡길 수 있나
[경향신문]
2667개 중 유실량 파악 못해
4년 전 폭우 때도 ‘빈 자루’
임시적치장 관리 부실 드러나
아베 “통제하” 무책임의 극치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덮친 지난 12일 후쿠시마현 다무라(田村)시에서 유실된 ‘방사성 폐기물’ 자루들의 소재가 오리무중이다. 일본 정부는 16일에도 유실된 자루의 정확한 개수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원전 폭발 이후 후쿠시마 상황을 “언더 컨트롤(통제하)”이라고 장담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자루가 폭우로 강에 흘러들어간 지 나흘이 지난 이날까지 자루 11개만 회수했다. 환경성은 유실된 자루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지만 몇 개인지, 어디로 흘러갔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은 전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루가 몇 개 유실됐냐’는 질문에 “그것까지 포함해 조사 중”이라며 “용기가 파손되지 않아 환경에 대한 영향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위험하지 않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폐기물이 자루에서 빠져나가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NHK는 폐기물 자루 일부가 하류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미우라 히데유키(三浦英之) 아사히신문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현장 동영상에는 검은색 폐기물 자루 일부가 내용물이 흘러나간 듯 쪼그라져 있다. 앞서 2015년 9월 폭우로 후쿠시마현 이다테촌에서 폐기물 자루가 유실됐을 때도 찢어져 속이 빈 자루가 발견됐다.
폐기물 자루에는 방사능 제염 작업 시 나온 나무나 풀 등이 담겨 있는데, 외부로 유출될 경우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할 수 있다.
폐기물 자루에선 ㎏당 수백㏃(베크렐·방사능 측정 단위)에서 8000㏃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된다고 마쓰쿠보 하지메(松久保肇) 원자력자료연구실(CNIC) 사무국장이 경향신문에 전했다. 마쓰쿠보 사무국장은 “100㏃을 넘는 것은 환경에 영향이 있는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 자루가 터져 폐기물이 외부로 방출되고 있는 사태를 상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기물들이 나무나 풀 등이어서 육안으로 구별이 힘들 수 있다.
또 일본 정부가 방사성 폐기물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자루는 1개당 약 1㎥ 크기로, 유실 사고가 난 임시적치장에는 2667개가 있었다. 환경성 홈페이지는 자루를 방수시트 등으로 덮어 유출이나 빗물 유입 등 오염을 막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무라시 측은 폐기물을 시트로 덮는 등 폭우나 강풍에 대한 대책을 시행하지 않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2015년 유실 사건이 있었고, ‘50년에 한 번’이라는 호우가 예상되는데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9월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원전이 언더 컨트롤에 있다”고 했지만, 이 발언 자체가 허상임이 확인됐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후쿠시마현에는 약 1000만개의 폐기물 자루가 800곳의 임시적치장에 쌓여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후쿠시마현에 건설 중인 중간저장시설에 보관한 뒤 후쿠시마현 밖에서 최종 처리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이번 일로 임시적치장 부실 관리와 방사능 유출 위험성이 드러난 셈이다. 또 이번 폭우로, 아직까지 제염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산림에서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나라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다른 문제도 철저히 하겠냐는 생각이 든다”며 “이래 놓고 후쿠시마에서 올림픽 경기를 해도 된다, 후쿠시마산을 먹어도 문제없다고 말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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